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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고향 / 곽재구

by 혜강(惠江) 2020. 4. 15.

 

 

 

 

 

고향

 

 

- 곽재구

 

 

 

흐린 새벽
감나무골 오막돌집 몇 잎
치자꽃 등불 켜고 산자락에 모이고
깜장 구들 몇 장 서리 내린
송지댁네 외양간
선머슴 십 년 착한 바깥양반
콩대를 다둑이며 쇠죽을 쑤고
약수골 신새벽 꿈길을 출렁이며
송지덕 항아리에 물 붓는 소리
에헤라 나는 보지 못했네
에헤라 나는 듣지 못했네
손시려 송지택 구들 곁에 쭈그린 동안
선머슴 십 년 착한 바깥양반
생솔 부지깽이 아내에게 넘겨주고
쓱싹쓱싹 함지박이 쌀 씻는 모습
쪼륵쪼륵 양은냄비에 뜨물 받는 소리
에헤라 대학 나온 광주 양반에게서도
에헤라 유학 마친 서울 양반에게서도
나는 보지 못하였네
듣지 못하였네 

 


            - 시집 사평역에서(1983)

 

 

시어 풀이

 

·오막돌집 : ‘오막돌집을 합한 것. ‘오막은 오두막의 준말, 사람이 겨우 들어가 살 정도로 작게 지은 막. ‘돌집은 돌기와집의 방언(황해도)

·치자꽃 : 치자나무에서 피는 꽃.

·선머슴 : 차분하지 못하고 매우 거칠게 덜렁거리는 사내아이.

·부지깽이 : 아궁이 따위에 불을 땔 때에 쓰는 가느스름한 막대기.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고향에 남아 힘든 일을 묵묵히 하면서도 아내를 위할 줄 아는 송지댁네 바깥양반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그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면서 예찬하고 있다.

 

 향토적인 시어를 사용하여 고향의 모습과 시적 대상을 정감있게 표현하고 있으며, 감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시적 대상의 행위와 정서를 구체적으로 표현하여 실감 나게 제시하고 있다. 또한, 유사한 시구의 반복과 변조로 리듬감을 형성하고 시적 대상의 착한 성품과 묵묵히 일하는 태도를 강조하고 있다.

 

 연 구분 없이 쓰인 이 시는 내용상으로는 시상의 이동에 따라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부분에서는 화자는 새벽녘 고향 마을의 모습을 드러내고, 이어 힘든 머슴살이도 즐겁게 하는 바깥양반의 생활 모습과 아내와 함께 묵묵히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바라보며, 마지막으로 아내를 위하는 바깥양반을 칭송하고 있다.

 

 이 시 고향의 시간적 배경은 새벽이며, 공간적 배경은 감나무골이다. 고향 마을 오막돌집몇 채는 등불이 켜져 있고, ‘송지댁네 외양간은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상태이다. ‘치자꽃 등불깜장 구들등 시각적 이미지가 돋보이고, ‘감나무골’, ‘오두막집’, ‘치자꽃’, ‘구글’, ‘외양간등은 향토적 이미지를 물씬 풍겨 고향의 모습을 정감 있게 드러내고 있다.

 

 이어 화자의 시선은 외양간에서 자연스럽게 송지댁네’ ‘착한 바깥양반으로 옮겨간다. 송지댁네 바깥양반은 천성이 착한 성품이어서 머슴살이 십 년을 어둠이 가시지 않는 새벽부터 소에게 먹이려고 쇠죽을 쑤고물을 길어 나르는 일을 즐겁게 한다. ‘에헤라 나는 보지 못했네/ 에헤라 나는 듣지 못했네는 화자의 시선으로 착한 바깥양반이 즐겁게 일하는 모습을 반복적으로 표현하여 리듬감을 형성하고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그런데 착한 바깥양반은 일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고, 아내를 극진히 위한다. 그 모습을 생솔 부지깽이 아내에게 넘겨주고/ 쓱싹쓱싹 함지박에 쌀 씻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아내에게는 따뜻한 아궁이에 불을 때게 하고, 자기는 찬물에 쌀을 씻는 행위는 아내를 위한 바깥양반의 착한 성품을 드러내는 것이다. ‘쓱싹쓱싹은 쌀 씻는 모습(의태어), ‘쪼륵쪼륵은 뜨물 받는 소리(의성어)는 화자의 정서를 생생하게 드러내기에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화자는 착한 성품을 가지고 즐겁게 일하고, 아내를 위하는 착한 바깥양반대학 나온 광주 양반유학 마친 서울 양반과 대조시켜 배움이 있는 그들보다 송지댁네 바깥양반이 훨씬 나은 인물이라며 그를 칭송하고 있다. 시어 에헤라의 반복과 ‘~ 양반에게서도’, ~ 못하였네등의 동일 시구의 반복이 이 시에 리듬감을 주고 의미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이 시는 고향에 묵묵히 일하는 송지댁네 바깥양반의 부지런함과 아내를 사랑하는 태도를 묘사하고 그를 칭송하는 것이면서도, 향토적인 서정을 그려내는 시인의 시적 경향이 그대로 반영된 작품이라 할 수 있으며, 동시에 인간에 대한 평가는 신분이나 학식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착한 성품에 달려 있음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작자 곽재구(郭在九, 1954 ~ )

 

 

  시인. 전남 광주 출생. 1981중앙일보신춘문예에 <사평역에서>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주로 향토적인 서정과 민중의 삶에 대한 애정을 애상적으로 표현한 작품을 썼다시집으로는 사평역에서(1983), 전장포 아리랑(1985), 서울 세노야(1990), 참 맑은 물살(1995), 꽃보다 먼저 마음을 주었네(1999), 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2011), 와온 바다(2012) 등이 있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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