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또 기다리는 편지 / 정호승

by 혜강(惠江) 2020. 9. 5.

 

 

 

 

또 기다리는 편지

 

 

- 정호승

 

 

지는 저녁해를 바라보며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

날 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 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 시집 《서울의 예수》(1982)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사랑하는 임을 기다리는 심정을 서정적 어조로 표현하여 사랑이라는 감정의 본질을 형상화하고 있다. 사랑하는 임을 기다리는 것은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다. 세상은 어둠에 잠들고 새벽달만 떠 있는 빈 길에서 오지 그대만을 그리워하는 마음, 화자는 그 간절한 기다림의 대상인, 사랑하는 '그대'에 대한 그리움과 기다림을 형상화하고 있다.

 

  경어체를 사용하여 그리움의 감정을 여성적 어조로 담담하게 표현하면서도 화자의 심정을 절실하게 드러내고 분위기를 차분하고 경건하게 만들고 있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정서가 심화되고 있다. 또 감각적인 시어를 사용하여 ㅘ자의 정서를 효과적으로 드러내고, 반어법을 사용하여 임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이루어질 것을 드러내고 있다.

 

  1~2행에서 시적 화자는 ‘오늘’에 보조사 '도'를 붙여 예전부터 쭉 늘 그래왔던 것처럼 오늘도 어김없이 ‘저녁 해’를 바라보며 ‘그대’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고 있다. 적 정황으로 보아 사랑하는 '그대'가 부재(不在) 중인 상태임을 알 수 있다.

 

  3~6행은 '저녁─밤─새벽'으로 이어지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대’의 부재로 인해 외로움의 정서가 고조되고 있다. 먼저 ‘날 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 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에서 ‘별’은 희망의 이미지를 지닌 상관물로서 화자가 그리워하는 ‘그대’를 의미하며, ‘빈 길’은 ‘그대’의 부재로 외로움과 단절감을 느끼는 화자의 심정을 드러내는 공간이다. 이어 ‘그대’가 없는 외로운 공간에 ‘새벽달’ 뜨면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 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라고 한다. 여기서 ‘사랑과 어둠의 바닷가’는 사랑과 절망감이 공존하는 공간이며, ‘저무는 섬’은 화자의 쓸쓸함을 드러내는 개관적 상관물로서 ㅘ자의 오로움의 정서는 더 깊어만 간다.

 

  7~11행에 오면, 화자의 정서가 변화를 보인다.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 기슭에 앉아/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행복하였습니다.’라고 노래한다. 이것은 ‘그대’의 부재로 인한 화자의 외로움의 정서는 이 부분에서 ‘그대’를 기다리는 것 자체가 행복이라는 정서로 바뀌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태도는 사랑하는 '그대'를 기다리는 아픔조차 행복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는 의지인 것이다. 즉, 사랑의 기쁨과 아픔을 아울러 모두 행복으로 받아들이는, 사랑에 대한 내적 성숙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마지막 두 행 ‘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라는 것은 표면상으로 기다림의 행복감을 의미하지만, 의미상으로는 ‘그대’에 대한 커다란 사랑과 애절한 기다림을 반어적으로 표현하여 임에 대한 그리움과 사랑을 간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결국, 이 시는 그리움의 정서를 담담하게 표현하면서도 기다림을 통해 성숙하는 사랑을 통하여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재회(再會)의 소망을 노래하는 작품이다.

 

 

▲작자 정호승(鄭浩承, 1950 ~ )

 

 

  시인. 경남 하동 출생. 1973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첨성대>가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정치적 · 경제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애정을 슬프고도 따뜻한 시어들로 그려 냈다. 시집으로 《슬픔이 기쁨에게》(1979), 《서울의 예수》(1982), 《새벽편지》(1987), 《별들은 따뜻하다》(1990), 《흔들리지 않는 갈대》(1991), 《외로우니까 사람이다》(1998), 《내가 사랑하는 사람》(2004), 《포옹》(2007), 《수선화에게》(2015),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2017) 등이 있다.

 

 

 

►작성 : 남상학 (시인)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