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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문학기행(국내)

박두진 문학관 탐방

by 혜강(惠江) 2021. 9. 19.

 

박두진 문학관 탐방

 

생명력의 원천으로서의 ‘자연’과 ‘신’을 노래한 시인

 

 

글·사진 남상학

 

 

 

 

 

  혜산(兮山) 박두진(朴斗鎭, 1916~1998)은 일제강점기부터 60년 동안 20여 권의 시집을 펴내며 1,000여 편의 시와 400편이 넘는 산문을 발표했다.

 

  박두진 문학의 향기를 찾아 박두진 문학관을 찾아가는 길은 상쾌했다. 따가운 햇볕이 곡식을 누렇게 영글게 하는 9월의 가을하늘이 유난히 푸르고 화창했다.

 

  박두진 시인은 1916년 3월 10일 안성에서 태어났다. 박두진은 '고장치기'로 불리던 안성시 보개면 동신리에서 유년 시절을 보냈다. 이어 안성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4년 안성을 떠날 때까지 박두진이 안성에서 살던 20여 년은 박두진의 문학적 상상력과 정서를 길러준 시간이었다.

 

  청룡산(서운산)을 넘는 강렬한 햇빛과 고장치기의 짙푸른 하늘, 거센 바람으로 기억된 안성의 자연은 훗날 박두진 시의 중요한 소재가 되었다. 그래서 안성의 자연환경은 박두진 문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박두진 문학관 둘러보기

 

 

  박두진문학관은 박두진 시인이 묻힌 기좌리와 안선의 진산(鎭山)인 비봉산이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안성맞춤랜드 북쪽 자락에 2018년 11월 문을 열었다.

 

  10,512㎡ 부지에, 총면적 999.45㎡에 지상 3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문학관 뜰 잔디밭에는 박두진의 시론과 시 「해」와 「아침 날개」를 새긴 시비가 서 있다. “시는 모든 것 위에서 최고의 비판이자 최고의 도덕적 이상 미학이며 가장 높은 단계의 인간성을 실현해야 한다.”라는 그의 말은 박두진 시의 목표를 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문학관을 들어서면 1층에는 안내 데스크, 북카페, 수장고가 있다. 북카페에는 2,000여 권의 도서가 준비된 공간으로, 관람객이라면 누구나 서가에 꽂힌 도서를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고,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다.

 

  2층에는 전시실과 다목적실이 있다. 3부로 이루어진 전시실은 박두진 시인의 삶과 문학적 발자취를 돌아볼 수 있다. 시인이 펴낸 시집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다목적실에서는 다양한 주제의 기획전시를 개최하고, 작가 초청 문학 특강, 어린이 문학 교실,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교육을 통해 관람객과 시민에게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공간인 셈이다.

 

  그리고 3층으로 올라가면 전망대다. 안성 최대의 안성맞춤랜드와 박두진 시인의 문학적 토대가 되는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직접 느껴볼 수 있다.

 

 

 

 

 

전시실 1부, 박두진의 시를 읽다.

 

 

  이제 본격적으로 문학관의 전시실을 둘러볼 차례다. 박두진 문학관의 상설전시실은 1부 ‘박두진의 시를 읽다’ / 2부 ‘박두진의 일상을 보다,’/ 3부 ‘박두진의 예술세계와 만나다’ 등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박두진의 시를 읽다’ 코너에는 박두진의 문학적 노정과 박두진이 펴낸 시집 등을 통하여 박두진 초기 시와 중기, 후기 시의 경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박두진은 일제의 탄압이 극에 달하던 1930년대 말, 어둠을 밝히며 떠오르는 해처럼 문단에 등장했다. 1939년 6월 『문장』(5호)에 정지용 시인의 추천으로 「향현」과 「묘지송」이 발표되면서 시인으로서의 첫걸음을 시작한다.

 

  박두진은 같은 해 9월 『문장』(8호)에 「낙엽송」, 다음해 1월 『문장』(12호)에 「의(義)」, 「들국화」까지 총 3회의 추천을 받으며 주목을 받는다. 정지용 시인은 당시 박두진의 시에서 나타난 개성을 ‘식물성(植物性)’, ‘신자연(新自然)’이라는 표현으로 소개했다.

 

 

 

 

 

초기 , 생명의 원천으로서의 ‘자연’을 통해 희망을 노래하다.

