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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노래와 이야기 / 최두석

by 혜강(惠江) 2020. 10. 2.

<출처: 네이버 블로그 '라파엘의 네 멋대호 읽고 써라'>

 

노래와 이야기

 

 

- 최두석

 

 

 

노래는 심장*에, 이야기는 뇌수*에 박힌다.

처용이 밤늦게 돌아와, 노래로써

아내를 범한 귀신을 꿇어 엎드리게 했다지만

막상 목청을 떼어 내고 남은 가사는

베개에 떨어뜨린 머리카락 하나 건드리지 못한다

하지만 처용의 이야기는 살아남아

새로운 노래와 풍속을 짓고 유전해 가리라.

정간보가 오선지로 바뀌고

이제 아무도 시집에 악보를 그리지 않는다

노래하고 싶은 시인은 말 속에

은밀히 심장의 박동을 골라 넣는다.

그러나 내 격정의 상처는 노래에 쉬이 덧나

다스리는 처방은 이야기일 뿐

이야기로 하필 시를 쓰며

뇌수와 심장이 가장 긴밀히 결합되길 바란다.

 

 

- 시집 《대꽃》(1984) 수록

 

 

시어 풀이

*심장(心臟) : 주기적인 수축에 따라 혈액을 몸 전체로 보내는, 순환계의 중심적인 근육 기관. 염통. 여기서는 감성을 뜻함.

*뇌수 : 뇌. 신경 세포가 모여 신경계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부분. 여기서는 ‘이성’을 뜻함.

*처용(處容) : 《삼국유사》에 나오는 설화로, 신라 제49대 헌강왕 때의 기인(奇人). 879년에 왕이 동부를 순행할 때 기이한 생김새와 옷차림으로 나타나 가무를 하며 궁궐에 따라 들어와 급간(級干)의 벼슬을 받았는데, 어느 날 아내가 역신과 동침하는 것을 보고, 향가 〈처용가〉를 지어 불러 역신을 물리쳤다는 이야기.

*유전(流轉) : 이리저리 떠돌아 다님.

*정간보 : 조선 시대 세종이 창안한 악보.

*오선지(五線紙) : 악보를 그릴 수 있도록 오선을 그은 종이.

*덧나다 : 병이나 상처 따위를 잘못 다루어 상태가 더 나빠지다.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시의 본질을 시로 표현한 작품이다. 즉, 시의 본질은 언어를 통하여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을 표현하는 것으로 심장은 감성, 뇌수는 이성과 연관되는데 이 둘이 긴밀히 결합한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을 드러낸 작품이다.

 

처용의 설화를 통해서 시상을 전개하고, ‘노래’와 ‘이야기’, ‘심장’과 ‘뇌수’라는 시어의 대립을 통해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연구분 없이 15행으로 이루어진 시는 다섯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행에서 노래는 심장에, 이야기는 뇌수에 박힌다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다. 이것은 시가 노래와 이야기가 결합하여야 함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 노래는 시의 운율을, ‘이야기는 가사 내용을 가리키는 것으로 시는 이 두 가지 요소가 결합하여야 한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2~7행에서는 처용 설화를 통한 노래와 이야기의 관계를 표현하고 있다. 화자는 처용의 노래를 예로 들면서, 노래는 독자를 감동하게 하는 감화력을 갖지만, 이야기만으로는 독자를 감동하게 할 감화력을 갖지 못하지만, 그래도 처용의 이야기는 세상에 널리 퍼지고, 퍼뜨려져 세상에 이리저리 떠돌아다닐 것이라고 한다.

 

8~11행에서는 악보(노래)가 사라진 현실에 대한 화자의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정간보가 오선지로 바뀐 현대에 오면, ‘이제 아무도 시집에 악보를 그리지 않는다라며, 오늘날 시가 노래와 멀어진 현실을 개탄한다. 그래서 노래하고 싶은 시인은 말속에 은밀히 심장의 박동을 골라 넣는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심장의 박동은 시의 리듬 혹은 운율을 가리키는 것으로, 시의 말(시어)은 시인의 감성(노래)을 담고 있으면서, 그것을 정제된 형식으로 표현한 것이며, 확연하게 드러나거나 은밀하게 감춰진 리듬을 갖는다. 그래서 화자는 말속에/ 은밀히 심장의 박동을 골라 넣는다라고 하여, 말에 생명을 불어넣어 감동을 주는 시를 쓰고자 하는 바람을 표현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12~15행에서는 뇌수와 심장이 결합한 시를 쓰고 싶은 소망을 드러낸다. ‘그러나 내 격정의 상처는 노래에 쉬이 덧나/ 다스리는 처방은 이야기일 뿐/ 이야기로 하필 시를 쓰며/ 뇌수와 심장이 가장 긴밀히 결합하기를 바란다.’ 시인은 자신의 격정(노래)을 다스리기 위해 이야기를 시로 쓰면서도, ‘뇌수와 심장이 가장 긴밀히 결합되길 바란다.'라고 표현하여, ’뇌수’(이성)심장‘(감성) 결합할 때 좋은 시가 된다는 생각으로 이 둘이 긴밀히 결합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이 시는 '시란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작가의 생각(고민)을 담아낸, 시로 쓴 자신의 시론(詩論)인 셈이다. 시인의 시론을 제재로 시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다.

 

 

▲작자 최두석(崔斗錫, 1956~)

 

  시인 · 문학 평론가. 전남 담양 출생. 1980심상<김통정> 등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오월시> 동인으로 활동했다. 엄정한 현실 인식과 섬세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 시를 주로 썼다. 시집으로 대꽃(1984), 임진강(1986), 성에꽃(1990), 망초꽃밭(1991),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1997), 꽃에게 길을 묻는다(2003), 투구꽃(2009) 등이 있다. 이외 평론집으로 리얼리즘의 시정신, 시와 리얼리즘등이 있다.

 

 

해설 : 남상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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