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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문학기행(국내)

김수영문학관 탐방

by 혜강(惠江) 2021. 10. 1.

 

김수영문학관 탐방

 

거짓을 배격하고 구속과 억압을 거부한 자유시인을 만나다

 

 

글·사진 남상학

 

 

 

 

 

   오전에 내리던 가을비가 그쳐 김수영문학관을 찾아 나섰다. 시인 김수영문학관은 서울시 도봉구 방학동에 있어서 지하철 4호선을 타고 쌍문역에서 하차, 2번 출구 앞에서 06번 마을버스를 타고 쉽게 김수영문학관에  도착했다.

 

 김수영문학관은 시인 김수영(金洙暎, 1921~1968)의 시문(詩文) 및 시학(詩學)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13년 11월 27일 도봉구에서 개관한 공립문학관이다.

 

 

 

 

●김수영문학관 둘러보기

 

  면적 1,201.67㎡에 5층 건물로 지어진 문학관 입구에는 문학관 건립 과정을 알리는 현판이 붙어 있다. 2011년,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도봉산 일대를 살펴보던 중 김수영의 시비를 발견하고, 1998년까지 김수영의 본가가 도봉동 산107-2번지에 있었고, 그곳 선영에 김수영의 묘소가 있었으며,  지금도 유족이 도봉구에 거주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도봉구청장은 김수영 문학관의 건립을 구상, 『현대 문학』 편집장이었던 김수영의 동생 김수명 유족으로부터 유품을 기증받기로 하고, 서울시의 예산 지원을 받아 2013년 11월 27일 개관하였다는 내용이다. 구청장의 문학적 안목과 노고에 찬사를 보내며 입장했다.

 

  1층에 제1전시실, 수장고, 사무실, 낭송·녹음실이 있고, 2층은 제2전시실, 영상 코너, 시인의 서재, 독서대, 3층은 문학도서관, 4층 강당, 옥상의 옥상 정원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전시실은 김수영 시인의 삶의 궤적을 연대순으로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다. 시인의 연보 및 시인이 살아온 현대사(6·25 전쟁과 4·19 혁명, 5·16 군사 정변 등)의 질곡을 온몸으로 겼으며 쓴 시와 산문의 육필 원고와 시집, 외국 문학 번역서 등 저작물, 김수영 시인의 흉상이 전시되어 있다.

 

  낭송·녹음실에서는 김수영의 생애를 그 당시 사회상과 더불어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으며, 시작(詩作) 코너에는 김수영의 시와 산문에 자주 쓰이던 단어들을 집자(集字)하여 시어(詩語) 막대를 만들어 관람객들이 이 단어들로 시를 지을 수 있게 하였다. 감상 메모 코너는 김수영을 만나고 난 후의 감상을 적어 벽에 걸어 놓을 수 있게 하였다.

 

   2층 전시실에는 김수영의 일상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지인들과 주고받은 서신, 작업하던 탁자 등 인간 김수영의 면모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시인의 서재는 김수영 시인이 원고를 쓰던 식탁과 생전에 즐겨 읽던 서적들을 볼 수 있다.

 

  영상 코너에서는 김수영 시인의 생애를 그 당시 사회상과 더불어 영상으로 감상할 수 있다. 검색대에서는 김수영의 시, 산문 원고뿐 아니라 신문 스크랩 자료 등을 검색할 수 있다. 또 독서대에서는 김수영의 시집, 산문집과 함께 김수영 관련 서적들과 논문을 열람할 수 있다. 3층에는 작은 도서관과 아동열람실, 4층에는 세미나와 시낭송회 등을 위한 대강당이 있다. 5층은 옥외 쉼터 및 휴게 공간이다. 