 

 

  박두진은 암울한 시대 상황에서도 역동적인 생명의 원천으로서의 ‘자연’을 통해 희망을 노래하는 시인으로 행보를 시작한다. 박두진은 1941년 4월 『문장』이 폐간된 이후에도 일제의 감시를 피해 숨어서 한글로 시작(詩作)을 이어갔다.

 

  이러한 박두진의 인내는 비로소 해방 이후 꽃을 피우게 된다. 1946년 6월, 박두진은 『문장』을 통해 등단한 문우 조지훈 · 박목월과 함께 시집 『청록집』을 발간한다. 박두진은 『청록집』 발간을 계기로 조지훈, 박목월과 함께 ‘청록파’로 불리게 된다. 『청록집』에 수록된 「향현」, 「묘지송」 등 자연을 통해 현실을 극복하려는 정신을 담은 12편이 실려 있다.

 

 

 

 

 

  “아랫도리 다박솔 깔린 산 넘어, 큰 산 그 넘어 산 안 보이어,/ 내 마음 둥둥 구름을 타다. ⃫ 우뚝 솟은 산, 묵중히 엎드린 산, 골골이 장송들어섰고, 머루 다래넝쿨 바위/ 엉서리에 얽혔고, 샅샅이 떡깔나무 억새풀 우거진 데, 너구리, 여우, 사슴, 산토끼,/ 오소리, 도마뱀, 능구리 등 실로 무수한 짐승을 지니인/ 산, 산, 산들! 누거 만년 너희들 침묵이 흠뻑 지리함 즉 하매,/ 산이여! 장차 너희 솟아난 봉우리에 엎드린 마루에 확확 치밀어 오를 화염을/ 내 기다려도 좋으랴. ⃫ 핏내를 잊은 여우 이리 등속이, 사슴 토끼와 더불어 싸리순 칡순을 찾아 함께 즐/ 거이 뛰는 날을 믿고, 길이 기다려도 좋으랴?”

 

- 「향현(香峴)」 전문

 

  ‘산’이라는 자연을 소재로 한 이 시는 암담한 현실에서 대립과 갈등을 극복하고 화합과 평화를 갈망하는 자연 친화적, 평화 지향적인 시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산아, 우뚝 솟은 푸른 산아. 철철철 흐르듯 짙푸른 산아. 숱한 나무들, 무성히 무성히 우거진 산마루에, 금빛 기름진 햇살은 내려오고, 둥둥 산을 넘어, 흰구름 건넌 자리 씻기는 하늘. 사슴도 안 오고, 바람도 안 불고, 넘엇골 골짜기서 울어오는 뻐꾸기…”처럼, 자연물인 ‘청산’을 통해 밝고 평화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을 노래하는 「청산도」와 궤를 같이한다.

 

  1946년 『상아탑』에 발표했던 「해」를 표제작으로 삼아 1949년 5월 첫 개인시집 『해』를 발간한다. 일제강점기 후반의 암울한 민족적 현실을 빛의 속성을 지닌 ‘해’를 통해 극복하려는 시적 의지가 보이는 이 시집은 현재까지도 박두진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시집 『해』에는 시 「해」와 「해의 품으로」, 그 외 「도봉(道峯)」, 「바다」 등 자연을 배경으로 쓴 시편이 수록되어 있다.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 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 먹고, 이글이글 애띤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 달밤이 싫여, 달밤이 싫여, 눈물 같은 골짜기에 달밤이 싫여, 아무도 없는 뜰에 달밤이 나는 싫여······ ⃫ 해야, 고운 해야, 늬가 오면, 늬가사 오면, 나는 나는 청산이 좋아라. 훨훨훨 깃을 치는 청산이 좋아라. 청산이 있으면 홀로래도 좋아라. ⃫ 사슴을 따라 사슴을 따라, 양지로 양지로 사슴을 따라, 사슴을 만나면 사슴과 놀고, ⃫ 칡범을 따라 칡범을 따라, 칡범을 만나면 칡범과 놀고…. ⃫ 해야, 고운 해야, 해야 솟아라. 꿈이 아니래도 너를 만나면, 꽃도 새도 짐승도 한 자리에 앉아, 워어이 워어이 모두 불러 한 자리 앉아, 애띠고 고운 날을 누려 보리라.”

 

                           - 「해」 전문

 

 

 

 

 

  이 시는 어둠과 밝음의 이미지를 대립적으로 배치하여 어둠의 세계는 가고, 밝고 평화로운 세계가 오기를 바라는 소망을 노래하고 있다. 어둠은 절망적인 현실을 나타내며, 밝음은 절망을 극복한 새로운 삶의 세계를 나타낸다. 해방 후 박두진은 다양한 문인 단체에서 중심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문학관(觀)과 문학적 신념을 키워나갔다.

