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 하종오

by 혜강(惠江) 2020. 10. 15.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 하종오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자신을 닮은 아기를

등에 업은 앳된* 엄마

유모차에 태운 앳된 엄마

가슴에 안은 앳된 엄마

웃다가 미간* 찌푸리다가 눈빛 빛내며

무어라 무어라 재잘거린다.

그때 앳된 엄마들 사이에

빼곡한 밀림이 흔들리다가 사라지고

탁한 강물이 출렁이다가 흘러가고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다가 흩어지는데

그 옆에 선 남녀들은 알아보지 못한다.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지 몇 해

자신을 닮은 아기를 키우는 앳된 엄마들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이따금 만나

친정 부모님이 그립다고 말하는지

친정집 뒤란*이 눈에 선다고* 말하는지

친정 동네가 보고 싶다고 말하는 지

한국인들이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베트남 어로

한참 동안 수다를 떨다가

제각각 목적지 다른 시내버스를 타고

얌전하게 시댁으로 돌아간다.

 

 

- 시집 <입국자들>(2009) 수록

 

 

◎시어 풀이

*앳된 : 애티가 있어 어려 보이는.

*미간(眉間) : ‘양미간’의 준말. 두 눈썹의 사이.

*뒤란 : 집 뒤 울타리의 안.
*선다고 : 선하다고. 잊히지 않고 눈앞에 생생하게 보이는 듯하다고.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 여성들의 일상과 함께 그들의 고국에 대한 그리움과 애환을 표현한 작품이다. 외국인 이주자들의 내면과 생활 표정을 평범한 언어로 드러내면서, 다문화 시대에 우리가 갖추어야 할 마음가짐을 돌아보게 한다.

 

  시적 대상에 대한 관찰과 연상을 통해, 유사한 대상이나 연상 내용을 나열하며 시상을 전개하고, 서사적 진술을 통해 결혼 이주 여성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서정시이면서도 사실적이요, 서술적이다.

 

  이 시는 어린 나이에 한국으로 시집온 베트남출신 결혼 이주 여성들의 일상과 애환을 표현한 작품이다. 시인은 떠나온 고국과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베트남 결혼 이주 여성들을 '앳된 엄마'라고 호칭하며 그들을 따뜻한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이들에게 무관심한 우리 사회의 현실을 대비하여 제시함으로써 다문화 사회를 살아가는 정주민들의 바람직한 태도는 무언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이 작품의 1연은 어느 날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만나게 된 베트남 출신 결혼이준 여성들의 모습과 대화를 객관적으로 서술한다. 시인은 떠나온 고국과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는 베트남 결혼 이주 여성들을 '앳된 엄마'라고 호칭하며 그들을 따뜻한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웃다가 미간을 찌푸리다가 눈빛 빛내며/ 무어러 무어라 재잘거린다’라고 한다. 잠시 낯선 외국 생활에서 벗어나 자신들의 모국어인 베트남어로 소녀처럼 재잘거리는 즐거운 대화 시간 모습을 보여준다.

 

  2연에서는 ‘앳된 엄마’들의 대화와 알아듣지 못하는 ‘그 옆에선 남녀들’을 대비시켜 다문화 사회를 살아가는 정주민들의 바람직한 태도는 무언인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한다. ‘앳된 엄마들’은 ‘빼곡한 밀림’, ‘탁한 강물’, ‘뜨거운 태양’ 등 시각적 이미지로 대변되는 고향의 모습을 떠올리며 대화에 열중하고 있는 ‘그 옆의 남녀들은 알아보지 못한다.’ 화자는 그들이 한국 땅에서 느끼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읽어내고 있지만, ‘그 옆에 선 남녀들’인 대부분의 한국인은 그들의 애환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인식하고 있다. 화자는 결혼 이주 여성들의 아픔을 이해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의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며 사회적 관심을 촉구하는 것이다.

 

  3연에서는 낯선 땅으로 시집와서 자신을 닮은 아기를 키우는 온 베트남 ‘앳된 여인’을 다시 강조하며, 4연에서는 ‘앳된 엄마들’이 고향 산천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것이라고 연상하며 몹시 그리워할 것이라는 연민의 마음이 드러낸다. 여러 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이들이 모이기에 가장 적당한 곳은 ‘시내버스 정류장’이며, 화자는 이들이 시내버스 정류장에 모여 베트남어로 수다를 떠는 내용들이 두고 온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일 것이라고 연상하여 나열한다. 그리고 마지막 행에 ‘얌전하게 시댁으로 돌아간다’하여 이들이 마주하고 있는 현실로 돌아감으로써 시상을 마무리한다. 여기서 ‘시댁’은 엄마, 아내, 며느리가 있는 곳으로 삶의 무게를 지고 눈치를 보며 얌전하게 살아가야 할 공간이다. 화자는 이들의 고통과 애환을 드러내며 무한 애정을 보내고 있다.

 

  화자가 버스 정류장에서 마주하게 된 '앳된 엄마'들은 우리 사회가 본격적인 다문화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확인시켜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이러한 다민족, 다문화 사회를 준비하고, 우리 사회의 새로운 구성원이 된 이들을 배려하는 자세가 미흡한 것이 아닌가 돌아 볼 필요가 있다. 이 시는 이러한 우리 사회의 현실이 짤막하게 제시되며, 어린 나이에 머나먼 타국 땅에서 생활해야 하는 결혼 이주 여성들의 안타까운 처지에 대해 연민을 드러내고 있다.

 

 

▲작자 하종오(河種五, 1954 ~ )

 

  시인. 경북 의성 출생. 1975년 《현대문학》에 〈사미인곡(思美人曲)〉 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1980년 ‘반시(反詩)’ 동인으로 참가했다. 초기에는 강한 민중 의식과 민족의식을 기초로 한 작품들을 발표하였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선족, 탈북자, 외국인 노동자, 결혼 이주 여성 등의 삶과 애환을 다룬 시들을 주로 창작하고 있다. 시집으로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1981), 《사월에서 오월로》(1984), 《넋이야 넋이로다》(1986), 《젖은새 한마리》(1990), 《쥐똥나무 울타리》(1995), 《아시아계 한국인들》(2007), 《입국자들》(2009), 《제국》(2011) 등이 있다.

 

 

 

►작성 : 남상학(시인)

 

 

'문학관련 > - 읽고 싶은 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힘내라, 네팔 / 한명희  (0) 2020.10.17
신분(身分) / 하종오  (0) 2020.10.15
밴드와 막춤 / 하종오  (0) 2020.10.13
<동승>과 <골목길> / 하종오  (0) 2020.10.12
원어(原語) / 하종오  (0) 2020.10.1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