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에꽃
- 최두석
새벽 시내버스는
차창에 웬 찬란한 치장을 하고 달린다.
엄동 혹한*일수록
선연히* 피는 성에꽃*
어제 이 버스를 탔던
처녀 총각 아이 어른
미용사 외판원 파출부 실업자의
입김과 숨결이
간밤에 은밀히 만나 피워 낸
번뜩이는 기막힌 아름다움
나는 무슨 전람회에 온 듯
자리를 옮겨 다니며 보고
다시 꽃 이파리 하나, 섬세하고도*
차가운 아름다움에 취한다.
어느 누구의 막막한 한숨이던가
어떤 더운 가슴이 토해낸 정열의 숨결이던가
일없이 정성스레 입김으로 손가락으로
성에꽃 한 잎 지우고
이마를 대고 본다.
덜컹거리는 창에 어리는 푸석한* 얼굴
오랫동안 함께 길을 걸었으나
지금은 면회마저 금지된 친구여.
- 시집 《성에꽃》(1990) 수록
◎시어 풀이
*성에 : 추운 겨울, 유리창이나 벽 따위의 찬 곳에 수증기가 허옇게 얼어붙어 생긴 서릿발
*성에꽃 : 성에가 유리창 따위에 끼어 있는 모습을 꽃에 비유한 말.
*엄동 혹한 : 몹시 추운 겨울의 심한 추위.
*선연히 : 실제로 보는 것같이 생생하게.
*섬세하다(纖細―) : ① 곱고 가늘다. ② 아주 찬찬하고 세밀하다.
*푸석한 : 핏기가 없이 약간 부은 듯하고 꺼칠한.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새벽 시내버스 창에 핀 성에를 통해서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에 대한 애정과 시대 현실에 대한 아픔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는 자연물인 ‘성애’를 통해 힘든 현실 속에서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인간의 삶을 형상화하고, 비유적 표현을 사용하여 화자의 생각을 드러내고, 감각적이고 역설적인 표현을 통해 사물을 그려내는 동시에 화자의 정서를 표출하고 있다. 그리고 감성과 지성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잡힌 시선을 유지하여 어두운 현실을 잔잔한 어조로 표현하고 있다.
전체 22행으로 구성된 단연시로서, 화자가 새벽 버스 차창에서 우연히 ‘성에’를 발견하고 그것을 통해 가난한 삶에 대한 애정과 연민의 감정을 표출하고, 불의한 시대에 맞서다 구속된 친구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내용으로 보아 그것은 크게 네 부분으로 나뉜다. 첫 부분에서 화자는 우연히 새벽 버스 차창에서 성에꽃을 발견하고, 두 번째 부분에서는 서민들의 숨결로 태어난 버스 차창의 성에꽃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세 번째 부분에서 빈 버스의 창가 자리를 돌아다니며 가난한 삶들이 만들어놓은 다양한 형상의 성에꽃에 연대의 감정을 표출하며, 네 번째 부분에서 화자는 불현듯 버스 차창을 통해 같은 길을 걷다가 구속되어 지금은 만날 수도 없는 친구의 모습을 떠올리며 안타까워한다. 이처럼 이 시는 개인적인 체험과 시대적인 경험을 연결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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