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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해(海)에게서 소년에게 / 최남선

by 혜강(惠江) 2020. 9. 29.

 

 

해(海)에게서 소년에게

 

 

- 최남선

 

 

1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태산 같은 높은 뫼. 집채 같은 바윗돌이나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

나의 큰 힘 아느냐 모르느냐 호통까지 하면서

따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2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내게는 아무 것도 두려움 없어

육상(陸上)에서 아무런 힘과 권(權)을 부리던 자라도

내 앞에 와서는 꼼짝 못하고

아무리 큰 물건도 내게는 행세하지 못하네.

내게는 내게는 나의 앞에는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3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나에게 절하지 아니한 자가

지금까지 없거든 통기(通寄)*하고 나서 보아라.

진시황(秦始皇)* 나팔륜* 너희들이냐.

누구 누구 누구냐 너희 역시 내게는 굽히도다.

나하고 겨룰 이 있건 오너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4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조그만 산(山) 모*를 의지하거나

좁쌀 같은 작은 섬 손벽 만한 땅을 가지고

그 속에 있어서 영악한 체를

부리면서 나 혼자 거룩하다 하는 자

이리 좀 오너라 나를 보아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5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나의 짝될 이는 하나 있도다.

크고 길고 넓게 뒤덮은 바 저 푸른 하늘.

저것은 우리와 틀림이 없어,

적은 시비(是非) 적은 쌈* 온갖 모든 더러운 것 없도다.

조 따위 세상에 저 사람처럼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6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

저 세상 저 사람 모두 미우나

그중에서 똑 하나 사랑하는 일이 있으니

담(膽) 크고 순정(純精)한 소년배들이

재롱처럼 귀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오너라 소년배 입 맞춰 주마.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

 

 

- 《소년》 창간호(1908) 수록

 

 

◎시어 풀이

*통기(通寄·通奇) : 통지(通知).

*진시황(秦始皇, B.C 259~210) : 진나라 제31대 왕이며, 중국 최초의 황제. 불로불사(不老不死)에 대한 열망이 컸으며, 대규모의 문화탄압 사건인 분서갱유(焚書坑儒)를 일으켜 중국 역사상 최대의 폭군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나팔륜(拿破崙,1769~1821) : 나폴레옹. 프랑스의 군인․황제, 본명은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황제에 즉위하여 제일 제정(第一帝政)을 수립하고 유럽 대륙을 정복하였으나 대영(對英) 대륙 봉쇄 및 러시아 원정에 실패. 워털루 전투에서 패망하여 영국에 항복하였다.

*모 : 모퉁이

*쌈 : ‘싸움’의 준말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1908년 《소년》 창간호 권두시로 발표된 육당 최남선이 지은 신체시(新體詩)이다. 신체시는 신문학 운동 초창기에 과거의 창가에서 현대의 자유시로 넘어가는 중간 단계의 새로운 시 형식으로, '신시‘라고도 한다. 따라서 기존의 4·4조나 7·5조, 또는 6·5조 등의 창가 형식을 깨뜨리고 자유시의 형태로 많이 접근했다는 데에 문학사적 의의가 크다.

 

  그러나, 언뜻 보기에는 정형률을 크게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제1행 2·2·3, 제2행 3·3·5, 제3행 4·3·4·5, 제4행 3·3·5 등 각 연의 시행이 일정할 뿐만 아니라, 각 대응하는 시행에서도 서로 동일한 리듬의 반복으로 짜여 있음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이 시가 완전한 자유시가 아니라 이전 시들이 지닌 음수율의 지배를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준정형적(準定型的) 형태임을 말해주는 것이다. 거기다가 각 연의 앞뒤에서 ‘처……ㄹ썩’, ‘쏴……아’, ‘튜르릉’, ‘콱’ 등과 같은 의성어(擬聲語)를 반복하고 있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이 시는 ‘창가’로서의 요소를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는 ‘해(바다)’가 소년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을 사용하여 문명개화를 실현해야 할 주역들인 소년에 대한 믿음과 기대를 노래하고 있다. 화자인 ‘나’는 ‘소년에게’ 이야기하는 ‘해(海)’ 즉 바다로 볼 수 있으며, 화자는 강대한 바다의 목소리를 통해 구시대의 인습을 비판하고 새로운 시대를 맞기 위한 노력에 기울일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 시의 표현상의 특징을 보면, 자연물인 ‘바다’를 의인화하여 계몽적 내용을 전달하고 있으며,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와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을 각 연의 앞뒤에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음악성을 부여하고 있으며 점층법, 의성법, 직유법, 반복법의 사용이 매우 두드러진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강인한 어조로 대상의 각성을 촉구하고 있다.

 

  전 6연으로 구성된 이 시에서 중요한 것은 ‘바다’와 ‘소년’의 이미지다. ‘바다’를 ‘나’ 또는 ‘우리’로 의인화(擬人化)하여 ‘소년’에 관련시킨 작자의 의도는 무한한 ‘힘’과 ‘새로움’의 창조에 있다. 이 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4연에서는 ‘바다’의 무한한 힘과 그 위용(偉容) 앞에 인간 존재의 왜소함을 나타낸 것이라면, 5~6연에서는 맑고 깨끗한 바다의 속성과 무한한 가능성을 안고 새로움에 대한 희망과 동경(憧憬)을 노래한 것으로 구분된다.

