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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상행(上行) / 김광규

by 혜강(惠江) 2020. 4. 17.

 

 

 

 

 

상행(上行)

 

 

- 김광규  

 

 

 

가을 연기 자욱한 저녁 들판으로

상행 열차를 타고 평택을 지나갈 때

흔들리는 차창에서 너는

문득 낯선 얼굴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것이 너의 모습이라고 생각지 말아 다오

오징어를 씹으며 화투판을 벌이는

낯익은 얼굴들이 네 곁에 있지 않느냐,

황혼 속에 고함치는 원색의 지붕들과

잠자리처럼 파들거리는 TV 안테나들

흥미 있는 주간지를 보며

고개를 끄덕여 다오

농약으로 질식한 풀벌레의 울음 같은

심야 방송이 잠든 뒤의 전파 소리 같은

듣기 힘든 소리에 귀 기울이지 말아 다오

확성기마다 울려나오는 힘찬 노래와

고속도로를 달려가는 자동차 소리는 얼마나 경쾌하냐

예부터 인생은 여행에 비유되었으니

맥주나 콜라를 마시며

즐거운 여행을 해 다오

되도록 생각을 하지 말아 다오

놀라울 때는 다만 '!'라고 말해 다오

보다 긴 말을 하고 싶으면 침묵해 다오

침묵이 어색할 때는

오랫동안 가문 날씨에 관하여

아르헨티나의 축구 경기에 관하여

성장하는 GNP와 증권 시세에 관하여

이야기해 다오

너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 시집 반달곰에게(1981)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화자가 서울로 올라오는 상행 열차 안에서 바라본 1970년대 우리나라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근대화의 모순과 소시민적인 삶의 방식을 반어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이 시는 처음부터 끝까지 냉소적이고 반어적인 어조로 오도(誤導)된 근대화된 현실을 풍자하고, 근대화를 상징하는 다양한 소재를 활용하여 주제를 형성하고 있다. 1970년대는 외형적으로는 경제 성장과 근대화를 이뤘지만 진정한 의미의 근대화는 이루지 못한 시기였다. 그러므로, 화자는 잘못된 근대화를 비판하며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이나 진실을 알려는 노력 없이 일상에 안주하여 살아가는 소시민적 삶을 경계하고 있다.

 

 화자는 서울로 올라가는 열차 안에서 차창 밖을 바라보며 시대와현실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데, 내용상 네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 부분 1~5행은 차창 밖의 풍경이 낯선 얼굴너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일상의 익숙함에서 벗어나 문득 새로이 발견하게 되는 비판 의식을 표현하고 있다. ‘낯선 얼굴은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을 지닌 존재이며, ‘너의모습은 현실에 순응해 버린 자화상으로, 근대화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가져함을 반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6~11행까지는 일상의 낯익은 모습들, 근대화의 외면만 바라보는 현실하고 있다. ‘오징어를 씹으며 화투판을 벌이는 얼국'황혼 속에 고함치는 원색의 지붕', '잠자리처럼 파들거리는 TV 안테나' 등은 소시민으로 살아가는 익숙한 삶의 모습과 농촌의 발전된 모습을 보여 주는 것 같지만, 실상은 주변 환경과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바람직한 서민들의 삶과 유리되어 있다. 1970년대는 외형적으로 경제 성장과 근대화를 이룩했지만, 그것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일 뿐, 진정한 의미의 근대화는 아니다. ‘고개를 끄덕여다오는 소시민적 삶의 모습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반어적 표현이다.

 

 12~19행에서는 부정적인 사회 현실에 대한 비판 의식을 가져달라는 바람을 적고 있다. 농민의 고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농약으로 질식한 풀벌레의 울음’, 근대화의 화려한 모습 뒤에 가려진 고통이 담긴 '심야 방송이 잠든 뒤의 전파 소리 같은 듣기 힘든 소리'에는 귀 기울이지 말라고 한다. 이것은 언론을 통제하던 당시의 현실을 나타낸다. 반면, ‘확성기마다 들려오는 힘찬 노래’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를 타고 매주, 콜라를 마시며 여행하며 근대화의 발전을 즐기라고 한다. 이것은 별 의식 없이 군부 독재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삶에 대한 반어적인 표현이다.

 

 20~29행에서는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하여 비판 의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되도록 생각을 하지 말''침묵'하라는 것은 당시 군부 독재에 대한 비판이나 아무 의식 없이 안이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에 침묵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침묵이 어색할 때가문 날씨(눈앞에 당면한 걱정)' 아르헨티나의 축구 경기'(우리와 직접 관계가 없는 일), 'GNP'(외양적 성장), '증권 시세'(자신의 경제적 관심사)와 같은 중요하지 않은 일들에 관하여 이야기를 하라고 한다. 이것은 일종의 반어적인 표현으로, 시적 화자가 정작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삶에 대한 성찰이나 진실을 알려는 노력 없이 일상에 안주하며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에 대한 비판이다. 마지막 '너를 위하여나를 위하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러한 비판은 작가 자신에게도 향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시인은 현실의 안락함에 매몰되어 버린 소시민들의 태도를 비판하고, ‘근대화라는 미명아래 희생만이 강요된 서민들의 아픔과 고통에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이러한 주제를 반어적이고 풍자적인 어조로 표현함으로써, 왜곡되고 부정적인 현실에 대한 비판이 더욱 더 신랄하게 제시되고 있다

 

 

작자 김광규(金光圭, 1941 ~ )

 

 시인. 서울 출생. 1975문학과 지성<영산>, <유무> 등을 발표하여 등단하였다. 그의 시는 1960년대의 난해하고 현실과 유리된 관념시의 형태를 벗어나, 시적 세계와 현실 세계와의 단절을 메꾸면서 동시에 시의 언어에 살아 움직이는 현실적 생동감을 불어넣어 주는 시를 썼다. 따라서, 평이하고 구체적인 체험이 많이 담긴 탄력 있는 그의 시는 현실과의 간격은 물론이고 시와 독자 사이의 거리도 많이 좁히게 되었다. 그의 시는 평이한 언어와 명료한 구문으로 씌어진 일상시이면서도 그 속에 깊은 내용을 담고 있어 삶의 허구성을 집요하게 비판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첫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1979)을 선보인 뒤 이제까지 아니다 그렇지 않다(1983) · 크낙산의 마음(1986) · 좀팽이처럼(1988) · 아니리(1990) · 물길(1994) ·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1998)등을 잇달아 펴내고, 시선집 반달곰에게(1981) ·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1988) 등을 내놓았다. 이처럼 꾸준히 시를 써오는 동안 제1녹원 문학상’(1981), 5오늘의 작가상’(1981), 4김수영 문학상’(1984), 4편운 문학상’(1994) 등을 받았다.

 

 

 

/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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