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밴드와 막춤
- 하종오
동남아에서 한국에 취업 온
청년 넷이 밴드를 만들어 연습하다가
저녁 무렵 도심 지하 보도에서
처음 한국인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공연 준비를 마치자
노인네들이 몰려와 둘러섰다
기타는 스리랑칸 베이스는 비에트나미즈
드럼은 캄보이단 신시사이저*는 필리피노
노름한 옷차림을 한 연주자들은
낡은 악기로 로큰롤*을 연주했다
노인 한 분 나와서 몸 흔들어대자
다른 노인 한 분 나와서 몸 흔들어대고
노파 한 분 나와서 몸 흔들어대자
다른 노파 한 분 나와서 몸 흔들어댄다
막춤을 신나게 추던 노인네들은
연주자들이 부루스*를 연주하기 시작하자
잠시 얼떨떨해하다가
노인 한 분과 노파 한 분
다른 노인 한 분과 다른 노파 한 분
양손으로 살포시 껴안고
양발로는 엇박자*가 나도 돌았다
미소 짓던 동남아 청년 넷은
저마다 고국에 계신 노부모님에게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적 없었다 싶으니
더 정성껏 연주하고
노인네들은 저마다 자식들이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적 없었다 싶으니
더 흥겹게 춤을 추었다.
- 시집 《입국자들》(2009) 수록
*엇박자 : 음이 제 박자에 오지 않고 어긋나게 오는 박자. 당김음을 만들거나 합주할 때 특수한 효과를 나타낸다.
이 작품은 우리 사회의 소외 계층인 이주 노동자와 노인들이 한데 어울리는 장면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시로, 다문화 사회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시간의 흐름과 점층적 확대에 의해 시상이 전개되고, 유사한 구조의 문장을 반복하고, 대상이 지닌 공통된 속성을 바탕으로 주제 의식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연주 준비-연주-연주에 맞추어 춤추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이 시는 이주노동자 밴드의 공연이 시작되면서 흥겹고 즐거운 분위기가 점차 확장되는 점층적 시상 전개 방식이 나타난다. 1연에서는 동남아 이주 노동자들의 밴드가 공연 준비를 마치고 노인 관객들이 모여드는 장면이 제시된다. 동남아 노동자 네 명이 저녁 무렵 도심 지하도에서 공연을 하기 위하여 준비를 마치자 노인네들이 모여든다. ‘노동자’와 ‘노인네’는 외로운 처지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이다.
▶작성 : 남상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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