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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문학기행(국내)

'시인 기형도의 집' 탐방

by 혜강(惠江) 2021. 9. 20.

 

'시인 기형도의 집' 탐방

 

삶의 우수(憂愁)를 노래하다 요절한 「안개」의 시인, 기형도

 

 

글·사진 남상학

 

 

 

 

 

  기형도문학관은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그의 등단 작품인 <안개>에 나오는 표현처럼 ‘공장의 검은 굴뚝들이 일제히 하늘을 향해 솟아 있고 을씨년스럽게 수시로 안개가 끼던 곳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산업화로 인해 옆으로 제2경인고속도로가 지나가고, 앞으로는 왕복 3차선 ’오리로‘ 너머에 CNG 충전소가 있다. 바로 옆에는 SK주유소와 글로벌 기업인 ‘이케아(IKEA)' 매장과 KTX 광명역사 등이 들어서 있다. 그래서 문학관 자리로는 기형도 작품에 나오는 풍광과는 다르더라도 그리 어울리지 않는 곳이다. 다소 기형도답다고나 할까? 그래서 오히려 기형도 문학관 자리로는 가장 제격(?)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다.

 

  시인 기형도(奇亨度, 1960~1989)는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시인으로,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에서 태어났으나 5살 때부터 타계할 때까지 광명시 소하동에서 살았다.

 

  이런 이유로 기형도를 사랑하는 광명시민들과 광명시는 만 29세의 젊은 나이로 아깝게 세상을 떠나자 그를 기리는 추모 행사, 기형도 시비 건립, 기형도 문화공원 조성 등 시인을 기념하는 다채로운 사업과 행사를 진행해 왔다.

 

  광명시는 시인을 기리는 문학관을 짓기로 확정하고 이에 시인을 추모하는 광명시민들과 기형도 시인의 문우들, 그리고 유족이 함께 ‘시인 기형도를 사랑하는 모임’을 결성하고, 광명에서 자라왔던 고인의 시문 및 시학에 대한 업적을 기리고자 2017년 11월 10일 개관하기에 이르렀다.

 

  2018년 3월 경기도 제1호 공립 문학관으로 등록(제18-문 01-호)한 기형도 문학관은 시인의 문학적인 업적을 기리며, 그의 문학에 대한 다양한 문학적 성과를 확산시키는 동시에 지역의 문학발전을 위하여 특히 어린이·청소년들이 문학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사업을 운영하고 있다. 2021년에는 새로운 예비작가들의 발굴을 위해 전국 단위 미등단 대학생을 대상으로 창작시 공모전을 진행 중이다.

 

 

 

 

 

기형도 문학관 둘러보기

 

 

  기형도 문학관은 기형도 문학관은 광명시를 대표하는 문학관으로서 기형도 시인의 문학 자료의 체계적 수집과 보존, 연구와 전시 및 교육 기능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이다.

 

  문학관 건물을 우러러보니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벽면에 기형도의 시 <정거장에서의 충고>의 첫 행 “미안하지만 나는 이제 희망을 노래하련다”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문학관과 주유소의 경계를 이루는 벽면에는 활짝 웃는 기형도의 사진과 간단한 약력, 작품 <엄마 걱정>, <빈집>을 대리석 바탕에 새긴 전시판을 설치하여 문학관과 어울리게 했다.

 

  전체면적 879. 78㎡(지상 3층)에 1층은 전시실, 2층은 북카페와 도서 공간 3층은 강당, 창작체험실로 이루어져 있다. 문학관을 들어서면 1층 전시관은 기형도가 걸어온 길, 기형도 저서 시집, 기형도의 시론 및 시학 등 기형도 시인의 자필 일기장, 육필 원고, 동아일보 신춘문예 상패 등 기형도의 유품들을 8개 코너로 나누어 전시하고 있다.

 

 

 

 

 

첫째 코너 ‘시인 기형도’

 

  이곳은 기형도가 걸어온 삶과 문학에 대한 전반적인 조감도가 펼쳐져 있으며, 작품 발표 연도 및 시인의 생애를 파노라마처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꾸몄다. 대표작에 <안개>, <빈집>, <질투는 나의 힘> 등이 있다.

