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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동승>과 <골목길> / 하종오

by 혜강(惠江) 2020. 10. 12.

스탑클랙다운 단원들

 

 

* 하종오(河鍾吾, 1954년~ ) 시인은 1975년 《현대문학》에 〈사미인곡(思美人曲)〉등이 추천되어 등단한 이후, 1981년 첫 시집으로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를 펴낸 이후 20여 권의 시집, 동화집 등을 냈다.  2004년 《반대쪽 천국》을 펴내면서 이주민 문제를 화두로 삼고, 이주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이 증가하고 있는 사회 변화를 반영해 이주노동자들의 삶의 모습을 포괄한 시편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 뒤에 나온 시집 《지옥처럼 낯선》(2006), 《국경없는공장》(2007), 《아시아계 한국인들》(2007), 《베드타운》(2008), 《입국자들》(2009) 등이 모두 이주 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특히 2009년 나온 《입국자들》에서 다양한 각도에서 이주민들을 바라본 시를 선보였다. 여기서 시 <동승(同乘)>과 <골목길> 두 편을 함께 살펴본다.

 

 

A. 동승(同乘)

 

- 하종오

 

국철을 타고 앉아 가다가

문득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이 들려 살피니

아시안 젊은 남녀가 건너편에 앉아 있었다

늦은 봄날 더운 공휴일 오후

나는 잔무*하러 사무실에 나가는 길이었다

저이들이 무엇 하려고

국철을 탔는지 궁금해서 쳐다보면

서로 마주 보며 떠들다가 웃다가 귓속말할 뿐

나를 쳐다보지 않았다

모자 장사가 모자를 팔러 오자

천 원 주고 사서 번갈아 머리에 써 보고

만년필 장사가 만년필을 팔러 오자

천 원 주고 사서 번갈아 손바닥에 써 보는 저이들

문득 나는 천박한 호기심이 발동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황급하게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국철은 강가를 달리고 너울거리는* 수면 위에는

깃털 색깔이 다른 새 여러 마리가 물결을 타고 있었다

나는 아시안 젊은 남녀와 천연하게

동승하지 못하고 있어 낯짝* 부끄러웠다

국철은 회사와 공장이 많은 노선을 남겨 두고 있었다

저이들도 일자리로 돌아가는 중이지 않을까

 

 

- 시집 《국경 없는 공장》(2007)

 

 

◎시어 풀이

*잔무 : 다 끝내지 못하고 남은 일.

*너울거리는 : 큰 물결이나 나뭇잎 따위가 부드럽게 굽이져 움직이는.

*낯짝 : 얼굴을 속되게 이르는 말.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국철에서 외국인 남녀를 목격한 시적 화자가 그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자신의 태도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고 있는 시이다.

 

  시의 제목인 ‘동승(同乘)’은 사전적으로 ‘차, 배, 비행기 따위를 같이 탐’을 의미한다. 이 시의 화자인 ‘나’는 ‘아시안 젊은 남녀’와 함께 국철에 동승하고 있지만, 그들에게 차별적 시선을 보내며 마음으로는 동승하고 있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시적 상황과 주제를 고려할 때, 이 시의 제목 ‘동승’은 다문화 사회로 변해 가는 시대 상황에서 차별적 시선을 거두고 우리 사회에 이주한 다양한 인종,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가는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연구분 없이 21행으로 된 이 시는 산문체를 사용한 평이한 어조로 주제를 직접적으로 전달하고 있으며, 마지막 행에서는 의문형 종결어미를 사용하여 여운을 남기고 있다. 또 상징적 소재를 들어 시의 주제를 형상화하고, 보조사의 사용으로 화자의 심리적 변화를 제시하고 있다. 즉 5행에서는 ‘나는 ~’ 이라고 하여 ‘나’와 ‘저이들’의 차별성을 드러내고 있으며, 21행의 ‘저이들도~’ 에서는 보조사 ‘도’를 사용하여 ‘나’와 ‘저이들’의 동질감을 드러내고 있다.

 

  1~5행에서 화자는 국철을 타고 잔무를 처리하기 위해 사무실로 가다가 동승한 아시안 젊은 남녀를 발견한다. 그들의 ‘문득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듣고서 화자는 호기심을 갖고 살피게 된다.

 

  6~15행에서는 아시안 젊은 남녀의 모습과 이에 대해 가졌던 괜한 호기심에 대해 반성한다. 화자는 아시안 젊은 남녀들이 국철을 탄 이유가 궁금하여 호기심을 가지고 쳐다보지만, 아시안 젊은 남녀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마주 보며 떠들다가 웃다가 귓속말만 할 뿐’ 쳐다보지 않고, 저들 나름의 일상을 즐길 뿐이다. 그래서 화자는 ‘문득 나는 천박한 호기심이 발동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 황급하게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라고 한다. 여기서 ‘천박한 호기심’은 다른 언어와 다른 피부색에 대한 호기심을 의미하며 ‘차창 밖으로 고개를 돌린’ 행위는 자신의 행동을 반성하며 부끄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16~21행에서는 아시안 젊은 남녀를 차별적 시각으로 본 것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며, 동승한 아시안 젊은 남녀가 우리의 이웃임을 깨닫는다. ‘깃털 색깔이 다른 새 여러 마리가 물결을 타고 있었다’라는 표현은 다양한 언어와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과 공존해야 함을 깨닫게 하는 객관적 상관물로서, 함께 어울려 포용과 조화로운 삶을 살아야 함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이처럼 서로 공존해야 할 대상임에도 ‘나는 아시안 젊은 사람들과 천연하게 동승하지 못하고 있어’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부끄러웠다’라는 것은 색깔이 다른 새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도 동승한 아시안 젊은이들을 이웃으로 받아드리지 못한 자신의 모습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이러한 깨달음으로 화자는 나와 같이 ‘저이들도 일자리로 돌아가는 것이 아닐까’라는 말로 서로가 동승(同乘)한 이웃임을 확인하고 있다.

