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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봄길 / 정호승

by 혜강(惠江) 2020. 9. 7.

 

 

봄 길

         

    - 정호승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에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 시집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1997)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절망적인 현실에서도 시련을 극복하고 스스로 사랑을 개척하는 삶의 태도를 형상화하고 있는 작품이다. 화자는 사랑과 희망의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통해 희망을 잃지 않는 의지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슷한 문장 구조를 반복하여 의미를 강조하면서 시에 운율을 형성하고 있으며, 특히, ‘~이 있다’라는 단정적 어조의 반복을 통해 절망을 극복할 수 있음을 강하게 제시하고 있다. 또 역설적 표현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강조하고 있으며, 명령형을 사용하여 의지를 강조하여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제목 그대로 ‘봄 길’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있다. 이 시에서 ‘봄 길’은 ‘희망의 길, 사랑의 길’이다. 우선 화자는 1~2행에서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라고 말한다. ‘길이 끝나는 곳’은 분명 절망적인 상황일 텐데, 그곳에 ‘길이 있다’라는 역설적인 표현은 어떤 절망적인 현실이라도 극복할 수 있음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어서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에서 ‘길이 되는 사람’은 절망적 현실을 극복하려는 존재를 가리킨다. 그리고 ‘스스로 봄 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은 자기희생의 의지로 끝없이 절망적 현실을 극복하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 길은 만만치 않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진다.’ 여기서 ‘강물, 새들, 꽃잎’은 희망의 세계에서 자유로워야 할 존재들인데, 모든 것이 정지되고 암담한 절망의 상태이다.

  하지만 화자는 ‘보라’라는 명령형을 사용하여 화자의 단호한 의지를 강조한다.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라고 말한다. 여기서 ‘사랑’은 앞의 ‘봄 길’이 확장된 것으로서, 시련과 고통을 극복한 후에 더욱더 견고해진 ‘사랑’이 되었음을 드러내 주는 것이다.

  그러므로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의 의미는 ‘길이 끝난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요,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며, 또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 길을 걸어가는 사람’이다. 이들은 모두 ‘절망적 상황을 극복하고 사랑과 희망을 전해주는 존재’이며, 다른 사람이 걸어갈 길을 만들기 위해 기꺼이 희생하는 사람‘인 것이다.

  따라서, 이 시에서 화자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삶의 태도는 남을 위해 봉사하고 희생하는 것이며,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며,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태도인 것이다.

 

▲작자 정호승(鄭浩承, 1950 ~ )

  시인. 경남 하동 출생.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첨성대>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반시(反詩)》 동인으로 활동했다. 사회적 소외계층의 어려운 삶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해서 비극적인 세계 인식과 유한한 존재로서의 고독한 인간의 외로움과 슬픔을 정제된 언어로 노래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1979), 《서울의 예수》(1982), 《새벽편지》(1987), 《별들은 따뜻하다》(1990), 《흔들리지 않는 갈대》(1991),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1997), 《외로우니까 사람이다》(1998), 《내가 사랑하는 사람》(2004), 《포옹》(2007), 《수선화에게》(2015),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2017)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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