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추억
- '감자 먹는 사람들' 빈센트 반 고흐
- 정진규
식구들은 둘러앉아
삶은 감자를 말없이 먹었다
신발의 진흙도 털지 않은 채
흐린 불빛 속에서
늘 저녁을 그렇게 때웠다
저녁 식탁이
누구의 손 하나가 잘못 놓여도
삐걱거렸다
다만 세째형만이
언제고 떠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고된 나날이었다
잠만은 편하게 잤다
잘 삶아진 굵은 감자알들처럼
마디 굵은 우리 식구들의 손처럼
서걱서걱 흙을 파고 나가는
삽질소리들을 꿈 속에서도 들었다
누구나 삽질을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타고난 사람들이었다
맛있는 잠! 잠에는
막힘이 없었다
새벽에는
빗줄기가 조금 창문을 두드렸다
제일 부드러웠다
새싹들이 돋고 있으리라 믿었다
오늘은 하루쯤 쉬어도 되리라
식구들은
목욕탕엘 가고 싶었다
- 《시집 반 고흐》(1987) 수록
*때웠다 : ‘간단한 음식으로 끼니를 대신했다.’는 뜻으로 가난한 생활을 의미함
*감자 먹는 사람들 : 빈센트 반 고흐의 전기 작품(1884). 반 고흐의 첫 번째 걸작으로 노동하는 사람들의 정직한 삶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
2연에서는 고단한 노동으로 길들여진 가족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굵은 감자알들’처럼 마디가 굵어진 식구들의 손은 노동으로 길들여져 거칠지만 건강한 모습을 형상화하고 있다. 특히 흙을 파나가는 삽질 소리를 ‘꿈속에서도 들었다’라고 하거나 ‘우리는 타고난 사람들이었다’고 하는 진술들은 일상적인 노동에 익숙해진 모습이며, 특히 ‘삽질 소리들을 꿈속에서도 들었다’는 표현을 통해 독자들은 일하는 시적 자아의 가족들이 얼마나 일에 몰두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일하는 것에 있으며, 그런 점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순박하고 정직한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그리고 ‘맛있는 잠’을 통해 고된 노동의 고통을 역설적으로 강조하여 잠을 통해 휴식을 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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