 

  “…복사꽃 피고, 살구꽃 피는 곳, 너와 나와 뛰놀며 자라난, 푸른 보리밭에 남풍은 불고, 젖빛 구름, 보오얀 구름 속에 종달새는 운다. ⃫ 기름진 냉이꽃 향기로운 언덕, 여기 푸른 잔디밭에 누워서, 철이야, 너는 늴 늴 늴 가락 맞춰 풀피리나 불고, 나는, 나는, 두둥싯 두둥실 붕새춤 추며, 막쇠와, 돌이와, 복술이랑 함께, 우리, 우리, 옛날을, 옛날을, 뒹굴어 보자.

 

- 「어서 너는 오너라」 일부

 

  이 시는 1946년 6인 시집 〈청록집〉에 수록된 박두진의 산문시이다. 해방은 일제강점기의 질곡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제의 탄압으로 해체되었던 전통적인 삶의 질서, 즉 공동체적인 삶을 회복하는 것이 시인이 살던 시대의 과제였다. 그러나 조국 해방의 참모습은 단순히 국토를 회복하는 것만이 아니다. 일제의 탄압 때문에 유랑하던 동포들이 온전히 자기 삶의 터전으로 돌아와 다시 옛날과 같은 공동체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진짜 해방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시인은 ‘복사꽃’이 핀 고향 마을로 ‘어서 오라’고 소리치고 있다.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고향 안성과 대구 ‘월배 마을’로 피난 갔던 박두진은 창공구락부(공군 종군문인단)에서 활동을 이어갔고, 공군 기관지 『코메트』, 문예지 『전선문학』 등의 지면을 통해 국군의 활약을 전파하고 전쟁의 고통을 널리 알리는 데에 힘썼다.

 

 

중기, 왜곡된 현실에 대한 부정과 시적 저항

 

 

  1954년에 나온 박두진의 두 번째 시집 『오도』는 6·25전쟁으로 인해 대구 피난 중 썼던 시를 주로 수록했다. 「오도」, 「아침에」, 「오월의 기도」 등 모두 5부 23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전쟁 이후 박두진의 강직한 성정(性情)은 올곧은 지성으로 이어졌다. 이 시기 박두진의 시에서는 왜곡된 현실에 대한 강한 부정과 저항정신, 민족애와 인류애에 헌신하려는 휴머니즘적 정신이 강렬하게 나타난다. 『거미와 성좌』(1961), 『인간밀림』(1963), 『하얀 날개』(1967) 등의 시집은 박두진 시의 중요한 속성 가운데 하나가 준열한 역사의식에 있음을 알려준다.

 

  네 번째 시집인 『거미와 성좌』에는 6·25전쟁과 4.19와 같은 민족적 시련과 비극적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역사의식이 주로 담겼고, 다섯 번째 시집인 『인간밀림』에는 자연과 생명에 대해 동경과 함께 정치적 억압과 도덕적 부패를 우회적으로 그렸다.

 

  민족을 사랑하는 애국적인 시인이고 지조의 시인인 그는 격동의 시대를 살면서 자신을 굽히지 않았다. 항상 자신에게 정직하고 역사 앞에 떳떳하고자 했다. 불의와 부정에 대해 강한 저항을 보인 그는 독재 권력 앞에서도 시로써 질타했다.

  ”우리는 알고 있다./ 누가 또 이 나라와 백성을 팔아넘기려 하는지를/ 우리는 이미 똑똑히 보아 알고 있다/ 어떻게 또 우리가 지금/ 팔려 넘어가려 하는지를./ 조국 또 민족의 이름으로,/ 자주, 자유, 독립국가의 시민/ 그 당당해야 할 민권의 이름으로 요구한다. 우리는/ 다만 한 가지/ 한일 굴욕 매국 협정 일체를 즉각 파기하라!/ 그 더러운 망국조약의 비준을 즉각 포기하라!“


   ―「우리는 또 다시 노예일 수 없다」(1965년 『사상계』 7월호) 중에서


  인용의 시에서는 독재 권력에 맞서는 시인의 결연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그의 의기는 독재 권력의 탄압을 자초하게 했고 그것으로 인하여 혜산은 한동안 숨어지내야 했다.

 

 

 

 

 

후기, 신(神)의 의지와 수석을 통해 자연의 섭리를 노래하다.

