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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참 좋은 말 / 천양희

by 혜강(惠江) 2020. 9. 27.

 

 

참 좋은 말

 

 

- 천양희

 

 

 

내 몸에서 가장 강한 것은 혀
한 잎의 혀로
참, 좋은 말을 쓴다

미소를 한 육백 개나 가지고 싶다는 말
내가 웃는 것으로 세상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
오늘 죽을 사람처럼 사랑하라는 말

내 마음에서 가장 강한 것은 슬픔
한 줄기의 슬픔으로
참, 좋은 말의 힘이 된다

바닥이 없으면 하늘도 없다는 말
물방울 작지만 큰 그릇 채운다는 말
짧은 노래는 후렴*이 없다는 말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은 말
한 송이의 말로
참, 좋은 말을 꽃피운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란 말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는 말
옛말은 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자꾸 온다는 말

 

 

- 시집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2011) 수록

 

 

◎시어 풀이

*후렴 : 노래 곡조 끝에 붙여 같은 가락으로 되풀이하여 부르는 짧은 몇 마디의 가사.
*여백 : 종이 따위에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남은 빈자리.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좋은 말의 아름다움과 긍정적인 힘을 강조하고 있는 시로, 시인이 생각하는 ‘참 좋은 말’들을 열거하면서 삶과 세상의 이치를 나타내고 있다. 화자인 ‘나’는 ‘참 좋은 말’의 힘이 지닌 가치에 대하여 사색적이면서도 성찰적인 태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 시는 화자가 생각하는 아홉 가지의 좋은 말을 열거하여 말이란 단순히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라, 자신을 포함하여 타인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으며, 삶과 세상의 이치를 일깨워 주는 힘을 가진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잠언적인 말을 통해 독자를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이 시는 두 연이 하나의 의미 덩어리를 이루어 형태적 안정감을 주고 있으며, 참 좋은 말들의 사례를 병렬적으로 제시하는데 유사한 통사 구조의 반복을 통해 운율감을 형성하고, 명사형 종결어미를 통해 운율을 형성하고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이 시에서 화자는 ‘참 좋은 말’은 강한 힘을 가진 것으로 세 가지의 특성으로 나타내고 있다. 1~2연에서 화자는 먼저 ‘한 잎의 혀로/ 참, 좋은 말을 쓴다’라며, 내 몸에 있는 혀를 통해 나오는 말의 힘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세 가지 말을 제시한다. ‘미소를 한 육백 개나 가지고 싶다는 말’(항상 미소를 지니고 싶음), ‘네가 웃는 것으로 세상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상대방이 행복해지기를 전할 수 있음, ‘오늘 죽을 사람처럼 사랑하라는 말’(진실한 사랑을 전할 수 있음)이다. 그 이유는 ‘참 좋은 말’은 자신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즐겁고 행복하게 하며, 진실하고 절실하게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3~4연에서 화자는 ‘한 줄기의 슬픔으로/ 참, 좋은 말의 힘이 된다’라며, 마음의 슬픔이 좋은 말을 할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음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어찌 보면 이치에 맞지 않는 표현 같기도 하지만, 화자는 ‘슬픔’을 겪어 보았던, 그리고 그 ‘슬픔’을 극복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이 다른 사람의 슬픔을 이해하고 위로할 수 있는 좋은 말을 해줄 수 있기 때문에 ‘슬픔’이 ‘참 좋은 말’의 힘이 된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또 세 가지의 말을 제시한다. ‘바닥이 없다면 하늘도 없다는 말’(낮고 작고하찮아 보이지만 의미 있는 것), ‘물방울이 작지만 큰 그릇을 채운다는 말’(작은 것이라도 노력하면 성취를 이룰 수 있다는 의미), ‘짧은 노래는 후렴이 없다는 말’(크지 않아도 실속이 있다는 말)이다. 이는 슬픔을 겪어 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용기를 주고 격려할 수 있는 좋은 말을 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5~6연에서 화자는 ‘한 송이의 말로/ 참, 좋은 말을 꽃피운다’라며, 인생의 교훈이 담긴 말들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리고 세 가지 말을 제시한다. ‘세상에서 가장 먼 길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가는 길이란 말’(지식보다 따뜻한 감성으로 대하는 것이 어렵다는 의미), ‘사라지는 것들은 뒤에 여백을 남긴다는 말’(자나가는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기억으로 남는다는 의미), ‘옛날은 가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자꾸 온다는 말’(과거의 일은 현재에 이어져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들이다. 즉 머리로 생각한 것보다 마음으로 느끼는 것이 어렵고 지나간 일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 남아 현재의 삶에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말들, 이러한 말들은 삶과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해주는 힘이 있기에 화자는 말을 세상에서 가장 강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처럼, 이 시는 ‘한 잎의 혀’로 쓰는 참 좋은 말은 소망과 사랑의 말을(1~2연), ‘한 줄기 슬픔’으로 쓰는 참 좋은 말은 위로와 희망을 주는 말을(3~4연), ‘한 송이의 말’로 꽃 피우는 참 좋은 말은 삶의 이치가 담긴 말로, ‘참, 좋은 말’의 힘이 지닌 가치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이 시는 ‘혀’를 ‘잎’으로, ‘슬픔’을 ‘줄기’로, ‘말’을 ‘꽃’으로 빗대어 좋은 말의 아름다움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2개의 연이 하나의 의미 덩어리가 되어 규칙적인 구조와 통사 구조, 시어를 반복함으로써 운율을 살리고 구조적 인정감을 지니게 한 것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작자 천양희(千良姬, 1942~)

 

  시인. 부산 출생. 1965년 《현대문학》에 <정원 한때>, <아침>, <화음> 등의 시가 추천되면서 등단하였다. 감성적이고 진솔한 시로 독자들과 친숙해졌고, 오랜 연륜에서 오는 중후함과 인생의 운명에 결연히 대결하는 자세가 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집으로 《마음의 수수밭》(1994),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1998), 《오래된 골목》(1998), 《하얀 달의 여신》(1998), 《너무 많은 입》(2005) 등과 짧은 소설 《하얀 달의 여신》(1999),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2011) 등이 있다.

 

<천양희의 시 세계>

  천양희 시인은 다사다난한 인생사를 겪었고, 그것의 일부가 시를 통하여 표현되었다. 결혼 생활 동안 시작(詩作) 활동을 하지 않다가, 이혼 후 다시 시작했을 때에는 세상에 대한 적개심과 자기 정체성에 대해 고통스러워하는 내용이 많았다. 그러나 후반부에는 그것을 극복하고 인생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세상과의 화해를 이룩하는 내용의 시들을 쓰며 더 정진해갔다. 시의 경향이 다소 모호하고 부분적으로 이해를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있어 왔지만, 진솔한 감정 표현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며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작성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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