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연북정(戀北亭) / 정호승

by 혜강(惠江) 2020. 9. 10.

 

 

 

 

연북정(戀北亭)

 

 

- 정호승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다 여기로 오라
내 책상다리를 하고 꼿꼿이 허리를 펴고 앉아
가끔은 소맷자락 긴 손을 이마에 대고
하마 그대 오시는가 북녘 하늘 바다만 바라보나니

오늘은 새벽부터 야윈 통통배 한 척 지나가노라
새벽 별 한두 점 떨어지면서 슬쩍슬쩍 내 어깨를 치고 가노라
오늘도 저 멀리 큰 섬이 가려 있어 안타까우나
기다리면 임께서 부르신다기에
기다리면 임께서 바다 위로 걸어오신다기에

연북정 지붕 끝에 고요히 앉은
아침 이슬이 되어 그대를 기다리나니
그대의 사랑도 일생에 한 번쯤은 아침 이슬처럼
아름다운 순간을 갖게 되기를
기다림 없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 《시와 시학》(1997)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제주도의 연북정(戀北亭)이라는 정자를 본 시인이 이를 소재로 임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의 자세를 표현한 시이다. 연북정은 제주도에 있는 정자로 유배되어 온 사람들이 제주의 관문인 이곳에서 한양의 기쁜 소식을 기다리면서 북녘의 임금에 대한 사모의 충정을 보낸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 한다. 화자는 밤이 새도록 임을 기다리며 연북정에 앉아 임을 향한 그리움과 변함없는 사랑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비유법, 반복법, 과장법, 설의법 등 다양한 표현 방법을 사용하여 기다림 역시 사랑의 일부임을 드러내고 있으며, ‘나니’, ‘~노라’ 등 특정 종결 어미의 사용을 통해 고풍스러운 느낌을 살리고 있다.

 

  1~6행에서는 화자는 ‘기다림에 지친 사람들은’ 모두 연북정으로 오라며, 새벽부터 연북정에 앉아 임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여준다. ‘책상다리를 하고 꼿꼿이 허리를 펴고 앉아’나 ‘소맷자락 긴 손을 이마에 대고’ 등은 임을 기다리는 화자의 모습을ㄹ 시각적으로 나타낸 것이며, ‘행여 그대 오시는가’ 새벽부터 아침이 될 때까지 북녘 하늘을 바라보지만, 통통배 한 척 지나갈 뿐이어서 허전함을 느끼고 있다.

 

  7~11행에서 화자는 아침이 되도록 연북정에 앉아 ‘기다리면 임께서 부르신다’라는 약속과 ‘기다리면 임께서 바다 위로 걸어 오신다’라는 약속을 믿고 간절한 마음으로 임을 기다린다. ‘아침 이슬이 되어’는 시간이 새벽에서 아침으로 변한 것을 의미하는 동시에 임을 향한 일편단심의 간절한 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리고 12~14행에서 화자는 ‘기다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느냐’라며, 간절한 기다림의 순간을 ‘가장 아름다운 순간’으로 여긴다. 즉, 이 시의 화자는 기다림은 사랑의 한 부분이며, 영롱하게 빛나는 사랑의 아름다운 순간을 갖게 되기까지 거쳐야 하는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이 시는 기다림으로 인해 ‘그대’와의 사랑이 더욱 아름다울 수 있다는 깨달음을 전하고 있다.

 

 

▲작자 정호승(鄭浩承,1950~)

 

 

  시인. 경남 하동 출생.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첨성대>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반시(反詩)》 동인으로 활동했다. 사회적 소외계층의 어려운 삶에 관한 관심을 토대로 해서 비극적인 세계 인식과 유한한 존재로서의 고독한 인간의 외로움과 슬픔을 정제된 언어로 노래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1979), 《서울의 예수》(1982), 《새벽 편지》(1987), 《별들은 따뜻하다》(1990), 《흔들리지 않는 갈대》(1991),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1997), 《외로우니까 사람이다》(1998), 《위안》(2003), 《내가 사랑하는 사람》(2004), 《포옹》(2007), 《수선화에게》(2015),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2017)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시인)

 

 

'문학관련 > - 읽고 싶은 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지의 꽃 / 정희성  (0) 2020.09.12
이별 노래 / 정호승  (0) 2020.09.10
수선화에게 / 정호승  (0) 2020.09.09
달팽이 / 정호승  (0) 2020.09.08
풍경 달다 / 정호승  (0) 2020.09.08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