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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우리가 어느 별에서 / 정호승

by 혜강(惠江) 2020. 9. 7.

 

 

 

우리가 어느 별에서

 

 

- 정호승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

 

해 뜨기 전에
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
저문 바닷가에 홀로
사랑의 모닥불을 피우는 그대를 위하여

 

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
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느냐
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
마음의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

 

 

- 시집 《서울의 예수》(1982)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별을 제재로 하여 사람들 사이의 사랑을 회복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노래하고 있다. 화자는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을 연민하고 있으며, ‘그대’에 대한 사랑을 실현하고자 한다.

 

  다양하게 변주되는 ‘별’의 이미지를 따라서 시상이 전개되고 있으며, ‘마음의 칼날’과 같은 비유를 통해 시적 의미를 강화하고, ‘~느냐’라는 설의적 표현의 반복을 통하여 독자의 생각을 환기하여 나타내고자 하는 바를 강조하고 있다.

 

  1연에서 ‘우리가 어느 별에서 만났기에/ 이토록 서로 그리워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그리워하였기에/ 이토록 서로 사랑하고 있느냐’라고 한다. 여기서 ‘우리’는 ‘나’와 ‘그대’를 의미하며, ‘별’은 내가 그대와 만나 인연을 맺었던 공간이다. 그러기에 ‘나’는 ‘그대’와 만난 적이 있기에 그리워하고, 그리워하고 있기에 서로 사랑하고 있다. ‘이토록’의 반복 사용으로 그리움과 사랑의 감정이 극에 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2연에 오면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이/ 등불을 들고 거리에 나가/ 풀은 시들고 꽃은 지는데’라고 노래하여, 그토록 그리워하고 사랑했던 ‘그대’의 부재와 결핍으로 힘겨워하는 상황을 드러낸다. ‘사랑이 가난한 사람들’은 사랑이 결핍된 채 살아가는 사람들로서 이들은 ‘꽃은 시들고 꽃이 지는’ 거리로 사랑을 찾아 ‘등불을 들고’ 나선다.

 

  3연에서는 ‘우리가 어느 별에서 헤어졌기에/ 이토록 서로 별빛마다 빛나느냐/ 우리가 어느 별에서 잠들었기에/ 이토록 새벽을 흔들어 깨우느냐’라고 한다. 여기서 ‘헤어졌기에’ ‘빛나느냐’는 것은 ‘나’와 ‘그대’는 서로 헤어져 어두운 하늘의 ‘별빛’으로 서로 반짝이며 그리워하는 것이다. 이 때 빛나는 ‘별’은 ‘그대’와 ‘나’가 만나 인연을 맺었던 공간에서, ‘그대’와 ‘나’의 개별적 공간으로 변주한다. 그래서 각자의 별에서 새벽을 흔들어 깨우고 있다. ‘이토록 새벽을 깨워 흔드느냐’에서 ‘새벽’은 고통스런 밤을 지나 찾아온 희망의 시간으로, ‘그대’와 ‘나’는 서로 헤어져 지내며 희망을 드러내고 있다.

 

  그래서 4연에서 ‘나’는 힘겨운 현실에서 애쓰는 ‘그대를 위하여’ 무엇인가를 준비하고자 한다. ‘해 뜨기 전에/ 가장 추워하는 그대를 위하여’에서 ‘해 뜨기 전’은 어둠의 고통이 가장 심한 때이며, ‘저문 바닷가에 홀로’는 고통스러운 현실에 처해 있는 외로운 모습이다. 그런데도 ‘그대’는 ‘사랑의 모닥불’을 피우고 있다. 여기서 ‘사랑의 모닥불’을 피우는 행위는 고귀한 사랑을 실현하기 위한 노력일 것이다. 나는 ‘사랑의 온기’를 지키려는 ‘그대’의 수고를 알기에 ‘나’는 ‘그대’에게 무한한 연민과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래서 5연에서는 ‘나는 오늘밤 어느 별에서/ 떠나기 위하여 머물고 있느냐/ 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 마음의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라고 노래하며, ‘그대’가 있는 곳으로 떠나려고 한다. 즉, 나는 오늘 밤 ‘나’의 공간인 ‘별’에서 ‘그대’를 만나 사랑을 실현하기 위하여 ‘그대’의 공간인 ‘어느 별의 새벽길’을 걷기 위하여 떠날 준비를 한다. ‘마음의 칼날 아래 떨고 있느냐’라는 것은 참다운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마음의 자세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것은 ‘저문 바닷가에서 홀로’ 사랑의 온기를 간직하고 있는 ‘그대’와의 만남을 위해 세상과 맞설 수 있는 ‘칼날’과 같은 용기를 마음속에 준비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 얼마나 숭고한 사랑의 자세인가?

 

  이 시는 사람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을 아무렇게나 생각하는 우리에게 큰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다. 그렇다고 근엄한 자세로 교훈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아름답고 진지한 자세로, 삭막해지는 세상에서 쉽게 만나 쉽게 헤어지는 우리에게 만남의 중요성, 관계의 중요성, 사랑의 본질을 일깨운다. 아름다운 시어와 서정으로 빚어내는 정호승 시인의 사랑법이 여실히 드러나는 수작(秀作)이다.

 

 

▲작자 정호승(鄭浩承, 1950~)

 

 

  시인. 경남 하동 출생.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첨성대>가, 1982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반시(反詩)》 동인으로 활동했다. 사회적 소외계층의 어려운 삶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해서 비극적인 세계 인식과 유한한 존재로서의 고독한 인간의 외로움과 슬픔을 정제된 언어로 노래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1979), 《서울의 예수》(1982), 《새벽편지》(1987), 《별들은 따뜻하다》(1990), 《흔들리지 않는 갈대》(1991),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1997), 《외로우니까 사람이다》(1998), 《위안》(2003), 《내가 사랑하는 사람》(2004), 《포옹》(2007), 《수선화에게》(2015),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2017)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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