 

 

 

 

 

둘째 코너, 이야기 하나 ‘유년의 윗목’

 

 

  이곳은 시인의 유년 시절부터 학창시절의 추억이 담긴 사진첩 등과 관련 시편으로 구성되었다. 기형도는 1960년 3월, 한국 전쟁 중 황해도에서 인천 옹진군 연평도로 피난하여 살던 공무원인 기우민의 3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나서 1964년 경기도 광명시로 이사 온 후 시흥초등학교에 입학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간척사업에 손을 대었다가 크게 실패하고 1965년 경기도 시흥군 서면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로 이주했다. 집 근처에 기아자동차 공장이 자리 잡고 있었고 안양천을 따라 둑길이 이어져 있었다.

 

  지금은 철거되어 창고가 자리 잡고 있지만, 소하리의 이러한 풍경은 그의 시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안개가 유독 많이 끼었던 시흥군(지금의 광명시), “거대한 안개의 강”, 그 긴 방죽 위에 서서 유년기를 보냈다.

 

  기형도가 살던 곳은 소하리였지만 학교는 서울로 통학하였다. 서울의 시흥초등학교, 신림중학교를 거쳐 중앙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9년 연세대학교에 입학하였다. ]1969년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이후 어머니가 생계를 꾸렸다. 시장에 나가는 절박한 어머니의 모습 역시 기형도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기형도는 녹록지 않은 살림을 걱정하며 어머니를 생각하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1975년 공장을 다니던 바로 위의 누나가 사망하였다. 몸져누운 아버지와 누이의 갑작스러운 사망 사건은 기형도의 마음에 큰 상처가 되었고, 기형도는 누이가 죽은 뒤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다.

 

 

 

 

 

셋째 코너 ‘안개의 강’

 

 

  이곳은 관념이 아닌, 시의 통찰과 직접적인 경험을 토대로 새롭게 그려낸 문단 등단작 <안개>를 텍스트 애니메이션과 영상으로 표현하였다. 한 편의 시를 입체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감각적인 공간이다. 1985년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학사 학위를 취득하던 해,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에 〈안개〉가 당선되었다.

 

  “아침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 ⃫ 이 읍에 처음 와 본 사람은 누구나/ 거대한 안개의 강을 거쳐야 한다./ 앞서간 일행들이 천천히 지워질 때까지/ 쓸쓸한 가축들처럼 그들은/ 그 긴 방죽 위에 서 있어야 한다./ 문득 저 홀로 안개의 빈 구멍 속에/ 갇혀 있음을 느끼고 경악할 때까지. ⃫ 어떤 날은 두꺼운 공중의 종잇장 위에/ 노랗고 딱딱한 태양이 걸릴 때까지/ 안개의 군단(軍團)은 샛강에서/ 한 발자국도 이동하지 않는다./ 출근길에 늦은 여공들은 깔깔거리며 지나가고/ 긴 어둠에서 풀려나는/ 검고 무뚝뚝한 나무들 사이로/ 아이들은 느릿느릿 새어 나오는 것이다./ 안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은 처음 얼마 동안/ 보행의 경계심을 늦추는 법이 없지만,/ 곧 남들처럼 안개 속을 이리저리 뚫고 다닌다. 습관이란/ 참으로 편리한 것이다. 쉽게 안개와 식구가 되고/ 멀리 송전탑이 희미한 동체를 드러낼 때까지/ 그들은 미친 듯이 흘러 다닌다. ⃫ 가끔씩 안개가 끼지 않는 날이면/ 방죽 위로 걸어가는 얼굴들은 모두 낯설다. 서로를 경계하며/ 바쁘게 지나가고, 맑고 쓸쓸한 아침들은 그러나/ 아주 드물다. 이곳은 안개의 성역(聖域)이기 때문이다.  (이하 생략)”

 

     - 기형도의 ‘안개’ 일부

 

  시 <안개>는 소하동의 풍경을 배경으로 하였다고 한다. ‘안개’는 기형도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이자 그의 시 세계 상징이다. 기형도가 내보이는 시 세계는 음울하고 쓸쓸하다. 안개 속에서 이동하는 이들은 모두 처연한 느낌으로 전달된다.


  ‘안개’는 산업화에 대한 비판으로 자주 해석되지만, 앞을 볼 수 없는 막막한 청춘의 중얼거림으로 읽힌다. 그가 쓰는 젊음의 시편들은 암담하다.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질투는 나의 힘’)라든지, ‘나는 플라톤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 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대학 시절’) 등이 그렇다.

