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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사과 한 알 / 조인선

by 혜강(惠江) 2020. 9. 18.

 

사과 한 알

 

 

- 조인선

 

 

나는 탯줄이 가는 줄 알았다

송아지 탯줄처럼 저절로 끊어지는 줄 알았다

의사는 가만히 가위를 내밀고

나는 곱창처럼 주름진 굵은 탯줄을 잘라냈다

 

사과 꼭지를 잘라내는 일은 어렵지 않다

탯줄처럼 사과 꼭지는 이제 더 이상 쓸모가 없다

사과 한 알을 떨구면서 나무는 얼마나 아팠을까

배꼽 같은 꼭지가 키워낸 맑은 사과 한 알

 

몸과 몸이 이어진 줄 하나에 삶이 있었다

죽음은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이다

아내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다듬으며

고생했다고 하자 아내는 배트남 말로 엄마를 찾았다

 

 

- 시집 《노래》(2010) 수록

 

 

▲이해와 감상

 

  조인선의 2010년 작품인 <사과 한 알>은 그의 여섯 번째 시집인 《노래》에 실려 있다. 이 시는 아내의 출산을 목격하고 아이의 탯줄을 자른 경험을 사과를 수확하던 경험과 중첩시키면서 생명의 소중함과 엄숙함, 그리고 어머니의 위대함을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시는 일상적 소재를 활용하여 대상의 유사성에 착안해 연상 작용을 통해 모성과 생명 탄생이라는 추상적 의미를 끌어내고 있다. 총 3연으로 구성된 이 시는 '아내의 출산'이라는 사건과 일상적 소재인 '사과'를 통해 생명 탄생의 의미에 대해 고찰하고 있다. 1연에서 화자는 탯줄을 자르면서 새롭게 깨달은 마음을 경건하게 표현한다. 화자는 자기 아이의 탯줄을 자르게 된 경험을 소개하면서, 가늘 줄 알았던 탯줄이 ‘곱창처럼 주름진 굵은’ 것이었다는 것, 저절로 끊어지는 줄 알았던 탯줄을 가위로 잘아야 했던 경험을 평범하게 진술하고 있다. 하지만 그 평범한 진술 속에서는 새로운 생명을 대하는 화자의 생소함과 조심스러움이 스며 있다. ‘곱창처럼 주름진 굵은 탯줄’에는 생명을 완성시키는 존재의 무게감이 드러나 있다.

 

  2연에서는 사과를 수확하던 경험을 상기하면서 사과 한 알을 키우고 떨구면서 사과나무가 겪었을 아픔을 떠올린다. 화자가 보기에는 사과 꼭지는 사를 사과 무와 연결해 준 ‘배꼽 같은 꼭지’로 매우 의미가 있는 것이다. 사과 한 알은 사과나무가 배꼽 같은 꼭지를 통해 영양분을 공급하면서 애써 키워낸 자식 같은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각성 때문에 화자는 ‘사과 한 알을 떨구면서 나무는 얼마나 아팠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사과나무가 겪었을 출산의 고통에 대해 공감을 표시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사과 꼭지’는 탯줄을 연상시키는 소재이며, ‘맑은 사과 한 알’은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의미한다.

 

  마지막 3연에서 화자는 고귀한 사랑과 헌신의 탯줄과 사과 꼭지를 통해 어머니의 위대함에 대해 예찬하고 있다. 생명이란 ‘몸과 몸이 이어진 줄 하나에’ 있다는 점에서 위태로운 것이며, 그러므로 더욱 소중한 것이기도 하다. 또한, 화자는 ‘죽음은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이다’라고 한다. 생명의 탄생은 모체의 부분적인 죽음을 전제한다. 자신의 신체 일부였던 새 생명을 탯줄을 끊음으로써, 즉 자신의 몸 일부를 죽음의 영역으로 던져넣게 되면서 새 생명은 탄생한다. 자기 몸의 일부를 죽임으로써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도록 하는 어머니의 사랑은 위대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생명을 위해서 어머니는 죽음을 감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화자는 ‘죽음은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 마지막 선물’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마지막 구절에서는 엄마가 된 베트남의 아내가 엄마를 찾는 장면을 모국어로 소개하고 있는데, 모국어란 어머니의 언어로서 연어가 회귀하는 모천과 같은 것이다. 출산한 아내가 모국어로 ‘엄마’를 찾은 것은 결국 그러한 회귀의 과정을 경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아내는 아이를 낳고 나서, 진정한 엄마의 위대함을 각성한 것이다. 생명의 원천으로서의 어머니, 자신이 항상 보이지 않는 탯줄을 대고서 삶의 자양분을 얻고 있는 어머니를 새롭게 발견한 것이다.

 

  특히, '아내는 베트남 말로 엄마를 찾았다'에서 화자의 아내가 베트남 인임을 짐작하게 한다. 시인의 부인이 베트남인이라는 전기적 사실과 더불어, 다문화 사회라는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작자 조인선(1966~ )

 

  시인. 경기도 안성 출생. 첫 시집 《사랑살이》(덕우출판사, 1993)를 통해 문단에 나왔다. 오랫동안 안성에서 축산업을 하는 농민 시인으로 알려져 있는 조인선은 농촌 생활에서 겪는 사소한 일상을 통해 인간과 자연, 그리고 사회에 대한 각성과 깨달음을 시화하고 있다. 시집으로 《인간이 되기 싫었나 보다》(1993), 《사랑이란 아픔으로 남아도 미치도록 좋았던 추억이었다》(1994), 《별을 좋아하면 별이 된다고》(1995), 《황홀한 숲》(2002), 《노래》(2010) 등을 발간했다.

 

 

►작성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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