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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풍경 달다 / 정호승

by 혜강(惠江) 2020. 9. 8.

 

 

풍경 달다

 

- 정호승

 

운주사* 와불*님

뵙고 돌아오는 길에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

먼 데서 바람 불어와

풍경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

   - 시집 《외로우니까 사람이다》(1988) 수록

 

◎시어 풀이

*운주사 : 전남 화순군 도암면에 있는 사찰. 많은 석불과 석탑이 있으며, 석조불감·9층석탑·원형다층석탑·와불(臥佛) 등이 대표적이다./  *와불(臥佛) : 누워 있는 부처. / *풍경(風磬) : 처마 끝에 매달아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어 소리가 나게 한 경쇠.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운주사의 와불을 보고 오면서,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 풍경을 다는 행위를 통해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 임에 대한 사랑을 전하고 싶은 마음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짧고 간단한 시이지만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보고 싶은 마음을 ‘풍경소리’라는 청각적 이미지에 담아 전하고 있다. 시인은 ‘운주사 와불’을 보고 오는 길에 ‘그대 가슴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라고 한다. 우선 ‘운주사 와불’은 세계에서 유일한 부부 와불로 유명하다. 이 부부 와불은 길이 12m, 넓이 10m의 누워있는 바위에 조각했는데 남녀가 나란히 누워있는 모습이다. 시인은 그 모습을 분명히 보고 나왔을 터. 시인은 그 모습을 눈에 담고 나오는 길에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고 ‘그대 가슴의 처마 끝에/ 풍경을 달고 돌아왔다’라고 진술한다. 여기서 ‘그대 가슴의 처마 끝’은 풍경을 달아둔 곳이 그대의 마음속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시인은 ‘먼 데서 바람이 불어와/ 풍경 소리 들리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찾아간 줄 알아라’라고 한다. 여기서 먼 데서 불어오는 ‘바람’은 화자가 ‘그대’를 사랑하는 마음일 터이고, ‘풍경 소리’는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어 하는 화자의 마음을 ‘풍경 소리’라는 청각적 이미지를 통해 구체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다. 가슴속의 풍경이 흔들릴 때면 자신이 찾아간 줄 알라는 이 기발한 발상, 시인이 빚어내는 이 오묘한 발상이 이 시의 묘미(妙味)인 것이다.

  이 시에서 화자는 바람에 풍경이 흔들려 소리 나는 것을 보면서, 그대를 보고 싶어 하는 화자의 마음이 바람이 되어 그대의 가슴에 풍경 소리와 같은 울림을 전달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불교적 소재를 통해 고요하고 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하고, 임에 대한 그리움을 담담한 어조로 드러내면서, 비유법을 활용하여 그리움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자 정호승(鄭浩承, 1950~)

  시인. 경남 하동 출생.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첨성대>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반시(反詩)》 동인으로 활동했다. 사회적 소외계층의 어려운 삶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해서 비극적인 세계 인식과 유한한 존재로서의 고독한 인간의 외로움과 슬픔을 정제된 언어로 노래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1979), 《서울의 예수》(1982), 《새벽편지》(1987), 《별들은 따뜻하다》(1990), 《흔들리지 않는 갈대》(1991),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1997), 《외로우니까 사람이다》(1998), 《위안》(2003), 《내가 사랑하는 사람》(2004), 《포옹》(2007), 《수선화에게》(2015),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2017)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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