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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받들어 꽃 / 곽재구

by 혜강(惠江) 2020. 4. 15.

 

 

<출처 : 네이버 블로그 ' 내 마음의 격렬비열도'>

 

 

받들어 꽃

 

 

- 곽재구

 

 

 

국군의 날 행사가 끝나고

아이들이 아파트 입구에 모여

전쟁놀이를 한다

장난감 비행기 전차 항공모함

아이들은 저희들 나이보다 많은 수의

장난감 무기들을 횡대로 늘어놓고

에잇 기관총 받아라 수류탄 받아라

미사일 받아라 끝내는 좋다 원자폭탄 받아라

무서운 줄 모르고

서로가 침략자가 되어 전쟁놀이를 한다

한참 그렇게 바라보고 서 있으니

아뿔사 힘이 센 304호실 아이가

303호실 아이의 탱크를 짓누르고

짓눌린 303호실 아이가 기관총을 들고

부동자세로 받들어 총을 한다

아이들 전쟁의 클라이막스가

받들어 총에 있음을 우리가 알지 못했듯이

아버지의 슬픔의 클라이막스가

받들어 총에 있음을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떠들면서 따라오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과 학용품 한 아름을 골라주며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들 앞에서

나는 얘기했다

아름답고 힘 있는 것은 총이 아니란다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세상과 별과

나무와 바람과 새 그리고

우리들 사이에서 늘 피어나는

한 송이 꽃과 같은 것이란다

아파트 화단에 피어난 과꽃

한 송이를 꺾어 들며 나는 조용히 얘기했다

그리고는 그 꽃을 향하여

낮고 튼튼한 목소리로

받들어 꽃

하고 경례를 했다

받들어 꽃 받들어 꽃 받들어 꽃

시키지도 않은 아이들의 경례 소리가

과꽃이 지는 아파트 단지를 쩌렁쩌렁 흔들었다.

 

                         - 시집 받들어 꽃(1991)

 

   

시어 플이

 

·받들어총 : 제식 훈련에서 부동자세를 한 상태에서 왼손으로 총을 수직으로 세워 든 후 총목에 오른손을 대라는 구령. 또는 그 구령에 따라 행하는 동작으로 총을 들고 하는 경례 가운데 최고의 경의를 나타낸다.

·횡대(橫隊) : 가로로 줄져 늘어선 대오.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철없는 아이들이 전쟁놀이하는 것을 보고 민족 분단의 아픔을 실감하며, ‘으로 대변되는 폭력적인 현실을 비판하며, ‘으로 대변되는 생명에 대한 외경심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이 작품의 화자는 국군의 날 행사가 끝나고 전쟁놀이를 하는 아이들을 보며살육을 전제로 하는 무서운 전쟁을 아이들이 놀이로 한다는 것에 놀라워 한다. 비록 장난감이지만, '비행기, 전차, 항공모함, 기관총, 수류탄, 원자폭탄' 등은 인명을 살상하는 무기인데도 무서운 줄도 모르고 서로가 침략자가 되어 전쟁놀이를 한다며 우려를 표명한다.

 

 이어 화자는 그들의 놀이가 실제 전쟁처럼 힘의 논리에 따라 하는 것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인다. ‘탱크를 짓누르고’ ‘짓눌린의 시어는 전쟁놀이에 의해 승자와 패자를 가르고 패자는 승자에게 기관총을 들고 부동자세로 받들어 총으로 경의와 복종을 표시한다. 이러한 아이들의 전쟁놀이를 보면서 화자는 아이들 전쟁의 클라이맥스가 받들어 총에 있음을 우리가 알지 못했듯이/ 아버지의 슬픔의 클라이맥스가 받들어 총에 있음을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며 전쟁놀이에 대한 충격과 함께 슬픔을 느낀다.

 

 아이들에게까지 일상화되어 무디어져 버린 폭력성에 슬픔을 느낀 화자는 ‘’아름답고 소중한 것은 총이 아니라며, ’‘, ’나무‘, ’바람‘, ’그리고 이라고 조용히 얘기해 주고 화단에 피어 있는 꽃 한 송이를 꺾어 들고, 그 꽃을 향하여 받들어 꽃하고 경례를 한다. ’받들어 꽃받들어 총에 대립되는 의미로서, 화자는 받들어총이 아닌 받들어 꽃을 할 줄 아는 존재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받들어총은 전쟁을 전제로 하는 군사 문화를 나타내는 것이고, ‘받들어 꽃으로 대표되는 생명이 있는 아름다운 것에 경의를 표할 줄 아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받들어 꽃의 글자 크기를 조절하여 세 번 반복한 것은 시각적으로 주목하게 함으로써 생명을 존중하고 아름답게 여기는 것이 가치 있는 것임을 강조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아파트 단지를 쩌렁쩌렁 흔드는 아이들의 경례 소리에 호응하는 효과를 생생하게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결국, 이 시는 전 국민 전투태세가 지극히 당연시되던 군사정권 때 쓰인 시이다. 생명을 앗아가는 전쟁의 공포를 넘어서서 아이들이 주변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느끼며 살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을 노래함으로써, 분단의 현실이 극복되어 전쟁이 없는, 영구적인 평화가 지속되기를 염원하는 시대 정신을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작자 곽재구(郭在九, 1954 ~ )

 

 

  시인. 전남 광주 출생. 1981중앙일보신춘문예에 <사평역에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주로 향토적인 서정과 민중의 삶에 대한 애정을 애상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썼다시집으로는 사평역에서(1983), 전장포 아리랑(1985), 서울 세노야(1990), 참 맑은 물살(1995),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1999), 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2011), 와온 바다(2012) 등이 있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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