 

 

  박두진은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수석과 종교를 통해 새로운 시적 시도를 모색한다. 『사도행전』(1973), 『고산식물』(1973) 등의 시집은 종교적 색채를 드러낸 것이다. 『고산식물』은 『하얀 날개』 이후의 시를 모아 발표한 시집이며, 『사도행전』은 주로 기독교적 신념이 담긴 시편을 수록하였다.

 

 "~ 타는 목의 목마름/ 어딜까. 아, 당신 강은 어딜까./ 피가 그 물이었던,/ 말씀이 그 강이었던,/ 어딜까, 아 당신 강물 어디 흐를까./ 가도 가도 당신의 곳 피로 안 닿고,/ 가도 가도 당신 말씀 강물 안 닿고,/ 한낮을 으릉대는 마른 우렛소리./ 한낮을 활활 타는 전신 목마름."

 

  - 「사도행전」 5중에서

 

  "~ 이제는/ 나는 아네/ 불을 질러 나의 영혼/ 하늘 불사르는 / 너의 눈 그/ 영의 열도(熱度)/ 스스로는 모르는/ 다시는 못 갈라질/ 너와 나의/ 타오름/ 하나로의 그 영원을/ 이제는 아네."

 

  - 「사도행전」 7중에서

 

  시집 『사도행전』에는 보편적 삶의 형태와 이상적 삶을 바탕으로 예수의 행적을 형상화하여 연작 형태로 발표한 것으로 <사도행전> 20편을 비롯하여 모두 43편의 시가 실렸다. 저자는 『사도행전』 자서에서 연작시 <사도행전>은 ”기독교 성서에서 말하는 <사도>에 연유한 제목이었고 그 주제였다.“고 피력한 바 있다.

 

  따라서 이 시편들은 신을 향한 구도적인 자세를 노래한 것으로 그의 독실한 기독교적인 신앙과 윤리의식을 형상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그의 시 세계는 『수석열전』(1973)과 『속 · 수석열전』(1976)에 이르러 자연 · 인간 · 신을 노래하리라 다짐하던 자신의 시적 목표를 성취한다.

?수석열전?의 시들은 잘 알려진 그대로 시인이 수집한 水石을 대상으로 하여 시로 형상화한 것이다. 시인은 이들 수석 속에서 창조된 자연의 의미를 발견하고 신의 섭리를 듣는다. 시인의 이상을 수석이라는 돌 속에 집약시킨다. 신이 만들어 놓은 창조물에 시인이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낮별들 내려와서 옛날 이야기한다./ 무지개가 꽂혔다가 산모통을 돌아가고 사슴과 산새/ 배암과 늙은 여우/ 아주 옛날 무사들이 떨구고 간 외로움 / 그 물이끼가 숨쉬면서 오소도손 산다./ 산신령이 앉아 졸다가 세수하고 가고/ 한나절내 먼 멀리 뻐꾹새 울음듣다 졸다 다시 깨어 두 귀 쭝귄다."

 

  ― 산우물 전문(『수석열전』)

 

  박두진에게 수석은 ‘자연의 정수이자 핵심’으로서 수석을 수집하며 시 정신의 지향점과 이상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박두진의 시는 예술화된 자연으로서의 ‘수석’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신앙 세계의 묘사로 이어진다.

 

 

 

 

 

  박두진은 총 42편인 『포옹무한』(1981)을 발간하며 자신의 시 세계를 집대성한다. 그 후에도 『빙벽을 깬다.』(1990년)와 『폭양에 무릎 꿇고』(1995년)를 간행했다. 『빙벽을 깬다.』는 포옹과 공생을 위한 희생과 사랑의 마음가짐을 노래한 시집이다.

 

  그리고 『폭양에 무릎 꿇고』는 박두진이 여든 살의 나이에 펴낸 자신의 열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시집으로 죽음과 같이 인간이 지닌 절대적 한계에서 오는 근원적 고독을 노래한 시집이다. 1988년 12월부터 1995년 5월까지 월간 『목회와 신학』에 연재해오던 신앙 시편을 실었다.

 

  박두진은 ‘자연> 역사> 신성’으로 중심을 옮겨가면서 60여 년 동안 시를 썼다. 20여 권의 시집과 1,000여 편의 시, 400편이 넘는 산문을 남긴 박두진은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으로 우리 가슴 속에 기억되고 있다.

