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다부원(多富院)에서 / 조지훈

by 혜강(惠江) 2020. 9. 23.

 

 

다부원(多富院)에서

 

 

- 조지훈

 

 

 

한 달 농성(籠成) 끝에 나와보는 다부원*은

얇은 가을 구름이 산마루에 뿌려져 있다

 

피아(彼我)* 공방(攻防)*의 포화가

한 달을 내리 울부짖던 곳

 

아아 다부원(多富院)은 이렇게도

대구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구나.

 

조그만 마을 하나를

자유의 국토 안에 살리기 위해서는

 

한해살이 푸나무*도 온전히

제 목숨을 다 마치지 못했거니

 

사람들아 묻지를 말아라

이 황폐한 풍경이

무엇 때문의 희생(犧牲)인가를……

 

고개 들어 하늘에 외치던 그 자세대로

머리만 남아 있는 군마(軍馬)*의 시체,

 

스스로의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옆에 쓰러진 괴뢰군 전사.

 

일찍이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움직이던 생령(生靈)*들이 이제

 

싸늘한 가을바람에 오히려

간 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는 다부원

 

진실로 운명의 말미암음이 없고

그것을 또한 믿을 수가 없다면

이 가련한 주검에 무슨 안식(安息)이 있느냐.

 

살아서 다시 보는 다부원은

죽은 자도 산 자도 다 함께

안주(安住)의 집이 없고 바람만 분다.

 

 

   - 《사상계》(1968.1) 수록

 

 

◎시어 풀이

*다부원 : 낙동강 상류의 조그만 마을로, 1950년 한국 전쟁 당시 가장 치열했던 전투로 꼽히는 다부동 전투(多富洞戰鬪)가 있었던 곳이다. 경상북도 칠곡군 가산면에서 전투를 벌인 끝에 대한민국 국군이 북한군의 대공세를 저지시키고 대구로 진출하려던 세를 꺾었던 곳이다.

*피아(彼我) : 상대방과 우리 편. 저편과 이편.

*공방(攻防) : 공격과 방어.

*푸나무 : 풀과 나무.

*군마(軍馬) : ① 군사와 말. 곧, 병력(兵力). ② 군대에서 쓰는 말.

*생령(生靈) : ① 생명. ② 살아 있는 사람의 영혼.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한국 전쟁 동안 시인이 종군 문인단(從軍文人團)에 소속되어 있던 중 다부원(多富院)에서 전쟁의 참상을 보고 느낀 시인의 감회를 적은 작품이다. 종군 작가로서의 경험을 살려 창작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사실적이고도 강렬한 인상을 제시하고 있다.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쓴 작품이다.

 

  이 시에서는 이러한 시인의 실제적 경험이 생생하게 드러나 있는데, 이 시는 한 달여 간의 전쟁이 끝난 뒤 그것이 할퀴고 지나간 아픈 상처들이 남아 있는 다부원(多富院)을 본 시인의 감회가 사실적으로 전달되고 있다. 전체가 11연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내용상 크게 다섯 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다.

 

  1~3연은 치열했던 다부원 전투의 현장을 다시 찾은 감회를 표현하고 있다. 서로에게 총칼을 겨누고 한동안 치열하게 싸웠던 참혹한 전쟁의 현장이 '대구에서 가까운 자리'에 있었다는 표현을 통해 전쟁의 상처가 우리 삶 깊숙한 곳까지 침투해 있음을 제기하고 있다.

 

  4, 5연에서는 전쟁이 남긴 참혹하고 처참한 모습을 보여 준다. ‘조그만 나을 하나를’ 살리기 위해서 전쟁을 치르는 동안 ‘푸나무’도 제 목숨을 다 지키지 못하고, 국토가 황폐한 풍경으로 변한 것을 바라보며 전쟁의 무의미함에 대한 의문을 ‘무엇 때문의 희생인가’를 통해서 제기한다.

 

  6, 7연에서 참혹한 모습으로 죽어 있는 ‘군마의 시체’와 ‘스스로의 뉘우침에 흐느껴 우는 듯/ 길 옆에 쓰러진 괴뢰군 전사’의 시체를 통해 전쟁의 참혹함과 잔인함을 고발하고 있다.

 

  8, 9연에서는 전쟁이 남긴 비인간적인 상처를 그리고 있다. '한 하늘 아래 목숨 받아' 태어난 하나의 민족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싸워 이제는 시체가 되어, 이제는 가을바람에 썩고 있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썩는 ‘간고등어 냄새’라는 후각적 이미지를 통해 강렬하게 제시하고 있다.

 

  10, 11연은 이 시의 주제연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전쟁은 패배한 쪽은 물론이고 승리한 쪽에도 아무런 ‘안식’도 ‘안주’도 되지 못함을 ‘이 가련한 주검에 무슨 안식이 있느냐’라는 말로 고발하고 있다. 이처럼 이 시는 전쟁에서의 희생이 무의미한 것임을 말하고 있는 점에서 일반적인 전쟁시(戰爭詩)와의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이 시는 피아(彼我)를 구분하고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전쟁이 주는 참혹성과 소중한 생명이 무참하게 희생되는 것을 고발함으로써 전쟁문학의 일반적인 특징인 휴머니즘의 태도를 보여 준다고 볼 수 있다.

 

 

▲작자 조지훈(趙芝薰, 1920~1968)

 

  시인, 국문학자. 경상북도 영양 출생. 본명 동탁(東卓). 1939년 《문장》지를 통하여 <고풍 의상>, <승무>, <봉황수> 등으로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였다.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며. 동양의 회고적 정신을 바탕으로 전통에의 향수, 민족의 한(恨)을 고전적 운율로 노래하였다. 청록파의 한 사람인 박두진은 그를 가리켜 “투명한 감성, 밝은 지성, 예리한 감각과 윤택한 정서를 통하여 한국의 현대 시사에 하나의 불멸의 업적을 남겨놓았다”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말 민족의 참상을 보면서 현실 세계를 시 창작 대상으로 끌어들이고, 특히 6·25전쟁 중 종군 작가로 참전하면서 쓴 〈다부원에서〉, 〈패강무정(浿江無情)〉 등에도 뚜렷하게 나타나 있다. 더구나 '4월 혁명의 사회시'라는 부제를 붙인 시집 《여운(餘韻)》에는 자유당 말기 정치풍토의 고발과 4·19혁명의 정치적 개선을 읊은 〈터져 오르는 함성〉 등의 시가 실려 있다.

 

  시집으로는 박두진, 박목월과 공동 시집 《청록집》(1946)을 간행하였고, 시집으로 《풀잎 단장》(1952), 《역사 앞에서》(1959), 《여운》(1964) 등이 있다. 그밖에 수필집으로 《창에 기대어》(1958), 《시와 인생》(1959), 《돌의 미학》(1964), 《지조론》(1963), 평론집으로 《시의 원리》(1953), 《한국문화사 서설》(1964) 등이 있다.

 

 

►해설 : 남상학 시인

 

'문학관련 > - 읽고 싶은 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왜요? / 천양희  (0) 2020.09.25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 진은영  (0) 2020.09.24
파초우(芭蕉雨) / 조지훈  (0) 2020.09.22
봉황수 / 조지훈  (0) 2020.09.21
민들레꽃 / 조지훈  (0) 2020.09.19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