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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아마존 수족관 / 최승호

by 혜강(惠江) 2020. 10. 4.

 

 

아마존 수족관

 

 

- 최승호

 

 

아마존 수족관 열대어들이

유리벽에 끼어 헤엄치는 여름밤

세검정 길.

장어구이집 창문에서 연기가 나고

아스팔트에서 고무 탄내가 난다.

열난 기계들이 길을 끓이면서

질주하는 여름밤

상품들은 덩굴져 자라나며 색색이 종이꽃을 피우고 있고

철근은 밀림, 간판은 열대지만

아마존 강*은 여기서 아득히 멀어

열대어들은 수족관 속에서 목마르다.

변기 같은 귓바퀴에 소음 부글거리는

여름밤

열대어들에게 시를 선물하니

 

노란 달이 아마존 강물 속에 향기롭게 출렁이고

아마존 강변에 후리지아 꽃들이 만발했다.

 

 

- 시집 《대설 주의보》(1983) 수록

 

 

◎시어 풀이

*아마존강(Amazon River) : 남아메리카의 북부에 있는 안데스산맥에서 시작여 적도를 따라 동쪽으로 흘러 대서양으로 들어가는 강. 유역면적과 유량이 세계 최대.

*후리지야(Freesia) : 붓꽃과에 속하는 알뿌리식물로, 원종은 남아프리카의 모래 토양이나 암석 주변에 널리 자생한다.

 

 

▲이해와 감상

 

  이 시의 화자는 도시화, 기계화된 현대 사회 속에서 하나의 상품으로 전락해 버린 인간을 수족관에 갇힌 물고기에 비유하여 현대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과 현대인들의 생명력 회복을 기원하고 있다. 화자는 직접 드러나 있지 않으나, 여름밤 세검정 길에서 열대어를 보며, 화려하고 복잡한 도시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고 답답하고 삭막한 도시가 아닌, 생명력이 넘치는 도시 공간을 희망하고 있다.

 

  이 시는 도시의 ‘아마존 수족관’과 원시 자연의 ‘아마존 강’의 공간 대비, ‘종이꽃’과 ‘후리지아꽃’의 시어 대비를 통해 화자가 지향하는 가치를 드러내고 있으며, 참신한 비유와 상징을 통해 시상을 전개하고, 계절적 배경 제시를 통해 생명력이 상실된 도시 문명의 분위기를 드러내고, 시적 대상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그리고, 원시 자연에 대한 갈증, 결핍의 상황을 역설적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전 2연 16행으로 된 이 시는 1연이 14행으로 길고, 2연은 고작 2행일 뿐이다. 1연은 여름밤 도시의 풍경과 수족관에 갇혀 갈증을 느끼는 열대어의 모습을 그려내고, 15~16행은 열대어들에게 시를 선물하자 원시 자연의 왕성한 생명력이 살아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의 시적 대상인 ‘아마존 수족관의 열대어들’이 여름밤에 ‘유리벽에 끼어’ 헤엄을 친다. ‘아마존 수족관’은 인위적이고 기계적인 현대의 도시 공간'을 상징하고, 그 속의 ‘열대어들’은 생명력을 상실해 가는 현대의 도시인들을 비유한다. ‘유리벽에 끼어 헤엄치는’은 규격화되고 억압적인 도시인들의 삶을 비유한 것이며, ‘여름밤’과 ‘세검정길’은 각각 이 시의 시간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으로, 생명력이 상실된 도시 문명의 분위기와 도시를 드러내고 있다.

 

그런데 그 길에선 ‘장어구이 집 창문에서 연기가 나고/ 아스팔트에서 고무 냄새가 난다/ 열난 기계들이 길을 끓인다.’라고 한다. 여기서 ‘장어구이 집 연기’는 소비 지향적인 현대인의 모습이 연상되고, ‘고무 냄새’는 매캐한 도시의 냄새를 후각적 감각으로 표현한 것이며, 길을 끓이면서 질주하는 ‘기계들’은 도로에 열기를 내뿜으며 달리는 자동차들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진열된 상품은 생명이 아예 없는 ‘종이꽃’이며, 밀림처럼 빽빽한 철조 건물, 열대처럼 뜨거운 간판이 여름밤을 달군다. 분명히 반생명적인 삭막한 도시의 풍경들이다. 그래서 ‘아마존강’을 그리워한다. ‘아마존강’은 문명이나 도시와 대비되는 원시의 공간으로, 화자가 지향하는 공간이다. 그런데 그와 대비되는 ‘열대어들은 수족관에서 목마르다’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원시 자연의 공간에 대한 갈증과 결핍의 상황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원시적인 자연 공간의 결핍으로 인해 인위적이고 기계적인 도시 공간 속에서 사는 존재들이 느끼는 답답함이 잘 드러나 있다. 열대어에 대한 화자의 부정적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그래서 화자는 ‘변기 같은 귓바퀴에 소음 부글거리는/ 여름밤/ 열대어들에게 시를’ 선물한다. ‘변기 같은 귓바퀴에 소음 부글거리는’은 도시 문명의 부정적인 횡포를 나타낸 것으로, 도시의 소음을 변기에 버려진 오물에 대응하여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시(詩)’는 현대인의 생명력을 회복시킬 수 있는 정신적인 가치를 상징한다. 여기서 열대어와 화자를 동일시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를 선물하는 행위는 열대어에 대한 연민이자 화자 자신에 대한 연민으로 볼 수 있다.

 

  2연은 ‘노란 달이 아마존강물 속에 향기롭게 출렁이고/ 아마존강 변에 후리지아 꽃들이 만발했다.’라고 표현한다. ‘노란 달’, ‘후리지아 꽃’은 회복된 도시의 인간성, 생명력을 상징하며, ‘노란 달이 아마존강물 속에 향기롭게 출렁이고’는 원초적인 생명 공간을 공감각적 이미지로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아마존강 강변에 후리지아 꽃들이 만발했다.’라는 것은 화자가 소망하는 원시 자연의 왕성한 생명력과 부활을 의미하는 것이다.

 

  결국, 수족관 속 열대어들의 삶을 바라보며 안타까워하는 화자는 수족관 속 열대어들에게 아마존강 변과 같은 이상적인 삶을 선물하고 싶어 하는 행위를 통해서 궁극적으로 삭막한 도시 문명에 대한 비판과 생명력 회복, 인간성 회복에 대한 소망을 노래하고 있다.

 

 

▲작자 최승호(崔勝鎬, 1954 ~ )

 

  시인. 강원 춘천 출생. 1977년 《현대 시학》에 <비발디>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세상의 모습을 죽음의 불길한 상징으로 읽어내면서 자본주의의 병폐를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로 드러낸다. 시집으로 《대설 주의보》(1983), 《세속 도시의 즐거움》(1990), 《그로테스크》(1999), 《모래 인간》(2000),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인 나》(2003), 《북극 얼굴이 녹을 때》(2010) 등이 있다.

 

 

►해설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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