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한국일보(2015. 8. 14일자)>
초생달
- 김강호
그리움 문턱쯤에
고개를 내 밀고서
뒤척이는 나를 보자
흠친 놀라 돌아서네
눈물을
다 쏟아내고
눈썹만 남은 내사랑
- 《한국단시조156편》(2015)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3연 9행의 정형 시조로, 전통적인 가락에 충실한 형식을 갖추고 있다. 시의 제목인 ‘초생달’은 초승에 뜨는 달인 ‘초승달’의 방언이다. 이걸 모를 리 없는 시인이 굳이 ‘초생달’로 쓴 것은 초승달이 도시보다는 농촌이나 산촌에서 보아야 잘 보이고, 또 보름달과는 다르게 초저녁에 잠시 나타나 눈썹 모양을 한 짙은 슬픔이 배어있는 듯한 형상이므로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처럼 보인다.
초승달은 달이 지구와 태양 사이 일직선상에 놓이는 그믐달을 지나 보름달로 채워져 가는 시기의 초반에 나타나는 모습으로, 음력 초사흗날에 뜨는 달로 눈썹 모양을 한 달이다. 초승달은 초저녁에 서쪽에 잠시 보였다가 이내 지므로, 거의 서쪽에 지는 경우에만 관측할 수 있고, 그 모습이 청초하고 가녀린 듯한 여인으로 비유되어, 문학에서는 예로부터 애상적인 정서를 나타내는 대표적인 소재로 사용되었다.
이 작품은 떠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는 자신의 모습을 ‘초생달’에 투영(投影)하여, ‘초생달’과 ‘눈썹’의 이미지 중첩(重疊)을 통해 초생달과 화자의 사랑을 동일시하고 있다.
시인은 이별한 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안고 창밖 하늘을 바라본다. 시인은 문턱쯤에 고개를 내민 듯 ‘초생달’이 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그런데 그달이 그리움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는 시인을 보고 ‘흠칫 놀라’ 돌아선다. 시인은 초생달을 바라보며 그 모습이 그리움으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생각하여 뒤척이며 잠 못 들어 하는 화자를 보고 놀라 돌아섰다고 하지만, 그러나 실제로 놀란 것은 초생달이 아니라 시인이다. 그 이유는 초생달의 모습에서 감각적이고 관능적인 대상인 여인을 연상하면서 자신의 사랑을 보았기 때문이다. ‘눈썹만 남은 내 사랑’은 시인의 사랑을 투영한 대상인 초생달을 가리키는 것이지만, 화자는 고개를 내미는 초생달의 모습에서 눈물을 닦아내며 그리워한 자신의 사랑을 발견하는 것이다.
위의 시조 <초생달>은 '그리움'이라는 정서를 자연 사물에 덧입히는 고전적인 방법을 택하여 이별한 사랑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을 드러낸 작품으로, 단형시조의 묘미와 더불어 사랑의 의미를 오래 되새기게 한다.
▲작자 김강호 (1960~ )
시조 시인, 전북 무주 출생. 199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바이스 플라이어>로 당선,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아버지》, 《귀가 부끄러운 날》, 《봄날》 등이 있다. 이호우시조문학상 신인상, 올해의 좋은시조상 등을 수상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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