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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봉황수 / 조지훈

by 혜강(惠江) 2020. 9. 21.

 

 

봉황수(鳳凰愁)

 

- 조지훈

 

 

  벌레 먹은 두리기둥* 빛 낡은 단청(丹靑)* 풍경*소리 날아간 추녀 끝에는 산새도 비둘기도 둥주리*를 마구쳤다. 큰 나라 섬기다 거미줄 친 옥좌(玉座)* 위엔 여의주(如意珠)* 희롱하는 쌍룡(雙龍) 대신에 두 마리 봉황(鳳凰)새*를 틀어 올렸다. 어느 땐들 봉황이 울었으랴만 푸르른 하늘 밑 추석(甃石)*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佩玉)* 소리도 없었다. 품석(品石) 옆에서 정일품 종구품 어느 줄에도 나의 몸 둘 곳은 바이* 없었다.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九泉)*에 호곡(呼哭)*하리라.

 

- 《문장》(1940.2) 수록

 

◎시어 풀이

 

*봉황수 : 봉황(우리 민족의 상징)의 슬픔

*두리기둥:둘레를 둥그렇게 깎아 만든 기둥
*단청(丹靑):벽이나 천장, 기둥 같은 곳에 여러 가지 빛깔로 그림과 무늬를 그림.
*풍경(風磬):절 등의 건물에서 처마 끝에 다는 작은 종

*둥주리 : 짚으로 두껍고 크게 엮은 둥우리.

*옥좌(玉座) : 임금이 앉는 자리. 또는 임금의 지위. 어좌(御座). 왕좌

*여의주(如意珠) : 용의 턱 아래에 있다는 구슬.(이 구슬을 얻으면 무엇이든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 함).

*봉황새 : 봉황(鳳凰). 상상의 상서로운 새로 임금을 상징함. 닭의 머리, 뱀의 목, 제비의 턱, 거북의 등, 물고기의 꼬리 모양을 함. 몸과 날개 빛은 오색이 찬란하며, 오음의 소리를 냄. 수컷을 ‘봉’, 암컷을 ‘황’이라 함.

*추석(甃石):벽돌 같이 다듬어진 돌.
*패옥(佩玉):금관(金冠) 조복(朝服)에 차던 옥.
*품석(品石):왕조 때, 대궐의 앞 뜰에 관직의 품(品), 즉 지위를 새겨서 세웠던, 돌로 만든 표.

*바이 : (주로 부정하는 말과 함께 쓰여) 다른 도리 없이 전연. 아주.

*구천(九泉) : 땅속 깊은 밑바닥이란 뜻으로, 죽은 뒤에 넋이 돌아간다는 곳. 황천.

*호곡(呼哭):소리 내어 슬피 욺.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퇴락한 왕궁을 소재로 하여 ‘봉황새’에 화자의 심리를 투영시키는 기법을 통해 망국의 설움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는 역사에 대한 화자의 비판 의식이 드러나 있는데, 국권 상실과 함께 몰락한 조선 왕조의 퇴락한 고궁을 보면서 망국(亡國)의 비애를 노래하고 있다. 국권 상실의 현실과 대조하다 보면 과거의 역사를 복고적(復古的)으로 미화하기 쉬운데, 이 시는 지나간 조선 왕조 시대의 역사를 냉정한 거리를 두고 성찰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화자는 이 시에서 퇴락한 고궁의 모습을 보면서 느끼는 망국(亡國)의 한(恨)을 산문적으로 다루고 있다. 화자의 정서를 봉황새에 이입시켜, 한시의 시상 전개 방식인 기승전결과 선경 후정(先景後情)으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는데, 첫째~둘째 문장은 퇴락한 고궁의 모습을 제시하고 있는데, ‘기둥, 단청, 추녀, 옥좌’의 퇴락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셋째~여섯째 문장은 퇴락한 고궁의 모습을 보고 비애감에 젖어 있는 화자의 내면 심리를 제시하고 있는데, 국권 상실의 비극적인 역사에 대한 슬픔을 ‘봉황새’에 투영시켜 표현하고 있다.

 

  첫째 문장에서는 ‘벌레 먹은 기둥’과 ‘빛 낡은 단청’, ‘풍경 소리 날아간 추녀 끝에 새들이 둥우리를 친’ 모습을 통해 무기력하게 망해 버린 왕조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둘째 문장에서는 큰 나라인 중국을 섬기다 왕조가 거미줄을 쳤다(패망)는 진술을 통해 중국을 섬기던 과거 우리나라의 사대주의에 대한 비판 의식을 담고 있다. 특히 이 시에서 ‘벌레’, ‘산새’, ‘비둘기’, ‘거미’ 등은 왕조를 몰락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대상들로, 화려한 고궁을 낡은 모습으로 황폐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소재들이다.

 

  그리고 셋째~다섯째 문장에서는 몰락한 왕궁에 서서 느끼는 화자의 정서를 심화하고 있다. 즉, 봉황이 울어 본 적이 없다는 표현을 통해 조선 왕조의 무기력함을 한탄하고, ‘추석을 밟고 가는 나의 그림자’, ‘패옥 소리도 없었다’, ‘’나의 몸 둘 곳은 바이 없었다‘ 등의 표현을 통해서, 이제는 나라의 주권마저 없는 현실 속에서 화자는 자신이 살아갈 위치를 상실하고 있음을 깨닫고 있다.

마지막 여섯째 문장 ‘눈물이 속된 줄을 모를 양이면 봉황새야 구천(九泉)에 호곡(呼哭)하리라’에서 화자는 망국의 현실에서 느끼는 자신의 슬픔을 봉황새에 감정을 이입시켜 표현하고 있다. 망국의 현실을 바라보는 시인의 비애감을 봉황새라는 간접적인 대상을 통해 드러냄으로써, 슬픔을 내면화하는 지사적인 품격을 엿보게 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시는 비록 퇴락한 고궁이지만 우리 고유의 고전적인 제재로 망국(亡國)의 비애를 노래한다는 점에서 전통적이요 우국적(憂國的)인 작품이다.

 

 

▲작자 조지훈(趙芝薰, 1920~1968)

 

  시인, 국문학자. 경상북도 영양 출생. 본명 동탁(東卓). 1939년 《문장》지를 통하여 <고풍 의상>, <승무>, <봉황수> 등으로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였다.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며. 동양의 회고적 정신을 바탕으로 전통에의 향수, 민족의 한(恨)을 고전적 운율로 노래하였다. 청록파의 한 사람인 박두진은 그를 가리켜 “투명한 감성, 밝은 지성, 예리한 감각과 윤택한 정서를 통하여 한국의 현대 시사에 하나의 불멸의 업적을 남겨놓았다”고 평가했다.

 

  박두진, 박목월과 공동 시집 《청록집》(1946)을 간행하였고, 시집으로 《풀잎 단장》(1952), 《역사 앞에서》(1959), 《여운》(1964) 등이 있다. 그밖에 수필집으로 《창에 기대어》(1958), 《시와 인생》(1959), 《돌의 미학》(1964), 《지조론》(1963), 평론집으로 《시의 원리》(1953), 《한국문화사 서설》(1964) 등이 있다.

 

 

►작성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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