 

  이제 우리 사회에는 이미 단일 민족이라는 개념이 무색할 만큼 많은 외국인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이제 그들은 호기심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사회 구성원의 일부이다. 이 시의 화자는 지하철에 동승한 아시아계 외국인들을 단지 호기심과 편견을 가지고 살아온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람직한 삶의 태도임을 말하고 있다.

 

 

B. 골목길

 

- 하종오

 

 

골목길에 목련꽃이 피어 있어서

무직 남자가 대문 앞에 나와 구경하는데

희디흰 목력꽃 아래 지나서

가무잡잡한 아시안 둘

모퉁이 돌아갔다

무직 남자는 무심결에 눈으로 뒤좇았다

아시안 둘 뒷덜미에서

꽃그늘이 자우룩이* 내렸다

무직 남자는 눈 끔벅이다가 부리나케* 일어나

목련꽃 아래 지나서

아시안 둘이 왔던 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직장 다닐 때 미국 가서

주택가 어슬렁어슬렁 산책했던 적에

백인 남자가 그를 빤히 쳐다보았었다

그날 기분을 그는 떠올려보았다.

 

 

◎시어 풀이

 

*무심결에 : 아무 생각이 없거나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무심중에.

*자우룩이 : 자우룩하게. 연기나 안개 따위가 잔뜩 끼어 매우 흐리고 고요한 느낌이 있게.

*부리나케 : 아주 급하게.

 

 

▲이해와 감상

 

  하종오의 시 <골목길>은 일상생활에서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을 통해, 이방인들을 대하는 우리들의 시선을 돌아보고 있다. 화자는 무직 남자의 입장을 통해 아시아인들이 느꼈을 시선을 돌아보고. 이방인을 낮추어보는 시선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

 

  전 15행으로 된 이 시는 4개의 내용 단락으로 나눌 수 있다. 1~5행에서는 목련꽃이 핀 골목길에 나타난 아시아인들을 색채의 대비를 통해 묘사하고 있다. 골목길 어느 집 앞에서 무직 남자가 목련꽃을 구경하고 있는데, 아시아인 둘이 지나간다. ‘희디흰 목련꽃 아래 지나서/ 가무잡잡한 아시안 둘’은 흰 목련꽃과 가무잡잡한 아이안의 색채 대비를 통해, 아시안들에 대한 인상을 효과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6~8행에서는 무직 남자를 통해서 아시안들은 낮추어보는 시선을 통해서 그들을 얕보는 그릇된 편견을 그려내고 있다. ‘아시안 둘 뒷덜미에서/ 꽃그늘이 자우룩이 내렸다’라는 것은 아시안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드러낸 것이다.

 

  9~11행에서는 아시안들이 느꼈을 시선을 돌아보려는 행동을 통해서 옹졸한 편견에 대한 자책을 그려내고 있다. 무직 남자는 눈 끔벅이다가 부리나케 일어나/ 목련꽃 아래 지나서/ 아시안 둘이 왔던 쪽으로 걸어갔다.’에서 ‘눈 끔벅이다가 부리나케 일어’난 행동은 자신의 행동에 잘못이 있었음을 자각하는 것이고, ‘아시안 둘이 왔던 쪽으로 걸어’간 이유는 아시안의 입장에서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려 했기 때문이다. 즉, 무직 남자는 무심결에 눈으로 뒤쫓은 아시안들의 기분이 어떠했을지 깨달은 후에 그들의 입장이 되어 보고자 그들이 오갔던 길을 되짚어 본다.

 

  마지막 12~15행에서 과거를 떠올리며 자신의 행동을 돌아본다. 과거 미국에서 근무하던 시절, 주택가를 산책하고 있을 때 ‘백인 남자가 그를 빤히 쳐다보았었다/ 그날 기분을 그는 떠올려보았다’라고 한다. 여기서 ‘백인 남자’가 ‘그’를 빤히 쳐다본 것은 지금에 와서 ‘그’가 ‘가무잡잡한 아시안’을 쳐다보는 것이 된다. 즉 자신도 역시 과거에 백인 남자의 시선 때문에 좋지 않았던 ‘그날 기분’을 기억해 내고, 이를 통해 과거 자신이 느꼈던 ‘그날 기분’을 그들도 느꼈을까 염려하고 자신의 행동을 반성한다. 과거의 경험을 거울삼은 반성이다.

 

  결국, 이 시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입장에서 ‘그날 기분’을 떠올림으로써 ‘피부색이 다른 이방인들을 덮어놓고 경멸하는 눈길에 대한 반성’이라는 작품적 의도를 전하고 있다.

 

 

▲작자 하종오(河種五, 1954 ~ )

 

  시인. 경북 의성 출생. 1975년 《현대문학》에 〈사미인곡(思美人曲)〉 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1980년 ‘반시(反詩)’ 동인으로 참가했다. 초기에는 강한 민중 의식과 민족의식을 기초로 한 작품들을 발표하였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선족, 탈북자, 외국인 노동자, 결혼 이주 여성 등의 삶과 애환을 다룬 시들을 주로 창작하고 있다. 시집으로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1981), 《사월에서 오월로》(1984), 《넋이야 넋이로다》(1986), 《젖은 새 한 마리》(1990), 《쥐똥나무 울타리》(1995), 《아시아계 한국인들》(2007), 《입국자들》(2009), 《제국》(2011) 등이 있다.

 

 

 

 

►작성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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