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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그 샘 / 함민복

by 혜강(惠江) 2020. 10. 26.

 

 

 

 

그 샘

 

 

- 함민복

 

 

  네 집에서 그 샘으로 가는 길은 한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벽이면 물 길러 가는 인기척을 들을 수 있었지요. 서로 짠 일도 아닌데 새벽 제일 맑게 고인 물은 네 집이 돌아가며 길어 먹었지요. 순번이 된 집에서 물 길어 간 후에야 똬리* 끈 입에 물고 삽짝* 들어서시는 어머니나 물지게 진 아버지 모습을 볼 수 있었지요. 집안에 일이 있으면 그 순번이 자연스럽게 양보되기도 했었구요. 넉넉하지 못한 물로 사람들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던 그 샘가 미나리꽝*에서는 미나리가 푸르고 앙금* 내리는 감자는 잘도 썩어 구린내 훅 풍겼지요.

 

- 시집 《말랑말랑한 힘》(2005) 수록

 

 

◎시어 풀이

*똬리 : 짐을 머리에 일 때 머리에 받치는 고리 모양의 물건.

*삽짝 : ‘사립문’의 방언

*미나리꽝 : 미나리를 심는 논. 땅이 질고 물이 많이 꾀는 곳이 좋음.

*앙금 : 녹말 따위의 아주 잘고 부드러운 가루가 물에 가라앉아 생긴 층.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이웃끼리 서로 배려하며 물을 길어 먹었던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회상하며, 고향 마을에 있던 ‘그 샘’을 제재로 하여 이웃 간의 훈훈한 인정과 공동체 생활이 지닌 미덕을 효과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화자인 ‘나’는 어릴 족 집 앞의 샘을 회상하며 어린 시절에 물을 같이 먹었던 ‘그 샘’을 떠올리며 그 당시의 이웃간의 배려와 훈훈한 정을 그리워하고 있다.

 

 산문시 형식의 이 시는 향토적·토속적인 시어들을 사용하여 시골 마을의 행토적 분위기를 드러내고 있으며, ‘ ~ 지요’, ‘ ~구요’와 같은 구어체의 종결 어미를 사용하여 정감 어린 전통적 분위기를 형성하고, 시각적·후각적 이미지를 통해 대상에 대한 구체적인 인상을 부여하고 있다.

 

 이 시는 모두 6개의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1~2문장은 네 집이 하나의 샘을 함께 사용하던 공동체적 삶의 모습을, 3~5문장은 이웃 간의 자연스러운 배려와 양보의 마음을, 마지막 6문장은 마을 사람들의 넉넉하고 성숙한 마음을 그려내고 있다.

 

 이 시는 화자의 유년 시절 고향 마을을 배경으로 하여, 하나의 샘물을 네 집이 나누어 먹으면서 느꼈던 이웃 간의 따뜻한 정과 공동생활에 필요한 성숙한 의식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첫 문장인 ‘네 집에서 그 샘으로 가는 길은 한길이었습니다’라고 진술한다. 여기서 ‘그 샘’은 ‘샘’이 대상일 텐데, ‘그’라고 했으니 화자의 기억이나 경험과 연관되어 있는 것으로, 화자에게는 이웃간의 훈훈한 정을 쌓고 느끼게 해주는 매개체가 되는 대상인 것으로 향토적 분위기와 정감이 서린 곳이다. 둘째 문장은 ‘그래서 새벽이면 물 길러 가는 인기척을 들을 수 있었지요’라고 한다. 새벽이면 물 길러 가는 것은 그만큼 물이 귀했음을 의미하며, 구어체의 ‘ ~지요’를 사용하여 따뜻하고 정감 어린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서로 짠 일도 아닌데 새벽 제일 맑게 고인 물은 네 집이 돌아가며 길어 먹었지요. 순번이 된 집에서 물 길어 간 후에야 똬리* 끈 입에 물고 삽짝* 들어서시는 어머니나 물지게 진 아버지 모습을 볼 수 있었지요. 집안에 일이 있으면 그 순번이 자연스럽게 양보되기도 했었구요.’

 

 여기서는 자연스럽게 물을 긷는 순번을 지키는 모습과 집안에 일이 있을 땐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그 순번이 양보되는 모습은 이웃을 배려하는 훈훈한 인정으로 가슴을 훈훈하게 하는 전통적 미덕의 실천적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인 ‘넉넉하지 못한 물로 사람들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던 그 샘가 미나리꽝*에서는 미나리가 푸르고 앙금* 내리는 감자는 잘도 썩어 구린내 훅 풍겼지요.’ 이처럼 ‘그 샘’은 서로 양보의 미덕을 발휘하여 넉넉한 마음을 보여주던 곳으로, 이웃을 배려한 마을 사람들의 성숙한 의식을 자연물을 빌어 ‘샘가의 미나리꽝’에는 ‘미나리가 푸르고’라는 시각적 이미지와 ‘앙금 내리는 감자는 잘도 썩어 구린내가 훅 풍기는’ 후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 시는 이웃끼리 서로 배려하며 ‘그 샘’에서 물을 길어 먹었던 우리네 고향의 풍경을 회상하며 이웃 간 따스한 정을 나누며 살았던 모습을 그리워하며 성숙한 공동체 의식을 고취하는 작품이다.

 

 

▲작자 함민복(咸敏復, 1962 ~ )

 

   시인. 충청북도 충주 출생. 1988년 〈성선설〉 등을 《세계의 문학》에 발표하며 등단했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대상들을 따뜻하고 진솔한 언어로 끌어안는 서정시를 많이 썼다. 시집으로 《우울 씨의 일일》(1990), 《자본주의의 약속》(1993),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1999), 《말랑말랑한 힘》(2005), 《꽃봇대》(2011), 《눈물을 자르는 눈꺼풀처럼》(2013) 등이 있으며, 에세이집으로 《눈물은 왜 짠가》(2003), 《미안한 마음》(2006),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2009) 등이 있다.

 

 

►해설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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