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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선운사에서 / 최영미

by 혜강(惠江) 2020. 10. 6.

 

 

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1994)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선운사 동백꽃의 낙화를 모티브로 하여 자연 현상의 하나인 꽃이 피고 지는 과정에 빗대어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과 이별을 대응시켜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을 아파하는 시다. 화자는 선운사에서 꽃이 피고 지는 자연 현상에 주목하여 사랑과 이별에 대한 통찰을 보여 주고 있다.

 

  자연 현상과 인간사를 병치하여 의미를 강화화고, 동일한 시어를 반복하여 시적 정서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이 시에서 주목되는 것은 표현상에 있어서 ‘~이더군’이라는 종결 어미가 첫 연과 마지막 연에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다. 시에 별로 사용하지 않는 ‘~ 이더군’이라는 종결 어미는 기본적으로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무엇인가를 깨달았음을 말할 때 사용되는 것으로, 자신의 일을 마치 남의 일처럼 말하는 것으로 느끼게 함으로써 감정을 절제하는 듯한 효과도 준다.

 

  1연을 보면, 이 시의 화자는 낙화의 허무함과 순간성을 보고 아주 잠깐이었던 그대와의 사랑을 인식하게 된다.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에 대응시키고 있다. 이러한 대응의 구조를 자세히 살펴보면, 꽃이 피고 지는 과정과 사랑과 이별의 과정이 유사성을 지닌 채 유추 관계를 이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연에서는 그러한 자연 현상을 자신의 내면에 밀착시켜,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라며 이별의 슬픔과 고통이 순식간에 떨어지는 꽃처럼 빨리 지나가기를 희망한다.

 

  3연에서 화자는 사랑했던 그대가 ‘멀리서 웃고 있는’, ‘산 넘어 가는’으로 떠나갔음을 재확인하고, 마지막 4연에서는 ‘꽃이 지는 건 쉬어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이라며 사랑하던 사람을 잊는다는 것이 힘들고 더디다는 것을 깨달으며 시상을 마무리하고 있다. ‘영영 한참이더군’은 이별의 아픔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떠난 임을 잊지 못하는 화자의 아픔이 서려 있다. 특히 ‘한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잠깐’(1연), ‘순간’(2연)과 대비하여 ‘이별의 아픔’을 더욱 뚜렷하게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더군’의 반복으로 사랑과 이별의 경험을 통해 깨닫게 되는 인간사의 진리, 곧 이 시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부각하고 있다.

 

  결국, 이 시는 꽃이 피고 지는 과정을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에 대응시켜, 그것에서 깨닫게 되는 인간사의 진리를 절제된 언어로 표현한 작품이다.

 

 

▲작자 최영미(崔泳美, 1961~ )

 

시인. 서울 출생. 1992년 《창작과 비평》에 <속초에서> 등 8편의 시를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1980년대를 경험한 젊은이들의 상처와 고독을 도시적 감수성과 솔직한 표현으로 그려 내고 있다. 섬세하면서 대담한 언어, 지금 이곳에서의 삶을 직시하는 신선한 리얼리즘으로 한국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시집으로 《서른 잔치는 끝났다》(1994), 《꿈의 페달을 밟고》(1998), 《돼지들에게》(2005), 《도착하지 않은 삶》(2009), 《이미 뜨거운 것들》(2013) 등이 있다. 그리고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2005), 《흉터와 무늬》(2005)를 썼다.

 

 

►작성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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