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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지금도 지금도 / 최영철

by 혜강(惠江) 2020. 10. 8.

 

지금도 지금도

 

 

- 최영철

 

 

 

지금도 레미콘은 돌고 있다

그대들이 잠들어 있거나

명상에 젖어 온밤을 지새울지라도

미묘한 음반처럼

레미콘은 돌고 있다

등 돌린 그대들의 화합을 위하여

모래와 자갈은 아프게

물과 시멘트는 성질을 죽이고

레미콘은 돌고 있다

그대들이 까마득히 잊고 있을 때에도

길을 걷거나 걷지 않을 때에도

따뜻한 화합을 위하여

그대들 먼 발치*에 우뚝 멈추어선

콘크리트는 위험하지

순하게 섞여 물에 물탄 듯

물에 물탄 듯 부서지지 않는

시멘트는 모래가 되고

모래는 자갈이 되어

지금도 레미콘은 돌고 있다

오랜 미아*로 서성대는

그대들의 어깨너머

다시 만남을 위하여

알게 모르게

절망하지 않을 때에도

 

 

- 시집 《아직도 쭈그리고 앉은 사람이 있다》(1987) 수록

 

 

◎시어 풀이

*발치 : ① 누울 때 발을 뻗는 곳이나, 어떤 장소나 건물의 끝 부분

*미아(迷兒) : 길을 잃고 헤매는 아이.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정지하지 않고 계속 돌면서 모래, 자갈, 시멘트와 물을 한데 섞는 레미콘의 회전 운동을 강조하면서 배타적이고 고립적인 현대인들에게 조화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화자는 레미콘에 상징성을 부여하여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고 화합과 만남에 대한 소망을 드러내고 있다.

 

  제목의 <지금도 지금도>는 어떤 행위의 계속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시는 ‘레미콘이 돌고 있다’라는 시구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하나의 의미 단락을 구성하고 있으며, 그러한 반복을 통해 운율감을 형성할 뿐만 아니라 레미콘 안에서 다른 물질들이 지속적으로 뒤섞이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처럼 지속적으로 돌고 있는 레미콘의 동적(動的) 이미지는 이 시에 나타나는 사람들의 정지된 행태의 정적(靜的) 이미지와 대립을 이루면서 주제를 확연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연구분 없이 24행으로 되어 있는데 내용으로 보아 다섯 단락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1~5행에서는 첫 부분은 사람들이 잠들어 있거나 명상에 젖어 온밤을 새우는 등 사람의 행동 방식과 관계없이 끊임없이 돌고 있는 레미콘의 운동을 대비하여 강조하고 있는데, 그러한 운동을 ‘미묘한 음반처럼’ 돌고 있다고 묘사하면서 레으미콘 운동의 조화와 화해의 아름다움을 동적 이미지로 강조하고 있다.

 

  6~9행의 두 번째 내용 단락에서는 ‘등돌린’ 사람들과 대비되는 레미콘의 화합 작용을 강조한다. 레미콘 속의 구성물인 모래와 자갈, 물과 시멘트 등은 서로 자신의 아픔을 감내하면서, ‘성질을 죽이고’ 돌고 있다. 다시 말하면, ‘레미콘’은 서로 성질이 다른 모래와 자갈, 물, 시멘트가 한곳에 모여 있으나 그 물질들은 서로 희생하며 화합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에 ‘그대들’, 즉 인간은 서로 등을 돌리고 대립한다는 점에서 ‘레미콘과는 대조된다.

 

  10~14행에서는 사람들의 인식 행위의 영역 밖에서 끊임없이 인간에게 교훈을 주고 있는 레미콘의 회전 운동을 강조하면서, 그것과 대비되는 콘크리트의 위험성을 부각한다. 즉 레미콘은 그대들이 ‘까마득히 잊고 있을 때에도/ 길을 걷거나 걷지 않을 때에도’ 그것에 구애받지 않고 끝없이 회전하면서 구성물들의 결합과 화합을 형성하지만, 이미 굳어 버린 콘크리트는 사람들에게 위험의 대상이 된다.

 

  15~19행에서는 화자가 지향하는 세상, 즉 레미콘의 운동이 만들어내는 화합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시멘트, 모래, 자갈 등이 ‘레이콘’ 속에서 돌아가며 자신을 주장하지 않고, ‘시멘트가 모래가 되고/ 모래는 자갈이 되어’ 서로 조화를 이루어 간다. 인간의 삶 역시 그러할 때 화자가 지향하는 화합의 세상이 도래할 것이라는 생각이 표현되어 있다.

 

  마지막 20~24행에서는 미아(迷兒)로 서성대는 인간의 부조화와 레미콘의 조화를 대비시켜 주제 의식을 강조한다. 인간들은 갈 길을 잃고 ‘오랜 미아로 서성대는’ 상황에 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레미콘은 ‘그대들의 어깨 너머/ 다시 만남을 위하여/ 알게 모르게’ 돌고 있다. 제목인 ‘지금도 지금도’는 화합과 조화를 위한 노력이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나타내주고 있다. 화자는 ‘레미콘’을 통해 불화와 반목으로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향하여 화합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결국, 이 시는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남들과 함께 어울리지 않으려는 사람, 타자를 배려하거나 양보하지 않고 자신만을 내세우는 개인주의적 현대인, 그래서 서로 갈등하고 고립된 현대인에게 화합과 조화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최영철(崔泳喆, 1956 ~)

 

  시인, 경상남도 창녕 출생. 198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연장론>이 당선되어 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고통과 슬픔을 재료로 삼아 사랑을 빚어내는 몸의 연금술을 보여준다. 첫 시집으로 《아직도 쭈그리고 앉은 사람이 있다》1987)를 비롯하여 《가족사진》(1991), 《홀로 가는 맹인 악사》(1994), 《야성은 빛나다》(1997), 《일광욕하는 가구》(2000), 《개망초가 쥐꼬리망초에게》(2001), 《그림자 호수》(2003), 《호루라기》(2006). 《찔러 본다》(2010), 《금정산을 보냈다》(2015), 《말라간다 날아간다 흩어진다》(2018) 등을 발간했다. 그리고 산문집 《동백꽃, 붉고 시린 눈물》(2008), 《시의 향기를 찾아서》(2019) 등이 있다.

 

 

►작성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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