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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눈 덮인 산길에서 / 정희성

by 혜강(惠江) 2020. 9. 13.

 

 

 

눈 덮인 산길에서

 

 

- 정희성

 

 

 

눈이 내리네
바람 맞서 울고 섰는 나무들이
눈에 덮이네
그대와 걷던 산길
북한산 기슭의 그 외딴 숫막*
함께 앉던 그 자리에도
눈이 내려 쌓이네
한 해가 저물고 또 한 해가 와도
굳은 맹세 변함 없건만
괴로워라 지금 여기 없는 그대를 위해
나는 술잔을 채울 뿐
눈이 오는 날은
울고 싶어라
그러나 기약한 그날은 갑자기
눈처럼 오는 법이 없기에
빛나는 아침을 위해
나는 녹슨 칼날을 닦으리
눈보다 차갑고
눈보다 순결한 마음으로
깊이 깊이 사랑을 새겨두리

 

 

- 시집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 수록

 

 

시어 풀이

 

*숫막 : 주막의 옛말.

 

 

▲이해와 감상

 

이 시는 그대와의 추억이 깃든 북한산의 산길에 내리는 을 보며, ‘그대가 없음에 슬퍼하면서 그날을 맞이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태도를 반성하며 빛나는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다짐하고 있다.

 

시적 상황이 진행됨에 따라 화자의 정서나 태도가 변화하고 있는데 그러나를 중심으로 시상이 전환되고 있다. 현재형 시재를 사용하여 시적 상황을 생동감 있게 표현하고 있다.

 

1~7행에서는 북한산 기슭에 눈이 내리 쌓이는 모습을 시간의 경과를 따라 내리네’, ‘덮이네’, ‘쌓이네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서 그대를 연상하게 하는 매개물이며, 그대와 걷던 길과 그대와 함께했던 외딴 주막의 추억을 생각하며 눈이 내려 쌓일 때까지 오랜 시간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8~13행에서는 그대의 부재로 인해 슬퍼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대의 부재로 인하여 괴로워하는 화자는 한 해가 저물고 또 한 해가 와도/ 굳은 맹세 변함 없건만이라며, 세월의 가변성에 대비시키며 그대와의 굳은 맹세의 불변성을 드러낸다. 여기서 굳은 맹세는 밝은 미래를 위해 부조리한 현실을과 맞서 싸우겠다는 지난 날의 다짐으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면서 지금 여기 없는 그대를 위하여/ 나는 술잔을 채울 뿐/ 눈이 오는 날은/ 울고 싶어라라고 노래한다. 따라서 그대는 단순한 추억 속의 친구나 연인의 차원을 넘어서서 화자가 꿈꾸는 공동체를 위해 연대하는 대상으로, ‘그대의 부재로 인한 슬픔을 술잔으로 해소하고 있다.

 

그러나 14~20행에서 화자는 그러나라는 부사어로 심기일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대의 부재를 확인한 화자는 기약한 그날’, 즉 화자가 소망하는 밝은 미래는 눈처럼 오는 법이 없음을 알고, ‘빛나는 아침을 위해 나는 녹슨 칼날을 닦으리라고 다짐한다. 여기서 빛나는 아침은 화자가 소망을 이루는 날(민주화)일 것이며, ‘녹슨 칼날을 닦는 행위는 빛나는 아침그날은 그냥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인식 아래, ‘녹슨 칼날에 비유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마음을 갈고 닦겠다는 것이다. ‘눈보다 차갑고/ 눈보다 순결한 마음으로/ 깊이 깊이 사랑을 새겨 두리라는 마지막 부분은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시대와 대결함에 있어서 냉철하면서도 뜨거운 사랑으로 그 다짐을 가슴에 새기려는 화자의 내면 의식을 보여 주고 있다.

 

 

작자 정희성(鄭喜成, 1945~)

 

 

시인. 경남 창원 출생. 1970동아일보신춘문예에 <변신>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시인은 시대의 모순과 그로 인해서 핍박받는 도시 근로자들의 아픔과 슬픔을 주로 다루면서 절제된 언어와 차분한 어조로 독자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시집으로 답청(1974),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1991), ()를 찾아서(2001), 돌아다보면 문득(2008) 등을 펴낸 바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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