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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빈집 / 기형도

by 혜강(惠江) 2020. 4. 16.

 

 

 

 

 

 

빈집

 

 

- 기형도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시집 입속의 검은 잎(1989)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로 인한 슬픔과 공허한 마음을 노래한 시로, 사랑을 잃은 슬픔과 의미를 가졌던 모든 것과의 이별로 인해 공허해진 내면을 빈집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에서 빈집은 실연한 화자의 마음을 비유한 것이다. 사랑을 잃은 화자는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을 쓰는 행위는 자신이 잃은 것을 확인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자신의 사랑에 이별을 고하는 마지막 의식일 것이다.

 

 이 시는 대상을 의인화하여 대상에게 이별의 인사를 건네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화자는 사랑할 때 함께했던 대상들을 하나하나 불러가며 사랑했던 당시의 아름다운 추억을 떠올리며 모든 것들에게 잘 있거라를 반복하면서 더 이상 내것이 아니라며 이별을 고한다. 이러한 행위는 시적 화자가 그 대상들 하나하나에 가지고 있었던 애정을 드러내는 행위로 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그 대상들과 이별해야 하는 상황의 안타까움과 화자의 슬픈 심정이 독자에게 애절하게 전달된다. 그러나 잘 있거라를 반복하면서 그것들과 마지막 인사를 하지만, ‘잘 있거라라는 표현 속에는 사랑의 추억들이 온전하기를 바라는 화자의 마음이 들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 화자는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사랑을 상실한 화자는 세상의 빛을 잃은 장님이 된 듯하다. ‘장님은 사랑을 잃어버린 화자의 마음을 비유한 것이며, 그모든 사랑의 대상들을 빈집에 넣어 두고서 마지막 을 잠근다. ‘빈집은 사랑의 추억과 열망을 상실한 화자의 공허한 내면을 상징하는 공간이며, 지나간 사랑의 추억과 열망으로 볼 수 있다.

 

 이 시의 화자는 장님’, ‘빈집과 같은 비유적, 상징적 시어와 , 안개, 촛불, 흰 종이, 눈물, 열망처럼 화자의 눈에 비치거나 떠오르는 대상들을 나열하여 사랑을 잃은 허전함, 상실감 등의 정서를 전달하며 시를 마무리하고 있는데, 특히, ‘호격조사 와 종결어미 ‘~ 를 반복 시용하여 운율을 형성하고 화자의 진솔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작자 기형도(奇亨度, 1960~1989)

 

 

 시인. 인천 옹진 출생. 1985동아일보신춘문예에 <안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1989년 서울 종로의 심야극장에서 뇌졸중으로 사망함으로써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다. 유고 시집으로 입속의 검은 잎(1989)이 있다.

 

 그의 시는 자신의 개인적인 상처를 드러내고 분석하는 데서 시작된다. 가난한 집안 환경과 아픈 아버지, 장사하는 어머니, 직장을 다니는 누이 등 어두웠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그의 시의 원체험을 형성하고 있다. , 그의 시는 우울과 비관으로 점철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개인적인 체험 외에 정치 사회적인 억압이 간접적인 원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바라보는 시선은 극히 비관적이며 어떠한 전망도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해설 및 정리>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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