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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물구나무서기 / 정희성

by 혜강(惠江) 2020. 9. 15.

 

 

물구나무서기

 

 

- 정희성

 

 

뿌리가 뽑혀 하늘로 뻗었더라

낮말은 쥐가 듣고 밤말은 새가 들으니

입이 열이라서 할 말이 많구나

듣거라 세상에 원

한 달에 한 번은 꼭 조국을 위해

누이는 피 흘려 철야 작업을 하고

날만 새면 눈앞이 캄캄해서

쌍심지* 돋우고 공장문을 나섰더라

너무 배불러 음식을 보면 회가 먼저 동하니*

남이 입으로 먹는 것을 입으로 삼켰더라

대낮에 코를 버히니*

슬프면 웃고 기뻐 울었더라

얼굴이 없어 잠도 없고

빵만으론 살 수 없어 쌀을 훔쳤더라

물구나무서서 세상을 보고

멀리 고향 바라 울었더라

못 살고 떠나온 논바닥에

세상에 원

아버지는 한평생 허공에 매달려

수염만 허옇게 뿌리를 내렸더라

 

 

- 시집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 수록

 

 

◎시어 풀이

*쌍심지 : 한 등잔에 있는 두 개의 심지. 몹시 화가 나서 눈을 크게 뜨고 노려봄.

*회가 동하다 : 구미가 당기거나 욕심이 생기다.

*버히니 : ‘베니’의 옛말.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노동자와 농민으로 대표되는 민중들의 삶이 고통스럽게 지속되고 있는 사회 현실을 비판한 작품이다 ‘물구나무서기’는 대지에 박혀 있어야 할 뿌리가 거꾸로 물구나무서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이러한 모습을 통해 고된 노동을 하면서도 정당하게 대우받지 못하고 핍박받는 민중들의 현실을 노래하고 있다.

 

  ‘물구나무서기’라는 제목부터 이 시의 의미를 알 수 있다. 물이 거꾸로 흐를 수 없고 시계가 가선 안 되듯이, 사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나 부정부패와 같은 모순된 현상을 질타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의 화자는 노동자·농민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현실에 답답해하며 안타까워하며, 근대화의 명분을 내세워 노동을 착취하는 현대 산업 문명을 비판하고 있다.

 

  고된 노동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생활상의 여유조차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와 농민의 삶을 뿌리가 뽑혀 거꾸로 서 있는 상황으로 표현하고, 관용구를 비틀거나 속담을 패러디하여 현실을 고발하고, 구체적 현실을 반어적으로 뒤집어 진술함으로써 모순된 사회상을 냉소적으로 풍자하고 있다. 그리고 영탄적 표현의 반복을 통해 상황에 대한 화자의 정서를 강조하고 구어체 종결 어미를 사용하여 상황을 객관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이 시는 ‘누이’로 표상되는 공장 노동자의 삶을 그리고 있다. 1~3행에서는 노동자들의 뿌리 뽑힌 삶에 대해 고발하고 있다. 이 시는 ‘뿌리가 뽑혀 하늘로 뻗었더라’라고 시작한다. 이 문장은 모순된 현실을 반어적으로 표현한 반어법으로 것으로, ‘~더라’라는 구어체 종결 어미를 사용하여 상황을 객관적으로 달하고 있다. 이어 ‘낮말은 쥐가 듣고 밤말은 새가 들으니/ 입이 열이라도 할말이 없구나’라고 한다. 이것은 말과 관련된 속담을 의도적으로 변형하여 부정적 현실을 고발하는 것으로, 부정적 현실에 대해 할 말이 많음을 반어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어 4~16행에서는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고된 삶을 보여준다. 화자는 노동자들의 고된 삶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전에 ‘듣거라 세상에 원’이라는 명령형과 영탄적인 표현으로 부정적 현실에서 느끼는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강조한 뒤,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준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조국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철야 작업을 하고, 남이 배불리 먹을 때 회가 동해 눈물을 삼키고, 대낮에 코를 베가는 세상에서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욕구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고단한 삶을 반어저으로, 역설적으로 드러내 보인다. 그리고 ‘물구나무서서 세상을 보고/ 멀리 고향을 바라 울었더라’라고 묘사한다. 이것은 정상적으로는 살 수 없는 현실을 풍자하여, 고향을 그리워하는 서글픈 신세를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 17~20행에서는 피폐한 농촌 현실로 인한 농민들의 비참한 삶을 표현하고 있다. ‘못 살고 떠나온 논바닥에/ 세상에 원/ 아버지는 한평생 허공에 매달려/ 수염만 허옇게 내렸더라’라고 한다. 이것은 농민의 삶 역시, 삶의 터전인 논바닥에서 허공에 매달린 모습으로 불안한 삶을 사는 농민의 삶을 뿌리 뽑힌 상태임을 ‘세상에 원’이라는 말로 어처구니없는 세상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하늘이 아닌 땅으로 뿌리가 내려야 하는 것이 당연지사인 것을 ‘허공에 매달려 수염만 허옇게 뿌리를 내렸더라’라는 말로 끝맺고 있다. 아버지의 근심을 ‘허연 수염’이라는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것이 돋보인다.

 

  뿌리 뽑힌 노동자인 ‘누이’와 농부인 ‘아버지’의 모습을 통해 모순된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놀랍게 절제된 감정과 차분한 어조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더구나 그가 즐겨 사용하는 반어적 표현은 우리 시대 노동 현실과 핍박받으며 살아가는 민중의 슬픔을 비판하는 데 적절히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시작 태도는 정희성 시인만이 지닌 특색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정희성 시인의 시 세계를 잘 드러낸 작품으로서 민중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 작품으로 높이 평가될 수 있다.

 

 

▲작자 정희성(鄭喜成, 1945~)

 

 

  시인. 경남 창원 출생.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변신>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시인은 시대의 모순과 그로 인해서 핍박받는 도시 근로자들의 아픔과 슬픔을 주로 다루면서 절제된 언어와 차분한 어조로 독자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시집으로 《답청》(1974),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1991), 《시(詩)를 찾아서》(2001), 《돌아다보면 문득》(2008) 등을 펴낸 바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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