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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답청(踏靑) / 정희성

by 혜강(惠江) 2020. 9. 14.

 

 

답청(踏靑)

 

 

― 정희성

 

 

 

풀을 밟아라

들녘엔 매 맞은 풀

맞을수록 시퍼런

봄이 온다

봄이 와도 우리가 이룰 수 없어

봄은 스스로 풀밭을 이루었다

이 나라의 어두운 아희들아

풀을 밟아라

밟으면 밟을수록 푸른

풀을 밟아라

 

 

- 시집 《답청》(1974) 수록

 

 

▲이해와 감상

 

‘답청(踏靑)’은 음력 삼월 삼짇날이나 청명일에 산이나 계곡으로 나가 먹고 마시며 봄의 경치를 즐기는 풍속이다. 특히 삼월 삼짇날을 ‘보리밟기’ 등 전통 민속놀이를 하는 풍속이 있어 답청절(踏靑節)이라 하는데, 이날 풀이 더 잘 자라게 밟는 것처럼 우리도 희망적인 미래를 쟁취하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단련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화자는 ‘우리’로 힘겹게 살아가는 민중을 지켜보며 아직 봄이 오지 않았다는 인식 아래 희망적인 미래를 만들기 위해 단련할 것을 명령형 어미를 사용하여 화지의 의지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1~4행에서는 풀을 밟을수록 시퍼런 봄이 온다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풀’은 음력 삼월 삼짇날 풀을 더 푸르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밟는 풀이지만, 끈질긴 생명력을 지닌 민중을 상징한다. ‘매 맞는 풀’은 매 맞아 멍든 것처럼 푸르게 보이는 풀을 묘사한 것인데, 이 시가 쓰여질 무렵의 억압적인 정치 상황을 고려할 때 핍박받는 민중을 대변하는 것일 수 있다. 그리고 ‘맞을수록 시퍼런/ 봄이 온다’라는 것은 밟을수록 더 싱싱한 생명력을 갖게 됨을 드러내는 것으로, 여기서 ‘봄’은 소망하는 삶이 이루어진 세계이며, 민중이 주체가 되어 이끌어가는 희망적인 미래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민중이 탄압을 받을수록 더욱 건강한 세계가 도래할 것이라는 희망을 품고 있다.

 

5~6행에서는 ‘봄이 와도 우리가 이룰 수 없어/ 봄은 스스로 풀밭을 이루었다’라고 한다. 이것은 봄이 와도 풀발은 우리가 이룰 수 없고, 봄이 되어 봄의 힘으로 풀밭이 이루어졌다는 의미로, 마찬가지로 민중의 힘만으로는 민중이 주체가 되는 세상을 만들 수 없지만, 봄기운이 무르익으면 언젠가는 희망의 세상이 올 것이니 그때까지 강인한 생명력으로 단련해 나갈 필요가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므로 7~10행에서 화자는 ‘이 나라의 어두운 아희들’에게 ‘풀을 밟으라’라고 수미 상관과 반복법을 사용하여 당부한다. 여기서 ‘어두운 아이들’은 어두운 이 나라의 역사 현실 속에서 핍박을 받으며 고통스럽게 살아가는 젊은이들로서, 화자는 그들에게 풀을 밟으며 풀들의 끈질기고 강인한 생명력을 배우라는 것이다.

 

이 시는 어찌 보면, 젊은이들 선동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감정의 들뜸이나 허장성세와는 거리가 먼 깐깐하고 곧은 어조로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으려 한다. 이처럼 그의 시에서는 엄격함과 절제와 긴장의 언어가 돋보인다. 생활과 처신에 엄격한 선비의 눈으로 우리 시대의 잘못된 삶을 통찰하는 자세가 돋보인다. 이것은 기개와 지조를 본받으려는 시인 자신의 정신적 지향에서 비롯된 것이다.

 

 

▲작자 정희성(鄭喜成, 1945~)

 

시인. 경남 창원 출생.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변신>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시인은 시대의 모순과 그로 인해서 핍박받는 도시 근로자들의 아픔과 슬픔을 주로 다루면서 절제된 언어와 차분한 어조로 독자의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시집으로 《답청》(1974),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1991), 《시(詩)를 찾아서》(2001), 《돌아다보면 문득》(2008) 등을 펴낸 바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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