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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수선화에게 / 정호승

by 혜강(惠江) 2020. 9. 9.

 

 

 

 

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라고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 《외로우니까 사람이다》(1998)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물가에 홀로 핀 수선화를 보며 느낀 외로움의 정서를 모든 인간을 상징하는 수선화에게 이야기하는 형식으로 담아낸 시이다. 화자는 직접 드러나지 않으나 외로움에 대해 성찰하면서 세상의 모든 존재는 외로움을 느낀다고 보고 있으며, 외로움을 느끼는 이들에게 연민을 느끼면서 외로움은 누구에게나 있기에 담담하게 받아들이라고 위로하고 있다.

 

  이 시에 나오는 ‘수선화’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미청년(美靑年) ‘나르시스’가 물에 비친 자기 모습의 아름다움에 홀려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결국 물에 빠져 죽어서 수선화로 피어났다는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어, 응답 없는 사랑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인간 존재의 숙명으로까지 확대하고 있는 가슴 아픈 작품이다. 이 시에서 시적 화자는 외로움이라는 것은 근원적으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숙명적인 것으로 그것은 슬픔이 아니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인간’을 상징하는 ‘수선화’를 청자로 하여 대상에게 말을 거는 방식으로 주제를 드러내고 있으며, 담담한 어조와 명령법을 사용하여 대상을 타이르듯이 이야기하고 있다. 또 반복법과 대구법을 사용하여 의미를 강조하고 어미를 반복 사용하여 운율을 형성하고 있다.

 

  1~3행에서 화자는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견디는 이리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수선화’를 인격화하여 말을 건네는 방식을 사용하여 외로움은 인간의 본질이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시적 명령형으로 강조한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라는 말은 외로움은 인간의 숙임으로 안내하며 수용할 수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이어서 화자는 ‘공연히 오지 않는 전회를 기다리지 말라’라며, 타인과의 소통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외로움을 받아들이는 적극적인 태도를 지녀야 함을 드러낸다.

 

  또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라고 한다. 여기서 ‘눈’과 ‘비’는 살아가면서 겪는 시련일 터이고, 그런 시련이 온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견디며 담담하게 살아가라는 것을 반복법과 대구법, 명령법을 사용하여 강조한 것이다.

 

  그러면서 화자는 갈대숲에서 외롭게 살아가는 ‘도요새’도 너(수선화)를 보고 있다며, 이 외로움은 사람으로부터 시작하여 세상의 모든 존재 ‘하느님, 새들, 너(수선화), 산 그림자, 종소리)로 확장되어 이들 모두 한결같이 외로움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음을 열거법과 반복법과 대구법을 사용하여 드러내고 있다. 이것은 절대자를 포함하여 세상의 모든 존재가 외로움을 느낀다는 표현을 통해 인간이 지니는 근원적 고독은 극복해야 할 정서가 아니라 보편적 정서이므로, 이를 삶의 한 부분으로 수용하고 담담히 견디며 살아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특히 이 시는 명령형 어미와 ‘다’와 ‘~다’라는 단정적 어미를 사용하여 운율감을 형성하고 화자가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를 분명하게 전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작자 정호승(鄭浩承, 1950~)

 

 

  시인. 경남 하동 출생.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첨성대>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반시(反詩)》 동인으로 활동했다. 사회적 소외계층의 어려운 삶에 관한 관심을 토대로 해서 비극적인 세계 인식과 유한한 존재로서의 고독한 인간의 외로움과 슬픔을 정제된 언어로 노래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1979), 《서울의 예수》(1982), 《새벽 편지》(1987), 《별들은 따뜻하다》(1990), 《흔들리지 않는 갈대》(1991),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1997), 《외로우니까 사람이다》(1998), 《위안》(2003), 《내가 사랑하는 사람》(2004), 《포옹》(2007), 《수선화에게》(2015),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2017)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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