 

  시집으로 조지훈·박목월 등과 함께 펴낸 『청록집(靑鹿集)』(1946)을 비롯하여 『해』(1949), 『오도(午禱)』(1954), 『박두진 시선』(1955), 『거미와 성좌(星座)』(1961), 『인간밀림(人間密林)』(1963), 『청록집·기타』(1967), 『청록집 이후』(1967), 『고산식물(高山植物)』(1973), 『사도행전(使徒行傳)』(1973), 『수석열전(水石列傳)』(1973) 등이 있다.

 

  또한 『속(續)·수석열전(水石列傳)』(1976), 『야생대(野生帶)』(1977), 『박두진 전집』(1981), 『포옹무한(抱擁無限)』(1981), 『나 여기에 있나이다 주여』, 『청록시집』(1983), 『한국현대시문학대계』(1983), 『일어서는 바다』(1986), 『불사조의 노래』(1987), 『폭양에 무릎 꿇고』(1995), 『당신의 사랑 앞에』(유고시집, 1999) 등이 있다.

 

 

 

 

 

  수필집으로는 『시인의 고향』, 『생각하는 갈대』, 『언덕에 이는 바람』, 『하늘의 사랑 땅의 사랑』, 『돌과의 사랑』, , 『그래도 해는 뜬다』, 『햇살, 햇볕, 햇빛』 등과 시론집으로『시와사랑』, 『한국현대시론』, 『현대시의 이해와 체험』 등이 있다.

  수상경력으로는 아세아 자유문학상과 서울시 문화상, 삼일 문화상, 대한민국 예술원상, 인촌상, 지용문학상, 외솔문학상(1993), 동북아기독문학상 등을 받았다.

 

 

2부, ‘박두진의 일상을 보다’

 

 

  박두진의 일상은 늘 글 쓰는 일에 맞추어져 있었다. 강의가 없는 날은 아침부터 독서를 하거나 작품을 썼고, 단소를 즐겨 불었다. 그리고 글을 쓰지 않는 날에는 취미 삼아 남한강 변으로 달려가 수석을 채집하거나 고가구나 도자기를 수집했다. 또한,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하나의 방편으로 수집한 도자기에 직접 먹글씨를 쓰며 마음을 겸손하게 다지곤 했다.

 

  이 코너에는 박두진 시인의 서재를 재현하였고, 그의 친필 원고, 연세대학교 1회 졸업 기념 사진첩, 즐겨 불렀던 단소, 채집한 수석, 고가구와 병풍, 직접 먹글씨를 써넣어 만든 도자기 등이 있어 그의 일상의 모습을 파악할 수 있다.

 

 

 

 

 

3부, 박두진의 예술세계와 만나다.

 

 

  박두진은 문학 분야에 한정되지 않았다. 글씨와 그림은 물론 조각과 수석을 수집했다. 이러한 일상생활의 수집 활동은 단순한 수집에서 끝나지 않고, 예술적인 안목으로 작품을 만들었다.

 

  이것은 예술과 생활을 구분하지 않고 일상생활에서 예술작품을 만들고 즐겼던 그의 남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예술세계에는 장식적 기능이나 실용에 치우치지 않고 예술과 생활의 조화 질서를 바탕으로 평생을 살아온 그의 생각과 마음이 담겨 있다.

 

  수석 ‘산에 사는 사슴’, 박두진의 글씨가 선명한 백자 매병(梅甁), 상선여수(上善如水) 등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수석에 선명하게 드러나는 수석에는 ‘산에 사는 사슴’이라는 이름을 붙이고 상상력을 동원하여 시 「산에 사는 사슴」을 썼다.

 

  “산 모름을 돌아가다 목 갈하면/ 두어 모금 산우물에 목 축이고/ 벅뻑국 벅꾹새/ 한낮의 시장기/ 우적우적 칡 순 뜯어 시장기 면하고,/ 문득 들여오는 바람 소리/ 파도 소리 동해바다 귀 쫑겨 듣고,/ 조금 졸리면 양지에 낮잠 자고,/ 다만 달 뜨면/ 그 달이 뜰 때 총에 죽은/ 먼 어린 새끼 생각하며 주룩주룩 운다.”  - 「산에 사는 사슴」 전문(『수석열전』)

 

 

 

 

 

   박두진은 역동적인 생명력의 원천(源泉)으로서의 자연을 노래했으며, 6.25 전쟁 이후에는 그의 강직한 성정(性情)에 따라 왜곡된 현실에 대한 부정(否定)과 시적 저항(抵抗)이 두드러지게 나타냈다가 나중에는 신(神)의 의지와 자연의 섭리를 노래하며 수석을 통해 구체적인 시적 이미지를 그려내는 변화의 과정을 거쳤다.

