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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대장간의 유혹 / 김광규

by 혜강(惠江) 2020. 4. 18.

 

 

 

 

 

대장간의 유혹

 

 

- 김광규

 

 

 

제 손으로 만들지 않아

한꺼번에 싸게 사서

마구 쓰다가

망가지면 내다 버리는

플라스틱 물건처럼 느껴질 때

나는 당장 버스에서 뛰어내리고 싶다.

현대 아파트가 들어서며

홍은동 사거리에서 사라진

털보네 대장간을 찾아가고 싶다.

풀무질로 이글거리는 불 속에

시우쇠처럼 나를 달구고

모루 위에서 벼리고

숫돌에 갈아

시퍼런 무쇠 낫으로 바꾸고 싶다.

땀 흘리며 두들겨 하나씩 만들어 낸

꼬부랑 호미가 되어

소나무 자루에서 송진을 흘리면서

대장간 벽에 걸리고 싶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온통 부끄러워지고

직지사 해우소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똥덩이처럼 느껴질 때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문득

어딘가 걸려 있고 싶다.

  

 

       - 시집 대장간의 유혹(1991) : 한국대표시인100인선집 수록

 

 

시어 풀이

 

·시우쇠 : 무쇠를 불려서 만든 쇠붙이의 하나. 숙철(熟鐵). 유철(柔鐵).

·모루 : 대장간에서, 달군 쇠를 올려놓고 두드릴 때 받침으로 쓰는 쇳덩이.

 

·송진 : 소나무나 잣나무에서 나는 끈끈한 액체.

·직지사 :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운수리에 있는 절

 

·해우소(解憂所) : 근심을 푸는 곳이라는 뜻으로 절에서 변소를 이르는 말.

·나락 (奈落) : 벗어나기 어려운 절망적 상황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에 대한 치열한 반성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하고자 하는 의지와 함께 현대 산업 문명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담긴 작품이다

 

 이 시의 화자는 현대 문명 속에서 정체성과 개성이 상실되어 무가치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대장간을 떠올리면서 자기의 지난 삶에 대한 반성적 태도와 함께 가치 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현대 아파트와 털보네 대장간을 대비시켜 참다운 가치를 지닌 삶을 살고자 하는 주제 의식을 강조하고 있으며, ‘~고 싶다라는 유사 어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운율을 형상하면서 화자의 소망을 강조하고 있다.

 

 연의 구분은 없으나 내용으로 보면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6행에서는 개성 없고 가치 없이 살아가는 삶에 대한 절망감을, 7~9행에서는 털보네 대장간에 가고 싶은 마음을, 10~18행에서는 개성적이며 가치 있는 존재가 되고 싶은 마음을, 19~25행에서는 과거의 삶을 반성하며 참됨 살을 갈구하는 마음을 담고 있다.

 

 화자는 자신이 '플라스틱 물건'처럼 무의미하고 무기력하고 비주체적이며 쓸모없고 하찮은 존재로 여겨져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이 온통 부끄러워' 질 때면 지금은 사라진 털보네 대장간을 찾아가고 싶어 한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을 '시우쇠처럼달구고, ’모루 위에서 벼리고/ 숫돌에 갈아/ 시퍼런 무쇠 낫'으로 바꾸고 싶어한다. 아니면 대장장이가 '땀 흘리며 두들겨 하나씩 만들어낸/ 꼬부랑 호미가 되어/ 소나무 자루에서 송진을 흘리면서/ 대장간 벽에' 쓸모 있는 물건이 되어 걸리고 싶어 한다. 이것은 담금질과 단련을 통해 새로운 존재로 거듭 태어나고 싶은 화자의 마음을 드러낸 것이다.

그리고, 화자는 자신을 돌아보며 다시 한번 강조한다. '지금처럼 살아온 인생이/ 온통 부끄러워지고/ 직지사 해우소/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똥덩이처럼' 가치 없는 존재라고 느껴질 때, 가던 길을 멈추고 문득 대장간의 벽에 걸린 호미처럼 가치 있는 존재가 되어 쓰일 날을 기다리며 어딘가 걸려 있고 싶어 한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분주하게 살다 보면 삶의 목적도 잊어버리고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가 있다. 어떤 때는 나 자신이 대량생산된 물건의 하나가 되어 쓰이다가 아무렇지도 않게 버려지는 존재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이럴 때 어딘가 찾아가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이 시에서 화자는 쇠가 대장간을 찾아가 이글거리는 불 속에서 호된 달금질을 거쳐 쓸모 있는 무쇠 낫이나 호미라도 되고 싶은 것이다. 우리는 이 시 속에서 현대 문명 속에서 인간성을 잃고 의미 없이 살아가는 현대인이 진정하고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참담한 모습을 보게 된다.

 

 

 

작자 김광규(金光圭, 1941 ~ )

 

 

 시인. 서울 출생. 1975문학과 지성<영산>, <유무> 등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그의 시는 1960년대의 난해하고 현실과 유리된 관념시의 형태를 벗어나, 시적 세계와 현실 세계와의 단절을 메꾸면서 동시에 시의 언어에 살아 움직이는 현실적 생동감을 불어넣어 주는 시를 썼다. 따라서, 평이하고 구체적인 체험이 담긴 탄력 있는 그의 시는 현실과의 간격은 물론이고 시와 독자 사이의 거리도 많이 좁히게 되었다. 그의 시는 평이한 언어와 명료한 구문으로 쓰인 일상시이면서도 그 속에 깊은 내용을 담고 있어 삶의 허구성을 집요하게 비판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첫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1979)을 선보인 뒤 이제까지 아니다 그렇지 않다(1983) · 크낙산의 마음(1986) · 좀팽이처럼(1988) · 아니리(1990) · 물길(1994) ·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1998)등을 잇달아 펴내고, 시선집 반달곰에게(1981) ·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1988) 등을 내놓았다. 이처럼 꾸준히 시를 써오는 동안 제1녹원 문학상’(1981), 5오늘의 작가상’(1981), 4김수영 문학상’(1984), 4편운 문학상’(1994) 등을 받았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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