 

  1연은 모든 것을 부술 수 있는 바다의 위력을 노래하고 있다. 첫 행의 ‘처……ㄹ썩, 처……ㄹ썩, 척, 쏴……아’와 마지막 행의 ‘처……ㄹ썩, 처……ㄹ썩, 척, 튜르릉, 꽉’은 모두 파도의 웅장함과 힘을 나타내는 의성어로, 소년의 씩씩한 기상을 상징하는 것이다. ‘때린다, 부순다, 무너 버린다’라는 것은 무언가 타도해야 할 대상이 있다는 것인데, 궁극적인 대상은 결국 지금까지의 봉건적 가치인 낡은 질서나 구세력을 의미하는 것이다. 또 ‘태산 같은 높은 뫼’나, ‘집채 같은 바윗돌’은 바다의 위력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것은 문명개화를 이룰 수 있는 바다의 ‘큰 힘’인 것이다.

 

  2연은 그 어떤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바다의 위력을 노래하고 있다. 육상에서 그 어떤 ‘힘과 권세를 부리던 자’도 ‘아무리 큰 물건’도 내 앞, 즉 바다 앞에서는 꼼짝도 못 한다고 바다의 엄청난 위력을 노래하고, 3연에서는 역사적으로 무소불위(無所不爲)의 힘과 권력을 휘둘렀던 진시황(秦始皇), 나폴레옹 등의 인물들을 거명하며 그들도 내게 굴복하였으니, ‘나에게 겨룰 이 있건 오너라’라고 한다. 하늘을 찌를 듯한 기개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4연에서는 새롭고 넓은 세상에 관심이 없는 자들에 대하여 바다가 호통치는 내용이다. 보잘것없은 작은 것을 가지고 잘난 척, 약은 척하는 우물 안 개구리들 식의 좁은 안목으로 문명개화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오만과 무지를 호되게 비판하며, ‘이리 좀 오너라, 나를 보아라’라고, 명령형을 사용하여 자신의 우월감을 과시하고 있다.

 

  5연에 와서는 이전까지 바다의 힘과 위용을 노래하던 자세에서 한 걸음 나아가 하늘과 같이 맑고 깨끗한 바다의 속성을 노래한다. ‘나의 짝 될 이는 하나 있도다/ 크고 길고, 너르게 뒤덮은바 저 푸른 하늘/ 저것은 우리와 틀림이 없어/ 작은 시비, 작은 쌈 온갖 모든 더러운 것 없도다/ 저 따위 세상에 저 사람처럼’이라고 노래한다. 이것은 지상에서 벌어지는 시기와 질투, 사악 일체를 초월한 의연한 자세와 광대무변한 하늘의 속성을 닮은 바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이어 6연에서는 담 크고 순수한 소년들에 대한 바다의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저 세상 저 사람 모두 미우나/ 그중에서 똑 하나 사랑하는 일 있으니/ 담 크고 순정한 소년배들이/ 재롱처럼, 귀엽게 나의 품에 와서 안김이로다/ 오너라 소년배 입 맞춰 주마’라고. 담 크고 순정(純情)한 소년들이 자기에게 와 안길 것을 바라면서 소년들을 부르고 있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것은 무한한 가능성을 안고 새로움에 대한 희망과 동경(憧憬)을 노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는 서구 및 일본의 선진 문화 수용과 그를 통하여 힘 있고 활기에 찬 새 사회를 건설하고자 하는 열망을 담은 작품이라 보인다. 왜냐하면, 이 시가 쓰인 시기가 개화기라는 점과 이 시의 내용 면에서 볼 때 계몽적이라고 볼 수 있다. 계몽이 낡고 묵은 것을 타파하고 새로운 것으로 이끄는 것이라 볼 때, 이 시가 기존 질서에의 질타를 과녁으로 하고 있다거나 아직 기존의 세계에 물들지 않은 소년들에게 연대 의식을 나타낸다는 점 등은 작가의 의지에 잘 부합한다고 보인다.

 

  그리고 이 작품이 우리 시문학사에서 중요하게 거론되는 이유는 그것이 창가(唱歌) 형식에서 진일보한 자유로운 형식을 취하였다는 점에 있다. 형태면에서는 정형에서 준 정형으로, 용어면에서는 율어체(律語體)에서 구어체(口語體)로의 변모를 보인 것은 분명 획기적인 새로움이며, 이후 자유시 출현의 발판 구실을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

 

 

▲작자 최남선(崔南善, 1890~1957)

 

  시인. 사학자. 서울 출생. 호는 육당(六堂). 18세의 나이로 출판기관인 신문관을 창설하고, 장래 역사의 주인공이 될 청소년들을 깨우칠 목적으로 최초의 종합잡지 《소년》을 발간하여 문화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고, 근대 문학 초창기에 선구적인 활동을 하였고, 시조의 부흥 운동과 국사의 일반화에 힘쓰는 등 민족 계몽 운동과 전통문화의 보급에 앞장섰다. 《소년》 외에도 《붉은 저고리》, 《아이들 보이》, 《샛별》, 《청춘》 등의 잡지를 간행했다.

 

  1919년 3.1만세운동 때는 <독립선언문>을 작성하기도 했고, 1908년부터 1919년까지 최남선·이광수 ‘2인 문단 시대’를 열었다. 그는 비록 일본강점기 말기에 학병 권유 등의 친일행위로 전반기 민족주의자로서의 활동에 오점을 남기기도 했지만, 문학·문화·언론 등 다방면에 걸쳐 큰 발자취를 남겼다. 최초의 개인 시조집 《백팔번뇌》(1926)와 여행기 《심춘 순례》(1925) 등의 작품집이 있다.

 

 

 

►해설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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