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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외길 / 천양희

by 혜강(惠江) 2020. 9. 25.

 

외길

 

- 천양희

 

 

가마우지 새는 벼랑에서만 살고
동박새는 동백꽃에서만 삽니다.
유리새는 고여 있는 물은 먹지 않고
무소새는 둥지를 소유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새들은 날아오릅니다.
새들은 고소 공포증도 폐쇄 공포증도 없습니다.
공중이 저의 길이니
제발 그대로 놓아두시지요.
외길이 나의 길이니
제발 그대로 내버려 두시지요.

 

 

- 시집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1998) 수록

 

 

◎시어 풀이

*고소 공포증 : 높은 곳에 있으면 공포를 느끼는 병.
*폐쇄 공포증 : 폐쇄된 장소를 두려워하고 공포를 느끼는 병적 증상.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새들이 주어진 삶을 자유롭게 살아가듯이, 주어진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길’이 삶의 태도나 방향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때, 시의 제목인 ‘외길’은 단 한 방향으로만 나 있는 길이므로, 한 가지 방법이나 방향에만 전념하는 삶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화자인 ‘나’는 여러 새의 모습을 통해 자기 삶의 태도를 뒤돌아보고, ‘새’라는 자연물과 ‘나’를 동일시하여 구속과 속박 없이 하늘을 날아가는 새들처럼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간곡한 어조와 경어체를 사용하여 드러내고, 같은 구조의 문장을 반복하여 화자의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새’의 존재 방식을 통해 외부적인 요인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삶의 길을 지켜내려는 화자의 의지와 삶의 태도를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1~4행에서는 새에 대한 관찰로부터 발견한 사실을 ‘살고’와 ‘삽니다’, ‘않고’와 ‘압니다’ 등 같은 구조의 문장을 반복하여 표현하고 있다. 즉, ‘가마우지 새’는 벼랑에서, ‘동박새’는 동백꽃에서, ‘유리새’는 고여 있는 물음 먹지 않고, ‘무소새’는 둥지를 소유하지 않고 살아간다. 모두 자신만의 습성과 방법대로 살아가는 새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무소새는 둥지를 소유하지 않습니다’라는 표현은 새 이름이 무소유라는 발음과의 유사성에 기인한 발상으로, 이름이 지닌 의미를 활용한 언어유희(言語遊戲)라고 할 수 있다. 여기 나열된 새들은 새의 이름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듯이 저마다 독특하고 다양한 삶의 습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5~6행은 ‘그래도’라는 시어로 시상을 전환하여 삶의 방식은 다양해도 ‘새들은 날아오릅니다/ 새들은 고소 공포증도 폐쇄 공포증도 없습니다’라고 한다. 이것은 새의 본질적 습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서 ‘고소 공포증’, ‘폐쇄 공포증’은 자유로운 비상을 막는 내적·외적 요소들인데, 이것이 없다는 것은 새들이 자유로이 비상한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마지막 7~10행에서는 ‘공중이 저의 길이니/ 제발 그대로 놓아두시지요/ 외길이 나의 길이니/ 제발 그대로 내버려 두시지요’라며, 자기 삶의 길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새들이 자유롭게 비상하기를 바라는 화자의 마음이 강조된 것이며, 신념에 따라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의지적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 시는 '새'의 존재 방식과 같이, 자신이 선택한 오롯한 삶의 길을 지키며 살아가고자 하는 시인의 삶의 자세가 형상화된 작품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다양한 삶의 방식과 복잡한 영향 관계를 물리치고 자신이 선택한 삶의 길을 고수하며 살아가려는 시인의 태도는 시인 자신의 실존적인 삶을 지켜내려는 의지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시에 등장하는 '외길'이란 오랜 시간 동안 삶의 고통과 절망을 경험하고 인생에 대한 진지하고 존재론적인 성찰을 통해 발견하게 된 시인의 유일한 삶의 방향이자 경로라고 볼 수 있다. 이 시가 어떠한 외부적 영향에도 흔들리지 않고 지켜나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점에서 윤동주 시인의 <길>과 매우 흡사하다.

 

 

▲작자 천양희(千良姬, 1942~)

 

  시인. 부산 출생. 1965년 《현대문학》에 <정원 한때>, <아침>, <화음> 등의 시가 추천되면서 등단하였다. 감성적이고 진솔한 시로 독자들과 친숙해졌고, 오랜 연륜에서 오는 중후함과 인생의 운명에 결연히 대결하는 자세가 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집으로 《마음의 수수밭》(1994),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1998), 《오래된 골목》(1998), 《하얀 달의 여신》(1998), 《너무 많은 입》(2005) 등과 짧은 소설 《하얀 달의 여신》(1999) 등이 있다.

 

<심층 분석 : 천양희 시인의 시 세계>

  천양희는 1965년 문단에 등장한 이후 1969년 결혼, 1982년까지 13년간 작품 활동을 중단한다. 이 기간에 남편과 이별하고 의상실을 경영했으며 병을 앓기도 했다. 1983년 <신이 우리에게 묻는다면>을 통해 문단으로 돌아온 그녀는 외부 세계의 꿈이 좌절된 것에서 비롯된 정신적 위기와 자기방어의 시를 발표하며, 외부 세계로부터 철저히 단절된 비사회적 태도로 일관한다. 이러한 시적 경향은 1994년 발표된 <마음의 수수밭> 이후 큰 변화를 맞이한다. 이 시집에서 그녀는 지난 세월 경험했던 고통과 절망의 세월에 대한 존재론적 성찰을 통해 세상과 화해하고 낙관주의적 전망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1990년대 이후 많은 시를 발표하며 삶에 대한 진지하고 존재론적인 성찰을 통해 삶을 너그럽게 수용하는 경지를 보이게 된다. 그녀의 이러한 작품 세계는 삶의 질곡을 힘겹게 걸어가고 있는 많은 독자의 호응을 받으며 큰 위안과 희망을 안겨 주었다.

 

 

►작성 : 남상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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