 

 

▲문학관 입구
▲문학관 건립 경위
▲현관 데스크
▲현관에 걸린 김수영 초상화

 

 < 1층 전시실> 

 

▲시인의 연보
▲1층 전시시실 내부
▲육필원고
▲김수영 시인의 흉상
▲김수영 시 감상메모
▲시작코너
▲영상코너 '김수영'
▲김수영 시인 관련 논문

 

 < 2층 전시실>

 

▲2층 제2전시실 전경
▲김수영 시인의 사진
▲시인이 주고 받은 서신
▲시인의 서재와 서적
▲시인이 시를 쓰던 탁자
▲시인의 저서
▲작은 독서실

 

  < 3층 김수영 문학도서관>

 

▲김수영문학도서관 내부

 

  <4층 강당>

 

 

 

* 5층 옥외 쉼터

 

▲잘 단장된 옥상 쉼터

 

●김수영의 삶과 문학 세계

 

 김수영(金洙暎은 1921년 11월 27일, 서울시 종로구 관철동에서 아버지 김태욱과 어머니 안형순 사이의 8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2년 선린상업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유학차 도쿄로 건너가 미즈시나 하루키 연극연구소에 들어가 연출수업을 받는다. 1943년 태평양전쟁 발발 후 조선학병 징집을 피해 겨울에 귀국하여 종로6가 고모집에서 머물다가 그 당시 연극계를 주도하던 안영일을 찾아가 그의 밑에서 조연출을 맡는다.

 

 1944년 봄, 가족들이 있는 만주 길림성으로 가서 그곳에서 길림극예술연구회에 참여, 무대에 서기도 했으나, 1945년 8월 15일 광복하자 광복의 기쁨을 안고 가족과 함께 만주로부터 서울로 돌아온다.

 

 1946년 김수영은 <예술부락> 제2집에 시 <묘정의 노래>를 발표, 이 작품의 발표를 계기로 연극에서 문학으로 전향한다. 김수영의 시에서 한국 현대시 사상 처음으로 시적인 말과 일상적인 말의 차별이 사라졌다. 이것은 시와 삶을 완전히 일치시키려는 김수영의 치열한 노력과 극단적인 정직성이 낳은 결실이었다.

 

 1949년 김경린·박인환 등과 함께 합동시집 『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을 간행하여 모더니스트로서 주목을 끌었다. 이때의 시들은 「공자의 생활난」(1945), 「가까이할 수 없는 서적」(1947), 「아메리카타임지」(1947), 「웃음」(1948), 「이[虱]」(1947), 「토끼」(1949) 등이 있다. 그는 연희전문 영문과에 4학년에 편입했으나 중퇴하고 영어학원에서 강사, ECA통역 등을 한다.

 

 그의 삶에 어두운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은 1950년 민족상잔의 아픔 6·25 한국전쟁 발발과 함께였다. 당시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던 김수영은 문화공작대라는 이름으로 의용군으로 강제 동원된 후 훈련소에서 야간 탈출을 감행한다.

 

 그러나 곧 경찰에 체포당해 거제도 포로수용소에 수용된다. 포로수용소에서의 생활은 김수영에게 자유의 의미를 뼛속 깊이 각인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얼마 후 수용소 내 미 야전병원의 통역관이 되었다가 1952년 겨울 석방된다.

 

 포로수용소라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비참한 환경에서 살아나온 그에게 서울은 서러운 곳이었다. 물질적 궁핍과 문화적 후진성, 독재정치와 분단 현실 그리고 서양 문물의 파도는 김수영에게 깊은 번민을 주었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그는 꿈과 감정을 다루는 예술가로의 자세를 조금도 흩뜨리지 않았고, 오히려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 충격을 줄 수 있는 진정한 시, 자유로운 시를 쓰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1957년 12월, 제1회 <한국시인협회상>을 수상하였다.

 

 1959년 출간된 시집 『달나라의 장난』은 김수영 생전에 출판된 처음이자 마지막 시집으로 이 시기의 시들은 바로 살고자 하는 의지와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현실 사이의 갈등과 슬픔의 극복이 중심적인 내용을 이루고 있다.

 

 그는 사물에 대한 인식은 전통적이며 상식적인 태도와 방법을 뛰어넘고자 했는데, 이러한 태도는 자기가 보고 있는 사물이 처음부터 왜곡되어 있음을 깨달은 데서 빚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1950년대 후반부터는 모더니스트들이 지닌 관념적 생경성(生硬性)을 벗어나 격변하는 시대에 겪어야 했던 방황을 풍자적이며 지적인 언어로 표현했다.

 

 

 

►초기 작품

 

 

눈은 살아 있다.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마당 위에 떨어진 눈은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 위에 대고 기침을 하자.

눈더러 보라고 마음놓고, 마음놓고

기침을 하자.

 

눈은 살아 있다.

죽음을 잊어버린 영혼과 육체를 위하여

눈은 새벽이 지나도록 살아 있다.

