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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사랑하는 까닭'과 '사랑' / 한용운

by 혜강(惠江) 2020. 10. 25.

 

 

 

사랑하는 까닭

 

- 한용운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홍안*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그리워하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내가 당신을 기다리는 것은

까닭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마는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는 까닭입니다.

 

 

- 시집 《님의 침묵》(1926) 수록

 

 

◎시어 풀이

*홍안(紅顏) : 젊어서 혈색이 좋은 붉은 얼굴.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진실을 담은 한 편의 사랑시(연애시)라고 볼 수 있다.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까닭’이 무엇인지를 밝힘으로써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를 노래하는 작픔이다. 상대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조건 없는 진정한 사랑을 '다른 사람들'과 '당신'의 대조를 통해 의미를 분명히 드러내고, 같은 구조의 반복을 통해 운율을 형성하고, 경어체를 사용하여 상대방에 대한 진정한 마음을 전달하고 있다.

 

  3연 12행으로 된 이 시에서 화자는 '당신'을 사랑하는데, 그 이유를 ‘다른 사람’의 사랑과 대조를 이루어 드러낸다. 1연에서 화자는 ‘다른 사람들’은 젊은 얼굴인 ‘홍안’만 사랑하지만, ‘당신’은 나의 ‘백발’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2연에서는 ‘다른 사람들은’은 나의 ‘미소’만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나의 눈물도 사랑하기 때문이며, 3연에서는 ‘다른 사람들’은 나의 건강만을 사랑하지만 ‘당신’은 나의 죽음도 사랑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렇게 당신이라고 존재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당신은 부정적인 모습(백발, 눈물, 죽음)까지도 사랑하는 존재로, 이를 통해 조건 없는 사랑, 다시 말해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임을 표현하고 있다.

 

  한용운의 시를 읽을 때마다 ‘당신’은 과연 누구일까?’라는 의문을 제기한다. 한용운 시인의 ‘당신’은 <님의 침묵>에서의 ‘님’과 동일한 의미일 터인데, 이들은 모두 한용운 시인이 시에서 추구하는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합일의 대상인 것이다. 시인은 시집 《님의 침묵》 서문인 <군말>에서 ‘님만 님이 아니라 긔룬 것은 다 님이다. 중생이 석가의 님이라면, 철학은 칸트의 님이다. 장미꽃의 님이 봄비라면, 마사니의 님은 이태리다. 님은 내가 사랑할 뿐만 아니라 나를 사랑하나니라.’라고 하였다. 이 말속에서 시인은 굳이 ‘님’에 대하여 특정 개념으로 규정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유추가 가능한 것은 그가 일관된 삶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일찍이 입적하여 승려로서의 삶을 살았고, 식민지 백성으로서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올곧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님’은 종교적 관점에서 자신이 추구하는 최고의 경지인 불타의 셰계, 즉 절대자일 수 있고, 동시에 시대적 관점에서 일제 강점기의 국권을 상실한 조국일 수도 있다. 아니면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하는 그 어떤 인물일 수도 있다. 이처럼 이 시에서 '님'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한용운 시가 지니는 복합성, 다의성은 한용운의 시가 지니는 묘미(妙味)이기도 하다.

 

  이 시는 한용운 시인이 사십 중후반에 ‘사랑하는 까닭’을 노래한 것이다. 아무리 내 사랑이 크다 해도 상대가 내 사랑을 원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러니 당신의 죽음까지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당신이 내 '백발'과 ‘눈물’과 '죽음'까지도 사랑하므로 당신을 미치도록 사랑한다고 말한다. 살아 보니 ‘당신’이 ‘나’를 그토록 사랑해 준 것을 깨달았기에 ‘나’는 숙명적으로 ‘당신’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수도승으로, 독립운동가로서, 사상가로서 그는 한평생 ‘당신’을 품에 안고 사랑했던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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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 한용운

 

 

봄물보다 깊으니라

갈(秋)산보다 높으니라

달보다 빛나리라

돌보다 굳으리라

사랑을 묻는 이 있거든

이대로만 말하리

 

  - 시집 《님의 침묵》(1926)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자연물을 비교 대상으로 하여 사랑의 본질을 드러내고 있다. 이 작품은 관념적 성격을 지닌 ‘사랑’에 대해 구체적인 자연물에 빗대어 표현함으로써 상투성을 극복하여 깊고 높고 빛나고 굳건한 사랑의 속성을 효과적으로 전달해 주고 있다.

 

  이 시는 6행의 단행시인데, 1~4행에서는 봄물, 갈산, 달, 돌보다 깊고 높고 빛나고 굳은 사랑을, 5~6행에서는 자연물과의 비교를 통해 드러난 사랑의 속성을 표현하고 있다. 화자는 사랑이 얼음과 눈이 녹아 평소보다 깊어진 봄물보다 더 깊고, 맑은 하늘에 보이는 가을 산보다 더 높고, 어둠을 비추는 달보다 더 밝고, 단단하여 잘 깨지지 않는 돌보다 더 단단하다고 하여, ‘사랑’이란 것이 깊고도 높으며, 빛나면서도 굳게 맺어진 가치 있는 것임을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이 시는 ‘ ~니라’, ‘~리라’와 같은 종결 어미를 사용하여 확신적 어조로 노래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1, 2행에서는 ‘~니라’이며, 3, 4행에서는 ‘~리라’를, 6행에서는 ‘~리’를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리~’가 미래 시제 혹은 추측을 나타내는 기능을 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랑이 무엇인지 묻는 이에게 앞으로 그 사랑이 시련 속에서 더욱 빛날 것이고 돌보다 더 굳어 변하여 사라지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말해 주는 것이다. 이를 통해 화자는 사랑을 묻는 자에게 ‘사랑’이란 것이 깊고 높고 빛나면서도 굳게 맺어진 것임을 확실히 드러내고 있다.

 

 

▲작자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시인 · 승려 · 독립운동가. 속명은 유천(裕天). 호는 만해(萬海). 충남 홍성 출생하여 1905년 불교에 입문했으며, 1918년 불교 잡지 《유심(愉心)》을 창간하여 편집인과 발행인이 되었다. 이때 《유심》에 시 <심(心)>을 발표함으로써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으며, 일제에 체포되어 3년 형을 받았다. 1940년 창씨개명 반대 운동과 1943년 조선인 학병출정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일제의 극심한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비타협적인 독립사상을 견지하다가,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기 싫다며 북향으로 지은 성북동 집에서 지내다 66세의 나이로 죽었다.

 

  1925년에는 한국 근대 시사의 불후의 업적인 <님의 침묵>을 펴내어 민족의 현실과 이상을 시적 이미지로 형상화했다. 불교 사상을 바탕으로 철학적 사색과 신비적 명상 세계를 형상화한 철학적·종교적 연가풍의 시를 주로 썼고, 김소월과 함께 한국 근대시의 정초를 놓았다. 시집 《님의 침묵》(1926) 외에 《조선 불교 유신론》, 《불교 대전》 등의 저서를 남겼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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