 

  그는 시 창작에 몰두하면서도 연세대학교 교수, 우석대학(후에 고려대학교와 합병) 교수, 이화여자대학교 교수로 후학을 가르쳤다. 1981년 정년 퇴임 후에도 추계예술대학 전임대우 교수를 역임했다.

 

  이처럼 시인으로, 교수로서 열정적으로 살았던 그는 1998년 9월 16일 82세에 타계하여 그의 유해는 고향인 안성(보개면 기좌리 산3)에 안장되었다.

 

 

 

 

 

 

박두진의 묘

 

  문학관 탐방에 이어 박두진 묘를 찾았다. 그의 묘는 안성시 보개면 기좌리 산3 (비봉산 북쪽 기슭 6-7부 능선)에 자리를 잡았다. 그의 묘 앞에는 친필 글씨로 새긴 「하늘」이라는 시비가 세워져 있다.

 

  “하늘이 내게로 온다/ 여릿여릿/ 멀리서 온다. ⃫ 하늘은, 머얼리서 오는 하늘은/ 호수처럼 푸르다 ⃫ 호수처럼 푸른 하늘에/ 내가 안긴다. 온몸이 안긴다 ⃫ 가슴으로 가슴으로/ 스미어드는 하늘/ 향기로운 하늘의 호흡 ⃫ 따가운 볕,/ 초가을 햇볕으로/ 목을 씻고 ⃫ 내가 하늘을 마신다/ 목말라 자꾸 마신다 ⃫ 마시는 하늘에/ 내가 익는다​/ 능금처럼 마음이 익는다.”

 

  - 「하늘」 전문

 

  가을하늘을 이고 들판에는 벼가 누렇게 가을 햇볕에 익어가고 있다. 박두진문학관과 묘소를 탐방하고 돌아오는 나는 위대 삶을 살았던 박두진 직접 뵙고 오는 기분으로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이었다.

 

 

 

 

 

혜산 박두진문학상

 

 

  박두진의 시 세계를 기리기 위한 사업으로는 혜산 박두진문학상이 있다. 혜산 박두진문학상은 안성시의 후원을 받아 혜산 박두진문학제 운영위원회와 한국문인협회 경기도 안성지부 주관으로 2006년부터 혜산 박두진문학상을 제정, 시상하고 있다.

 

  혜산 박두진 문학상 수상자는 우수한 시적 성취와 활동을 보여준 시인 가운데 박두진의 시 정신과 시 세계를 고려하여 예심과 본심을 거쳐 선정된다. 역대 수상자로는 신대철, 천양희, 최문자, 최동호, 박라연, 마종기, 강은교, 정진규, 김형영, 노향림, 신승철, 허영자, 차주일. 강창민 등이다.

 

 

 

 

◎상세정보

 

 

 

 

►주소 : 경기 안성시 보개면 남사당로 198-11 (보개면 복평리 296)

►전화 : 031-678-2466~7

 

►가는 길

<승용차>

·경부고속도로 남안성 IC - 제2산업단지교차로에서 좌회전 - 터미널교차로에서 우회전 - 종합운동장사거리에서 좌회전 – 안성맞춤랜드 북문

·중부고속도로 일죽 IC – 안성 방향 우회전 - 종합운동장사거리에서 우회전 - 안성맞춤랜드 북문

<대중교통>

버스 : 일반 15-1 (공예문화센터 정류장 하차) / 택시 : 안성시청 앞 봉산 로터리에서 약 10분 소요

►주차 : 문학관 앞 주차 면수가 작으므로 안성맞춤랜드 주차장을 이용하면 좋다.

►관람 : 화요일~일요일 09:00 ~ 18:00

►휴관 : 매주 월요일, 설날 및 추석 당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그 다음날)

 

►주변 맛집

양지가든 (제육볶음, 백반) : 보개면 보개원삼로 359 (기좌리 208) / 031-676-7944

안성시한돈회관 (돼지국밥, 차돌된장찌개) : 보개면 남사당로 100 (구사리 259-2) / 031-675-9250

안성깍두기 (쭈꾸미) : 중앙로 449 (봉남동 6-2 / 031-671-5523

남포동직화쭈꾸미 : 중앙로 449 (봉남동 6-2) / 031-671-5523 / 일요 휴무

보개바람 (베이커리) : 보개면 불현길 10 (불현리 85-4) / 070-7787-9653

 

 

*탐방일 2021.9.14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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