 

기침을 하자.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

눈을 바라보며

밤새도록 고인 가슴의 가래라도

마음껏 뱉자.

 

-「눈」

 

 1956년에 발표된 이 시는 살아 있는 ‘눈’이라는 발상에 기초하여 부정적인 현실에 저항할 것을 권유하는 작품이다. ‘눈’과 ‘기침’의 반복적인 대비를 통해 전개되는데, “기침을 하자 / 젊은 시인이여 기침을 하자”에서 ‘기침’은 감기의 징후인 의학적 현상이 아니라 살아 있음을 의미하는 존재론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자신의 의지와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는 현실 사이의 갈등과 슬픔의 극복은 「폭포」 등에서도 볼 수 있다.

 

 

 

 1957년에 발표한 이 시는 폭포의 속성을 통해 부조리한 현실에 타협하지 않고 고매한 정신을 지니고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를 노래하고 있다. ‘떨어진다’ 라는 시어의 반복을 통해 ‘폭포’의 역동적 이미지에 어울리는 힘 있는 리듬을 만들어 내는 동시에, ‘폭포’라는 자연물을 통해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4·19혁명 이후

 

 1960년 봄, 김수영의 시적 세계를 변화하게 만든 큰 사건이 발생한다. 바로 3·15 부정선거와 4·19혁명이 그것이다. 여기서 그는 평등한 삶을 실현하고자 하는 자유를 위한 혁명에서 시적 열정을 얻는다. 강렬한 현실비판의식과 저항정신에 뿌리박은 그의 시적 탐구는 1960년대 참여파 시인들의 전위적 구실을 담당하게 했다.

 

 이때의 대표작품으로 「푸른 하늘을」(1960), 「후란넬저고리」(1963), 「강가에서」(1964), 「거대(巨大)한 뿌리」(1964), 「어느날 고궁을 나오면서」(1965), 「엔 카운터지(誌)」(1966), 「풀」(1968)을 들 수 있다.

 

자유를 위해서

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푸른 하늘을」

 

 이 시는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혁명이 필요하고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투쟁과 노력을 통해서만 가능함을 직설적 어조를 통해 주제 의식을 강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푸른색과 붉은색의 선명한 색채의 대조가 인상적이다. 자유로운 비상을 위한 고독한 의지가 잘 드러나 있다.

 

 또,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로 시작하는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는 자신의 일상 경험과 일화를 나열하여 삶을 성찰하면서 대조적인 상황을 설정하여 자신의 옹졸한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부조리한 권력과 사회 현실을 바라보며 사회적 부조리에 저항하지 못하는 소시민적 삶에 대한 자기반성이 잘 드러내고 있다.

 

 

 

 

►마지막 작품

 

  「풀」은 김수영 시인의 마지막 작품이다. 1968년 『창작과 비평』(1968)에 발표한 이 시는 ‘풀’을 제재로 하여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과 넉넉함을 비유적 표현을 통해 형상화하고, 반복과 대구를 통해 운율을 형성하고 있다. 나약함과 능동적인 대립적 시상 구조로 주제를 강화하고, 반복과 대구를 통해 리듬감을 형성하며 상징적, 주지적, 참여적, 비판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풀」

 

 

 

 

 그는 참으로 현실의 억압과 좌절 속에서 일어서고자 하였던 1960년대의 대표적인 시인이었다. 현실참여의 생경하지 않은 목소리를 보여줌으로써 1970년대는 물론 1980년대까지 강력한 영향을 미친 시인이라 할 수 있다.

 

 김수영의 산문은 그의 시에 못지않은 명문으로 꼽힌다. 특히 산문 「시여, 침을 뱉어라」는 독자에게 시에 대한 생각을 새롭게 일깨우는 시론이자 인식의 틀을 깨는 혁신적인 시론으로 평가받고 있다.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다. <온몸>으로 밀고 나가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다. -「시여, 침을 뱉어라」 중에서

 

 이러한 시론에서 김수영은 예술로서의 시와 구체적 현실을 일치시키는 시를 주장했다. 시인은 현실에서 불가능한 꿈을 추구하지만, 시가 되는 순간 그것은 가능한 현실로 바뀐다.