 

 

 

 

 

넷째 코너 이야기 둘 ‘은백양의 숲’

 

 

  이곳은 문학청년으로 치열하게 살았던 시기의 동인 활동 및 대학 시절의 문학상 수상과 관련된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연세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다녔으나 대학 생활에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은 연세문학회였다. 1980년 서울의 봄을 맞아 연세대학교 학보에 〈노마네 마을의 개〉를 기고하였다가 공안 당국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1981년 휴학하고 방위로 소집되어 안양에서 근무하였다. 이 시기 경기도 안양의 문학동인지 《수리》에 참여하였다. 1983년 복학하여 〈식목제〉로 《연세춘추》가 시상하는 《윤동주문학상》을 수상하였다.

 

 

 

 

 

다섯째 코너 이야기 셋 ‘저녁 정거장’

 

 

  이곳은 등단 이후 ‘시운동’ 동인으로 참여하는 등 활발한 문단 활동과 당시 시인이 신문기자로 일했던 일상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졸업 전 1984년 중앙일보에 입사하여 정치부, 문화부, 편집부 기자로 일하기 시작하였다. 이후 《문학사상》, 《현대문학》, 《한국문학》과 같은 문학지에 지속해서 작품을 발표하였다. 1988년에 그는 문학사에 남아 있는 ‘시운동’ 동인 활동을 했다.

 

 

 

 

여섯째 코너는 ‘빈집’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로 시작하는 기형도의 <빈집>을 영상과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 잘 있거라, 짧았던 밤들아/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아/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아, 잘 있거라/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아/ 잘 있거라,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장님처럼 나 이제 더듬거리며 문을 잠그네./ 가엾은 내 사랑 빈집에 갇혔네"

     - 기형도의 시 '빈집전문

 

  이 시는 기형도 시인의 마지막 시다. 이 시에서 사랑을 잃은 화자는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이 글을 쓰는 행위는 자신이 잃은 것을 확인하는 행위이며, 동시에 자신의 사랑에 이별을 고하는 마지막 의식일 것이다. 슬픔과 의미가 있던 모든 것과의 이별로 인해 공허해진 내면을 ‘빈집’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는 사랑을 잃었다고 고백하고‘썼다.’ 그리고 그는 ‘잘 있거라’고 작별의 인사를 나눴다. 그건 사랑과의 작별이 아니라‘ 짧았던 밤들’ ‘창밖을 떠돌던 겨울 안개들’ ‘아무것도 모르던 촛불들’과의 작별이다. ‘공포를 기다리던 흰 종이들’에게도 ‘망설임을 대신하던 눈물들’에게도 ‘잘 있거라’고 작별을 한다. 그는 사랑과 연애의 배경과 배후가 되었던 모든 것에게 작별하고 떠났다.

 

  그러나 기형도의 생애는 안타깝게도 단명했다. 1989년 3월 7일 새벽 종로의 파고다극장에서 심야 영화 영화를 관람하다가 뇌졸중으로 사망하였다. 향년 2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기형도는 장례를 치른 후 안성의 천주교 묘지에 묻혔다. 묘비에는 세례명 ‘그레고리오’가 새겨져 있다. 기형도의 무덤은 문학을 동경하고 시를 꿈꾸는 이들에게 일종의 성지다. 2년 뒤에는 그의 아버지도 그의 옆에 묻혔다. 시인의 요절과 죽음의 그림자 짙게 드리워진 시집은 이후 기형도 신화를 빚어냈다.

 

 

 

 

 

일곱째 코너 ‘더 넓게 더 멀리’

 

  이 코너에서는 시인을 추억하는 지인들의 인터뷰와 평문을 만날 수 있다. 기형도의 시 필사, 젊은 시인들의 기형도의 시 낭독 체험을 할 수 있다.

