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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빈집 / 기형도

by 혜강(惠江) 2020. 2. 8.



빈집
      
-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1989>

일러스트=권신아


<해설> - 정끝별·시인


  기형도(1962~1989) 시인의 마지막 시다. 1989년 봄호 문예지에서 이 시를 읽었는데 일주일 후에 그의 부음을 접했다. 이제 막 개화하려는 스물 아홉의 나이에, 삼류 심야극장의 후미진 객석에서 홀로 맞아야 했던 그의 죽음에 이 시가 없었다면 그의 죽음은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초라했을 것인가.

  어릴 적부터 살던 집에서 이사를 계획하고 쓰여졌다는 후일담도 있지만 이 시는 사랑의 상실을 노래하고 있다. 사랑으로 인해 밤은 짧았고, 짧았던 밤 내내 겨울 안개처럼 창 밖을 떠돌기도 하고 촛불 아래 흰 종이를 펼쳐놓은 채 망설이고 망설였으리라. 그 사랑을 잃었을 때 그 모든 것들은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이 되었으리라. 실은 그 모든 것들이 사랑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사랑을 떠나보낸 집은 집이 아니다. 빈집이고 빈 몸이고 빈 마음이다. 잠그는 방향이 모호하기는 하지만 '문을 잠근다'는 것은, '내 사랑'으로 지칭되는 소중한 것들을 가둔다는 것이고 그 행위는 스스로에 대한 잠금이자 감금일 것이다. 사랑의 열망이 떠나버린 '''빈집'에 다름 아니고 그 빈집이 관()을 연상시키는 까닭이다. 삶에 대한 지독한 열망이 사랑이기에, 사랑의 상실은 죽음을 환기하게 되는 것일까.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라고 나직이 되뇌며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을 하나씩 불러낸 후 그것들을 떠나보낼 때, 부름의 언어로 발설되었던 그 실연(失戀)의 언어는 시인의 너무 이른 죽음으로 실연(實演)되었던가. 죽기 일주일 전쯤 "나는 뇌졸중으로 죽을지도 몰라"라고 말했다던 그의 사인은 실제로 뇌졸중으로 추정되었다. "나의 영혼은 검은 페이지가 대부분"('오래된 서적')이라 했던 그가, 애써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정거장에서의 충고')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기도 했건만.

  그가 소설가 성석제와 듀엣으로 불렀던 팝송 'Perhaps Love'를 들은 적이 있다. 플라시도 도밍고의 맑은 고음이 그의 몫이었다. "Perhaps, love is like a resting place"로 시작하던 화려하면서 청량했던 그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질투는 나의 힘')라는 그의 독백도.
 


<출처> 2008. 1. 17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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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일근의 연애시 추억)

 

결혼이란 빈 들판에 지은 집,
그 집에 누가 갇혀 있을까?



                                              - 정일근 시인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 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기형도/빈집


 


  

  결혼이란 빈 들판에 스스로 집 짓고 스스로 갇히는 일이다고 나는 정의한 적이 있다. 기형도(1960~1989)의 시빈집을 읽기 전의 일이었다. 결혼하는, 시를 쓰는 후배에게 그런 말을 했다. 결혼으로 설레던 후배는 축하의 말을 들으려다 뜻밖의 내 말에 잠시 혼돈스러워했다.

 나는 상투적인 축하의 메시지 대신 아픈 소리를 택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 집에 갇히면 다시는 나오지 마라. 그 집을 빈집으로는 만들어서는 안 된다.”

  연애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기차를 타는 일이다. 그 기차의 종착역은 결혼이라는 역이다. 그러나 많은 승객들이 그 종착역에 온전하게 도착하기 힘들다. 함께 타지만 각자 다른 역에서 기차를 갈아타는 사람들이 역마다 붐빈다. 그걸 하느님도 탓할 수 없다. 그것이 사람의 사랑이니까.

기형도 시인은 요절했다. 그래서 그의 연애는 결혼이란 종착역에 도착하지 못했지만, 그가 죽은 뒤 가진 시집 입 속의 검은 잎에 기록된 그의 연애는 상처투성이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그는 사랑을 잃었다고 고백하고 썼다.’ 그리고 그는 잘 있거라고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그건 사랑과의 작별이 아니라 짧았던 밤들’‘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무 것도 모르던 촛불들과의 작별이다.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에게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에게도 잘 있거라고 작별을 한다. 그는 사랑과 연애의 배경과 배후가 되었던 모든 것들에게 작별을 하고 떠났다.

잘 있거라잘 가거라는 다르다. ‘잘 있거라는 스스로 떠난다는 것이다. 그는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에게 인사를 하고 떠났다. 그리고는 우리들 곁으로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연애는 사랑이다. 둘 다 영어로는 LOVE로 쓴다. 그러나 연애와 사랑의 사전적 정의는 다르다. 사랑은인간의 근원적인 감정이고 연애는인간의 육체적 기초 위에 꽃피는 남녀 간의 자연스런 애정이다.

 사랑은 감정이고 연애는 육체가 배경이라는 것이다. 나는 그런 사전의 통속적인 해석이 슬프다. 보라! 시인은 사랑을 잃고, 그 고통이 시력을 잃는 아픔과 같아 장님처럼더듬어 문을 잠그고 지상의 빈 들판에 빈집 한 채를 남기고 떠났다. 시인은 스스로 사랑이란 집을 지어 갇히는 일 대신 빈집에 지독한 사랑을 가두어버렸다.

그러나 그 이유는 질투였다. 시인은 또 이렇게 섰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기형도의 시 질투는 나의 힘끝부분에서)

사랑을 빈집에 가두고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던 시인. 그 빈 집에 누가 갇혀 있을까?


<출처>  2007.11.03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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