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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숲 / 정희성

by 혜강(惠江) 2020. 9. 12.

 

 

 

 

- 정희성

 

 

숲에 가보니 나무들은

제 가끔 서 있더군

제 가끔 서 있어도 나무들은

숲이었어

광화문 지하도를 지나며

숱한 사람들을 만나지만

왜 그들은 숲이 아닌가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

 

 

- 시집 《답청》(1974) 수록

 

 

◎시어 풀이

*제가끔 : 제각기.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나무들이 모여 숲을 이루듯 ‘그대’와 ‘나’도 숲을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 틈에서도 외로움을 느낀다. 이를 ‘군중 속의 고독’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이 시의 화자인 ‘나’도 숱한 사람들 틈에서 외로움을 느끼면서 인간 사회도 나무들이 모여 아름다운 숲을 이루듯 인간적 교감을 나누고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삶을 소망하고 있다.

 

   ‘숲’은 인간 사회와 대비되는 공간으로, 나무들이 모여 서로 교감을 나누는 공간이며, ‘우리’ 스스로 이루었으면 하는 바람이 실현된 공간으로 그려져 있다.

 

   이 시는 ‘숲’과 ‘광화문 지하도’를 대조적 공간으로 설정하고 자연과 인간을 대비하여 주제 의식을 이끌어 가고 있으며, 대화 형식을 통해 친근감을 확보하고 있으며, 반복적 표현을 통해 화자의 소망을 드러내고 있다.

 

   1~4행에서 화자는 숲에 있는 나무들이 제각기 개별적으로 서있는 독립적인 존재이만 ‘숲’이라는 조화로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음을 관찰하여 제시하고 있다.

 

   5~7행에서는 나무들의 모습과는 달리 인간들의 사회는 서로에 대해 무관심하고 의미 없는 관계만을 맺고 있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그대’와 ‘나’에게 묻는 물음의 형식을 통하여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문제를 제기하고, 우리 스스로가 숲을 이루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강조하고 자성을 촉구하고 있다.

 

   8~11행에서는 ‘이 메마른 땅을 외롭게 지나치며/ 낯선 그대와 만날 때/ 그대와 나는 왜/ 숲이 아닌가’라고 거듭 묻고 있다. 여기서 ‘메마른 땅’은 숲을 이루지 못하고 정서적으로 메마르고 각박한 현대 사회를 상징하는 것으로, ‘메마른 땅’에서 만나는 이들, 즉 정서적 교류가 없는 소외된 사람들을 ‘낯선 그대’로 나타내고, ‘나’와 ‘낯선 그대’와의 만남을 통해 현대 사회의 소외 문제가 화자 자신의 문제임을 깨닫고 반성하게 된다.

 

  이처럼 이 시는 조화로운 공동체를 이루지 못하고 소외와 고독을 느끼는 현대 사회의 문제를 제기하면서 공동체적 삶의 가치와 그런 삶에 대한 소망을 드러내고 있다. 이와 같이 공동체적 삶의 가치를 중시하는 태도를 드러낸 주요 작가와 작품으로는 신경림의 <농무>, <목계 장터>, 정희성의 <저문 강에 삽을 씻고>, 정호승의 <슬픔이 기쁨에게>, 안도현의 <우리가 눈발이라면>,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 등이 있다.

 

 

▲작자 정희성(鄭喜成, 1945~)

 

 

   시인. 경남 창원 출생. 197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변신>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주로 도시 근로자의 지친 삶과 무거운 비애를 절제된 감정과 차분한 어조로 노래하였다. 시집으로 《답청》(1974), 《저문 강에 삽을 씻고》(1978), 《한 그리움이 다른 그리움에게》(1991), 《詩를 찾아서》(2001) 《돌아다보면 문득》(2008)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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