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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낡은 집 / 최두석

by 혜강(惠江) 2020. 10. 1.

 

낡은 집

 

 

- 최두석

 

   귀향이라는 말을 매우 어설퍼하며* 마당에 들어서니 다리를 저는 오리 한 마리 유난히 허둥대며 두엄자리*로 도망간다. 나의 부모인 농부 내외와 그들의 딸이 사는 슬레이트 흙담집, 겨울 해어름*의 집안엔 아무도 없고 방바닥은 선뜩한 냉돌*이다. 여덟 자 방구석엔 고구마 뒤주가 여전하며 벽에 메주가 매달려 서로 박치기한다. 허리 굽은 어머니는 냇가 빨래터에서 오셔서 콩깍지로 군불을 피우고 동생은 면에 있는 중학교에서 돌아와 반가워한다. 닭똥으로 비료를 만드는 공장에 나가 일당* 서울 광주 간 차비 정도를 버는 아버지는 한참 어두워서야 귀가해 장남의 절을 받고, 가을에 이웃의 텃밭에 나갔다 팔매질* 당한 다리병신 오리를 잡는다.

 

 

- 시선집 《망초꽃밭》(1991) 수록

 

 

◎시어 풀이

 

*어설퍼하다 : 일이 몸에 익지 않아 엉성하고 거칠다고 여기며

*두엄자리 : 두엄을 쌓아 모으는 자리. 두엄터. 퇴비장(堆肥場).

*해어름 : ‘해거름’의 방언(경기, 충남), 해가 서쪽으로 기울어질 무렵.

*냉돌(冷突·冷堗) : 불기 없는 찬 온돌방. 냉방(冷房).

*일당(日當) : 하루에 일한 대가로 얼마씩 정해서 주는 수당이나 보수. 일급.

*팔매질 : 작고 단단한 돌 따위를 손에 쥐고 팔을 흔들어 멀리 던지는 짓.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평범한 농가를 배경으로 가난하지만 따뜻한 정이 있는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가난하고 낡은 고향 집에 오랜만에 돌아온 시적 화자가 고향 집에서 느끼는 소박 하고 따뜻한 가족의 애정을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화자인 ‘나’는 타지에 살다가 오랜만의 귀향을 낯설어하면서도 가족의 따뜻한 환영에 소박한 기쁨을 느끼고 있다.

 

  이 시는 귀향하여 가족들과 있었던 사건들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산문체 형식(이야기 시)으로 써 내려간 점, 시 속의 인물들과 그 모습을 개관화하여 감정의 직접적 노출을 자제하고 마치 다른 사람의 일을 보고하는 듯한 담담한 어조를 구사한 점, 익살스러운 상황 제시 속에 가족의 구체적 생활상을 녹여 넣은 점 등을 통해 가난한 가족에 대한 연민과 사랑을 간접적으로 제시하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그리고 현재 시제 사용하여 시에 생동감을 부여하고, 이미지의 대비를 통해 화자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을 부각하고 있다.

 

  연구분 없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섯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앞의 세 문장은 오랜만에 돌아온 가난한 고향 집의 풍경을 묘사한 것하고, 뒤의 두 문장은 따스한 가족애를 그리고 있다.

 

  첫 문장 ‘귀향이라는 말을 매우 어설퍼하며 마당에 들어서니 다라를 저는 오리 한 마리 유난히 허둥대며 두엄자리로 도망간다’ 오랜만의 귀향이라 서먹해 하는 화자의 눈에 처음 들어온 것은 ‘다리를 저는 오리 한 마리’다. 향토적인 풍경 가운데 ‘유난히 허둥대는’ 모습이 익살스럽게 그려져 있다.

 

  두 번째 문장, ‘나의 부모인 농부 내외와 그들의 딸이 사는 슬레이트 흙담집, 겨울 해어름의 집안엔 아무도 없고 방바닥은 선뜩한 냉돌이다.’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배경이 겨울이며, 식구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딸 등 셋, ‘슬레이트 흙담집’과 ‘선뜻한 냉돌’은 가난한 형편임을 드러내는 것이다. 특히 가족에 대한 서술에서 ‘나의 부모인 농부 내외와 그들의 딸’이라는 진술은 마치 다른 사람의 가족을 남에게 보고하는 듯한 담담한 어조로 구사함으로써 이 시의 특징인 객관화의 표현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세 번째 문장 ‘여덟 자 방구석엔 고구마 뒤주가 여전하며 벽에 메주가 매달려 서로 박치기한다.’ 방구석에 놓인 뒤주, 벽에 매달린 메주는 옛날 가난한 시골 방안에서 보던 풍경이다. 특히 ‘벽에 메주가 매달려 박치기한다’는 묘사는 가난한 모습을 익살스럽게 표현하여 오히려 친근감을 자아내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네 번째 문장부터는 따스한 가족애가 드러나고 있다. ‘허리 굽은 어머니는 냇가 빨래터에서 오셔서 콩깍지로 군불을 피우고 동생은 면에 있는 중학교에서 돌아와 반가워한다’ 텅 빈 집에 어머니와 동생이 등장한다. ‘허리 굽은 어머니’라는 표현에는 고생이 많으신 어머니의 모습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화자의 마음이 담겨 있다. 그런 어머니가 아들을 위해 군불을 지피는 모습에서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모정이 따뜻한 이미지로 제시된다. 학교에서 돌아와 반갑게 맞이하는 여동생 역시 가족 간에 훈훈한 정을 그려낸다.

 

마지막 다섯째 문장은 아버지에 대한 것으로 비교적 길다. ‘닭똥으로 비료를 만드는 공장에 나가 일당 서울 광주 간 차비 정도를 버는 아버지는 한참 어두워서야 귀가해 장남의 절을 받고, 가을에 이웃의 텃밭에 나갔다 팔매질 당한 다리 병신 오리를 잡는다’. 아버지가 농부가 아닌 ‘비료 공장’의 노동자로 일한다는 것, 그럼에도 그리 많지 않은 일급, 늦은 귀가는 어딘가 비정상적인 농촌(산업화로 인해 변화된 모습)에서 사는 가장으로서의 무게를 짐작케 한다. 그런 아버지가 아들의 절을 받고 나서 아들을 위해 ‘오리를 잡는다.’ 오랜만에 네 식구가 모였으니, 어려운 형편에서도 아들을 위해 푸짐한 만찬을 준비하기 위한 아버지의 사랑을 대비하여 드러낸 것이다.

 

  이 시는 화자가 오랜만에 고향 집에 돌아왔는데, 고향 집은 여전히 낡고 가난한 모습이지만 어머니, 동생, 아버지가 ‘나’를 환대하며, ‘나’를 위해 오리를 잡는 모습에서 애잔하면서도 따뜻함과 가족의 사랑을 뜨겁게 느끼는 것이다. 여러 가지 토속적인 소재를 활용함으로써 농촌에 대한 풍경과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좋은 작품이다.

 

 

▲작자 최두석(崔斗錫, 1956 ~ )

 

  시인 · 문학 평론가. 전남 담양 출생. 1980년 《심상》에 <김통정> 등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오월시> 동인으로 활동했다. 엄정한 현실 인식과 섬세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 시’를 주로 썼다. 시집으로 《대꽃》(1984), 《임진강》(1986), 《성에꽃》(1990), 《망초꽃밭》(1991), 《사람들 사이에 꽃이 필 때》1997), 《꽃에게 길을 묻는다》(2003), 《투구꽃》(2009) 등이 있다. 이외 평론집으로 《리얼리즘의 시정신》, 《시와 리얼리즘》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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