 

 독자는 그 시로부터 새로운 현실을 보고, 느끼게 된다. 이러한 새로움을 보여주는 시의 언어야말로 진정한 아름다운 우리말이며 이러한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것이 시인의 임무라고 김수영은 주장했다.

 

 거칠고 힘찬 어조 속에 가득 찬 자기반성과 폭로, 사회현실에 대한 맹렬한 비판을 통해 현실 참여와 사회 정의를 부르짖었던 김수영. 하지만 그의 시는 삶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

 

 그는 1968년, 6월 15일, 밤에 귀가하던 길에 버스에 부딪혀 의식을 잃고, 다음날 6월 16일 아침 8시 50분에 숨을 거뒀다.  죽은 뒤 출판된 시집으로는 『거대한 뿌리』(1974), 『달의 행로를 밟을지라도』(1976)와 산문집 『시여, 침을 뱉어라』(1975), 『퓨리턴의 초상』 등이 있다. 저서·역서로는 『20세기 문학평론』(1953), 『카뮈의 사상과 문학』(1958), 『현대문학의 영역』(Tate, A. 원저, 1962) 등이 있다.

 

 김수영은 현대 문명과 현실을 비판하던 서정적 모더니스트에서 자유와 저항을 부르짖던 참여시 작가로, 모질고 격한 비바람 같았던 우리 역사와 함께 서서 시대와 함께 변모하고 고뇌했던 시인이었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시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삶과 현실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평론가들의 김수영에 대한 평가
▲박두진 시인이 쓴 조시

 

 <김수영문학상>

 

 김수영 문학관에서는 김수영 시인의 문학 정신을 기리기 위해 1981년 11월 27일 제정된 김수영문학상과  2014년 제정한 김수영 청소년문학상을 제정하여 현재까지 운영 중에 있다. 그 외에도 인문학 강좌, 명사 초청 강연회를 개최하여 지역민들의 많은 호응을 얻고 있다. 

 

 

▲김수영문학상과 수상작품집

 

●김수영 시인 시비

 

 

 김수영 시비는 북한산 국립 공원 도봉산 구역 내 도봉서원 터 앞에 있다. 불의의 교통사고로 48세에 생을 마감하자 김동리, 박목월 등 한국의 대표적 문인들이 주축이 되어 선후배 문인들과 지인들의 뜻을 모아 1969년 6월 15일 세운 것이다.

 

 그런데 원래 이 시비는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동 산107-2번지 김수영 시인의 무덤 앞에 있었다. 그후 1990년대 초 김수영의 어머니가 죽자 남은 식구들이 의논하여 선영의 묘들을 파 화장하고 산골(散骨)하였다. 이에 따라 김수영의 묘도 개장하여 시신을 수습하여 화장한 뒤, 묘 앞에 있던 시비를 1991년 4월에 북한산 국립 공원 내 도봉서원 터 앞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회백색 화강암으로 만든 시비는 높이가 125㎝, 너비가 185㎝로 윗부분에 가로로 긴 사각형의 전액(篆額)을 두었다. 시비의 몸통에는 1970년대 이후 우리 시의 새로운 길을 열게 한 김수영의 대표작이자 마지막 작품인 「풀」의 두 번째 연을 새겼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라는 글이 자필로 음각되어 있고, 오른쪽에는 청동으로 시인의 얼굴을 새겨 붙였다. ​뒷면에는 시비 건립의 취지와 경위, 주체, 김수영의 간단한 약력을 밝혀 적었다.

 

 

▲북한산 국립 공원 내 도봉서원 터 앞

 

 

◎상세정보

 

주소 : 서울시 도봉구 해등로 32길 80 (방학동 498-31)

전화 : 02-3494-1127~8

 

가는 길

자가 차량 이용 시 : 서울특별시 도봉구 해등로 32길 80

대중교통 : 버스 130번, 1144번, 노원15번 정의공주 묘 하차 / 지하철 4호선 쌍문역 2번 출구로 나와 06번 마을버스 환승 김수영문학관 하차

 

                                                                    관람 : 오전 9시 ~ 오후 5시 40분

휴관 : 매주 월요일 (월요일이 공휴일이면 그 다음 날), 1월 1일, 설날 및 추석 당일

관람료 : 무료  

주변 볼거리 : 원당샘 공원, 방학동 은행나무, 연산군 묘와 조선왕조 임금 세종의 차녀인 정의공주의 묘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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