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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맹인 부부 가수 / 정호승

by 혜강(惠江) 2020. 9. 6.

 

 

 

 

맹인 부부 가수

 

 

- 정호승

 

 

 

눈 내려 어두워서 길을 잃었네

갈 길은 멀고 길을 잃었네

눈사람도 없는 겨울밤 이 거리를

찾아오는 사람 없어 노래 부르니

눈 맞으며 세상 밖을 돌아가는 사람들뿐

등에 업은 아기의 울음소리를 달래며

갈 길은 먼데 함박눈은 내리는데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기 위하여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을 용서하기 위하여

눈사람을 기다리며 노랠 부르네

세상 모든 기다림의 노랠 부르네

눈 맞으며 어둠 속을 떨며 가는 사람들을

노래가 길이 되어 앞질러 가고

돌아올 길 없는 눈길 앞질러 가고

아름다움이 이 세상을 건질 때까지

절망에서 즐거움이 찾아올 때까지

함박눈은 내리는데 갈 길은 먼데

무관심을 사랑하는 노랠 부르며

눈사람을 기다리며 노랠 부르며

이 겨울 밤거리의 눈사람이 되었네

봄이 와도 녹지 않을 눈사람이 되었네

 

 

 - 시집 《서울의 예수》(1995)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힘들게 살아가는 서민들의 고통과 눈물이 희망적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그린 따뜻한 작품으로, 아름다운 세상에 대한 간절한 기다림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화자는 추운 가을날 길거리에서 희망의 노래를 부르는 맹인 가수 부부에 대한 연민의 정을 드러내고 있으며, 긍정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관념적인 시어인 희망을 구체적 사물인 눈사람을 통해 표현하는 이 시는 종결어미를 반복하여 운율감을 형성하고, 같은 시구의 반복으로 애상적 정서와 기다림의 정서를 강조하고 역설적인 표현을 사용하여 삶의 자세를 드러내고, 대립적 이미지를 지닌 시어나 시구를 사용하여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또한 시각, 청각, 촉각적 이미지를 사용하여 겨울 밤거리의 모습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1~2행에서는 눈 내리는 밤, 길을 잃은 맹인 부부 가수의 처지를 길을 잃었네라는 말을 반복하여 절망적인 현실 상황으로 제시하고 있다. 3~11행에서는 군중을 향해 사랑과 용서의 노래를 부르는 맹인 부부 가수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맹인 부부 가수는 거리에서 군중들을 향해 노래를 부르고 있지만, 사람들은 이 부부에게 아무런 관심을 가지지 않고, 눈을 맞으며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데 눈은 이들의 머리 위로 자꾸 쌓여만 간다. ‘등에 업은 아기의 울음소리를 달래며/ 갈 길은 먼데 함박눈은 내리는데라는 표현은 맹인 부부 가수를 힘들게 하는 상황으로 맹인 부부 가수의 현실적 어려움(절망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맹인 부부 가수는 이런 상황에서 사랑과 용서의 노래를 부른다. ‘사랑할 수 없는 것을 사랑하기 위하여/ 용서 받을 수 없는 것을 용서하기 위하여라는 역설적인 표현은 세상의 모든 슬픔과 절망, 고통을 포용하면서 희망을 기다리는 희생의 이미지, 즉 순교자의 모습으로 연결된다. 그래서 희망을 상징하는 눈사람을 기다리며 세상 모든 기다림의 노랠 부른다. 화자는 그 기다림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이 결국은 화해용서’, ‘사랑임을 알기 때문이다.

 

  12~16행에서는 절망적인 상황에서 맹인 가수 부부는 희망을 기다리며 노래한다. 암울한 현실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노래에 담긴 희망이 길을 열어 아름다움이 세상을 건지고, 절망의 상황에서 희망과 기쁨을 누리게 될 때까지 희망의 노래를 부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17~21행에서는 희망의 노래를 부르며 눈사람이 된 맹인 가수 부부를 노래하고 있다. 비록 희망의 세상을 기다리기까지는 갈 길이 멀고 절망적이고 무관심한 상황이 계속될지라도 아름다움과 즐거움으로 바꾸는 노래를 부르며 이 겨울 밤거리의 눈사람이 되고, ‘봄이 와도 녹지 않을 눈사람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은 화자가 맹인 부부 가수에게 동정과 연민의 시선만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서 희망을 보고 긍정적 에너지를 부여한다. 앞을 보지 못하기에, 그래서 역설적으로 깊은 내면을 볼 수 있는, 맹인 부부 가수가 부르는 노랫소리는 눈발을 뚫고 결국 '눈사람'이 된다. 즉 맹인 부부가 봄이 와도 녹지 앓을 눈사람이 되는 것은 이 시의 화자가 맹인 부부의 모습에서 이 세상의 고통과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시인은 이 작품에서 기다림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이 화해용서’, ‘사랑임을 노래한다. 눈 오는 추운 밤에 앞 못 보는, 그래서 내면 깊이까지 볼 수 있는 맹인 부부 가수가 부르는 노랫소리는 눈발을 뚫고 길이 되어 앞질러가 결국 봄이 와도 녹지 않을 눈사람이 되는데, 이러한 비극적 아이러니의 과정을 통해 정호승 시인은 우리 시대의 슬픔과 그 슬픔이 기다림의 행위를 통해 자신을 완성하는 궁극적 희망의 원리를 제시하는 것이다.

 

 

▲작자 정호승(鄭浩承, 1950~)

 

 

  시인. 경남 하동 출생. 1973대한일보신춘문예에 <첨성대>, 1982조선일보신춘문예에 단편소설 <위령제>가 당선돼 작품활동을 시작했으며 반시(反詩)동인으로 활동했다. 사회적 소외계층의 어려운 삶에 대한 관심을 토대로 해서 비극적인 세계 인식과 유한한 존재로서의 고독한 인간의 외로움과 슬픔을 정제된 언어로 노래한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1979), 서울의 예수(1982), 새벽편지(1987), 별들은 따뜻하다(1990), 흔들리지 않는 갈대(1991), 사랑하다가 죽어버려라(1997), 외로우니까 사람이다(1998), 내가 사랑하는 사람(2004), 포옹(2007), 수선화에게(2015),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2017) 등이 있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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