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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질투는 나의 힘 / 기형도

by 혜강(惠江) 2020. 4. 16.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 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 시집 입속의 검은 잎(1991)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미래의 시점에서 현재의 의 모습을 성찰함으로써 현재의 자기 삶에 대한 반성과 바람직한 삶의 자세에 대한 고민을 고백체 어투를 사용하여 형상화한 작품이다.

 

 화자는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게 될 미래를 생각하며 현재의 자신에 대한 글을 남기고 있는데, 현재의 삶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 아래 자조적인 어조로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있다. 또 감탄형 어미를 자주 사용하여 주제를 효과적으로 강조하고 있다.

 

 

 모두 14행으로 된 이 시는 내용상으로 볼 때, 1행과 2행은 미래의 입장에서 현재를 반성하는 화자의 상황이 드러나 있으며 3행에서 6행까지는 현재 자신의 삶에 대한 평가가 나타난다. 7행에서 12행까지는 자신의 삶에 대한 반성적 태도가 표현되어 있으며, 13행에서 14행에서는 미래의 나를 통해 젊은 날의 삶에 대한 평가와 반성을 하고 있다.

 

 이제 시의 내용을 살펴보면, 미래의 에 의해 회상되는 젊은 시절의 는 많은 공장을 세우고 개처럼 지칠 줄 모른 채 머뭇거리는 삶을 살고 있다. ‘많은 공장을 세웠다는 것은 무안가를 창조하기 위하여 들끓는 열정으로 가득찼음을 의미하며,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없구나는 아무런 성과도 없는 몸부림으로만 가득했던 것에 대한 허황된 심정을 드러낸 것이다. 또한 쏘다나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에서는 자신의 행위를 쏘다나는 개에 비유하여 하찮게 표현하면서 소모적이고 의미 없는 일에만 몰두해 온 자신의 삶을 반성하고 탄식한다.

 

 이어 화자는 젊은 날을 되돌아보면서, 그 누구도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희망은 다만 타인의 삶을 향한 질투뿐이었음을 깨닫는다. 여기서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타인과의 관계를 맺지 않고 독불장군처럼 자기만의 세상에서 살아오면서 오직 자신이 추구해 온 것은 나만의 욕심이었었다는 것을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한 깨달음 앞에서 시의 화자는 현재의 삶을 기록하는 유서에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라는 구절은 타인으로부터 관심과 사랑을 갈구했으나 진정으로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지 못했음을 자조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기형도 시인에게 질투는 희망이며 타인과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음을 깨닫고 다시 일어나 사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그에게 질투는 힘이었다. 수없는 사유를 통해 탄생했을 마지막 행들은 '나도 그러했으니 너도 그러할 수 있다'라는 말로 읽는 이에게 전해진다.

 

 기형도의 시를 전체적으로 봤을 때, 낙천적이고 부드러운 시어보다는 고독한 기록의 연속인 문장이 주를 이루고 있다. 마치 연인과 이별할 때, 이별 노래를 들으며 공감을 통해 스스로 감정을 되짚어보듯, 어두운 감정은 자아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라는 듯 기형도의 유고 시집 한 권 내내 잘 묘사되어 있다.

 

 이 시를 바탕으로 박찬옥 감독은 직접 시나리오를 썼다. 박찬옥은 그 시에서 “20대 후반, 자신을 인정할 수도, 아직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도 못하는, 질풍노도의 상태에 있는 한 젊은 남자의 인상을 보았다며, 실제 영화는 한 남자에게 두 번이나 애인을 빼앗긴 남자의 질투심을 그렸다.”라고 했다. (박찬옥 감독 인터뷰 참조, 동아일보, 2003. 4. 14)

 

 

 

작자 기형도(奇亨度, 1960~1989)

 

 

 시인. 인천 옹진 출생. 1985동아일보신춘문예에 <안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89년 서울 종로의 심야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사망함으로써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유고 시집으로 입속의 검은 잎(1989)이 있다.

 

 그의 시는 자신의 개인적인 상처를 드러내고 분석하는 데서 시작된다. 가난한 집안 환경과 아픈 아버지, 장사하는 어머니, 직장을 다니는 누이 등 어두웠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그의 시의 원체험을 형성하고 있다. , 그의 시는 우울과 비관으로 점철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개인적인 체험 외에 정치 사회적인 억압이 간접적인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은 극히 비관적이며 어떠한 전망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해설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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