 

  기형도 사후 10년 동안 문학계에서는 평론과 추도문을 합하여 그를 다룬 산문이 45편, 그를 모티브로 한 시가 21편이 발표되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사망은 문단과 그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고, 유고시집 《입속의 검은 잎》(1989)이 나왔다. 1990년 산문을 모아 《짧은 여행의 기록》이 출간되었다. 그리고 1994년 미발표 유고 시를 모은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가 나왔고, 1999년에는 《기형도 전집》이 정리되어 나왔다. 또, 20주기 추모문집으로 <정거장에서의 충고-기형도의 삶과 문학>(2009년)과 30주기 시전집 <길 위에서 중얼거리다> (2019년) 가 발간되었다.

 

  그는 관념어와 추상어를 남발하는 폐단이 있었으나 독특한 색채의 시를 많이 썼다. 그의 시는 전반적으로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의 시가 주를 이룬다. 당시의 정치적 색채가 짙은 민중시, 노동시의 물결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시 세계를 구축한 덕분이었다. 기형도 전집에서는 "기형도의 언어들은 유예된 죽음의 언어들이다"라고 평가한다.

 

  문학 평론가 김현은 그의 작품 세계를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이라 일컬었다. 7, 80년대의 암울한 시대 상황 속 가난과 고통을 글에 녹여낸 한편 일면의 따뜻함과 희망을 노래했기 때문이다.

 

  문학평론가인 서울대 방민호 교수는 《입속의 검은 잎》 속의 시에 대하여 말했다. “널리 알려진 그의 시 ‘입속의 검은 잎’을 읽을 때마다 나는 자신의 이른 죽음을 향한 그의 예감과 공포를 맛본다. 그것은 요즘 사람들이 해석하기 좋아하는 ‘현실’의 시는 분명 아니었고, 그렇다고 해서 완전한 ‘존재’의 시도 아니었다. 그는 현실과 존재 사이에서 삶의 우수를, 그 도저한 허무를 살다 가버린 것이었다.” (2020. 2. 7 / 세계일보)고 말이다.

 

 

 

 

 

여덟째 코너 (기획전시실) ‘사진으로 보는 기형도

 

 

  이 코너에서는 생전 시인의 사진 20여 점과 소하동의 옛집의 사진과 노트에 그린 캐리커처 등을 볼 수 있다. 필자가 탐방했을 때에는 ’기형도 소리에 담다‘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었다. 이것은 직접 기형도 시인의 대표시 10편을 읽고, E-mail을 발송할 수 있다. 시를 눈으로 읽는 것을 넘어서 다양한 방법으로 시인과 시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을 제공한다.

 

 

 

 

 

2층 북카페

 

 

  북카페는 기형도 시인과 그에 관한 생각이나 글을 후기를 써서 남길 수 있다. 이곳에서는 창밖으로 기형도 문학공원이 훤히 내다보인다. ’도서 공간‘은 기형도 시집과 전집을 포함하여 2,000여 권의 시집 등이 비치되어 있어서 관람객은 누구나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다. 3층 강당과 창작체험실에서는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문학 행사가 진행된다.

 

 

 

 

 

기형도 문화공원

 

 

  문학관 뒤편으로는 2015년 7월 ‘기형도 문화공원’이 들어섰다. 공원 중심부는 원형보존림으로 남아 있으며, 시민이 산책하며 기형도 시인의 시를 읊조리고 감상할 수 있도록 1.17km의 ‘기형도 시인길’도 조성되었다.

산책로를 따라 축대벽 벽면에 기형도 시인의 시<백야>, <입속의 검은 잎>, <식목제>, <흔해빠진 독서> 등 4개의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다.

 

 

 

 

 

상세정보

 

►주소 : 경기 광명시 오리로 268 (소하동 산 144)

►전화 : 02) 2621-8860

►가는 법 : 1호선 광명역 2번 출구에서 버스 1-3, 2, 3, 12, 17, 505, 5627, 5633번 / 철산역 2번 출구에서 2, 3, 12, 17번 버스 / 석수역 1번 출구에서 1-3 이용 기형도 문학관 역에서 하차

►주차 : 기형도 문학관 제2 주차장 이용

►관람 : 09:00~18:00 (3월~10월), 09:00~17:00( 11월~2월)

►휴관 : 월요일, 1월 1일, 설날 추석 당일)

►요금 : 무료

►먹거리 : 이케아 매장 내 음식 코너
►주변 볼거리 : 광명동굴, 광명시장, 충현박물관, 광명 이케아

 

 

 

▲교통편

 

▲이케아 내의 음식들

 

탐방일 2021. 9.17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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