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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그대들 돌아오시니 – 재외 혁명 동지에게 / 정지용

by 혜강(惠江) 2020. 9. 3.

 

 

 

 

그대들 돌아오시니

– 재외 혁명 동지에게

 

 

- 정지용

 

 

백성과 나라가

이적(夷狄)*에 팔리우고

국사(國祠)*에 사신(邪神)*이

오연(傲然)히* 앉은 지

죽음보다 어두운

오호 삼십육 년!

 

그대들 돌아오시니

피 흘리신 보람 찬란히 돌아오시니!

 

허울* 벗기우고

외오* 돌아섰던

산(山)하! 이제 바로 돌아지라

자취 잃었던 물

옛 자리로 새소리 흘리어라

어제 하늘이 아니어니

새론 해가 오르라

 

그대들 돌아오시니

피 흘리신 보람 찬란히 돌아오시니!

 

밭이랑 문희우고*

곡식 앗어가고

이바지하올 가음*마저 없어

금의(錦衣)*는커니와

전진(戰塵)* 떨리지 않은

융의(戎衣)* 그대로 뵈일 밖에!

 

그대들 돌아오시니

피 흘리신 보람 찬란히 돌아오시니!

 

사오나온 말굽에

일가친척 흩어지고

늙으신 어버이, 어린 오누이

낯설어 흙에 이름 없이 구르는 백골!

 

상기* 불현듯 기다리는 마을마다

그대 어이 꽃을 밟으시리

가시덤불, 눈물로 헤치시라

 

그대들 돌아오시니

피 흘리신 보람 찬란히 돌아오시니!

 

 

  -《해방 기념 시집》(1945) 수록

 

 

◎시어 풀이

 

*이적(夷狄) : 오랑캐. 여기서는 ‘일제’를 가리킴.

*국사(國祀) : 나라의 제사

*사신(邪神) : 사악한 귀신

*오연(傲然)히 : 태도가 거만스럽게

*허울 : 실속이 없는 겉모양.

*외오 : ‘잘못’의 옛말

*문희우고 : 무너뜨리고, 흩어져 버리고, 농사를 못 짓게 되고

*가음 : 감. 재료나 바탕

*금의(錦衣) : 비단옷․

*전진(戰塵) : ①싸움터의 먼지나 티끌. ②싸움터의 소란

*융의(戎衣) : 옛날 군복의 한 가지

*상기 : 아직

 

 

▲이해와 감상

 

 

  간절히 기다리던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은 매우 기쁘고 행복한 일이다. 해방이 되어 귀환하는 재외 혁명 동지들을 맞이 햐면서 광복의 기쁨과 감격, 그리고 조국의 미레에 대한 당부를 노래한 당대의 대표적 작품이다.

 

  이 시는 광복 후에 임시 정부 요인들이 돌아왔을 때 그들 앞에서 시인이 직접 낭송한 것으로서 해방을 맞아 처음으로 간행된 앤솔로지(anthology)인 <해방 기념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제목의 ‘그대들 돌아오시니- 해외 혁명 동지에게’에서 ‘그대들’은 해방을 맞아 귀환하는 제외 혁명동지들이며, 시인은 재외 독립운동가들의 환국(還國)을 ‘그대들 돌아오시니’로 표현하고 있다. ‘그대들 돌아오시니’의 반복으로 헌시(獻詩)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으며, 영탄법과 반복법을 통해 화자의 정서를 직접적으로 토로하고 있다.

 

  1연에서 시인은 일제 강점 하의 고통을 회상한다. 나라와 백성이 1910년 한일 합병조약으로 일제에 팔리고, 나라의 제사에 사악한 귀신인 일제가 거만스럽게 자리를 차지한 암흑의 세월이 36년이었음을 회상하며, 2연에서는 ‘그대들 돌아오시니/ 피 흘리신 보람 찬란히 돌아오시니’라는 시행으로, 36년간의 지난 현실과 대응을 이룸으로써 그 귀환의 감격을 배가시켜주고 있다. 이 시구는 시상의 진행에 따라 4연, 6년, 9연에 동일 시행을 거듭 반복함으로써 피 흘리며 투쟁한 재외 독립운동가들의 환국을 높이 찬양하는 찬가(讚歌)와 헌시(獻詩)의 성격을 드러내고 있다.

 

  3연에서는 해방을 맞이한 기쁨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화자는 해방이 되었으니, 이제 식민지 백성의 허울을 벗어 던지고, 일제 강점기에 자행된 과오를 바로잡고, 잃었던 국토를 회복하여 생기 있는 삶을 소망하며, ‘새로운 태양’, 즉 광복의 세상에 대한 기대를 노래한다. ‘돌아지라’, ‘흘리어라’, ‘오르라’ 등의 명령형 어미의 반복은 화자의 강한 의지의 표현이다.

 

  5연에서는 다시금 악몽과 같았던 일제의 지배를 상기하면서 저항과 독립 투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와 정당성을 강조한다. ‘밭이랑’ 무너뜨리고 곡식을 빼앗아가고, 생존마저 위태롭게 되자 군복을 입고 떨쳐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던 현실을 강조한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강조는 독립 투쟁을 했던 해외 동포들의 의로운 행동에 대해 정당성을 부여하고 신성한 가치를 부여하고자 하는 의도를 지니고 있다.

 

  7~8연에서는 다시 36년간 우리 민족이 겪었던 참혹한 고통을 환기하고, 아직도 독립 국가 건설이라는 역사적 과제가 산적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사오나온 말굽’과 ‘이름 없이 굴으는 백골(白骨)’ 등의 표현을 통해 일제의 탄압에 의해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과 죽음을 다시 한번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대 어이 꽃을 밟으시리/ 가시덤불, 눈물로 헤치시라.’라고 하면서 여전히 그들이 극복해야 할 역경과 감당해야 할 역사적 책무가 남아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화자는 고난의 현실 묘사에 이어 해방의 현실을 제시함으로써, 구조의 단조로움을 피하는 한편, 재외 혁명동지들의 귀환이 그저 금의환향(錦衣還鄕)이 될 수 없음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그리고, 마지막 9연에서 ‘그대들 돌아오시니/ 피 흘리신 보람 찬란히 돌아오시니’의 후렴구를 다시 반복하여 그간 광복을 위해 힘써 온 혁명동지들의 노고를 ‘피 흘리신 찬란한 보람’으로 칭송하고 있다,

 

  앞서 말한 대로, 이 시는 해방을 맞아 처음으로 간행된 <해방 기념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우익 문학 단체인 ‘중앙문인협회’ 주관으로 1945년 12월 발간된 이 시집은 좌․우익의 구별 없이 전체 문단을 망라하여 24인의 시를 수록하고 있다. 여기에 실린 작품들은 대부분 찬가(讚歌)나 헌사(獻詞)의 범주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지만, 위의 정지용의 시를 비롯한 몇몇 작품들은 해방을 맞는 감격의 직접성과 내면화된 서정성이 잘 조화되어 있는 뛰어난 수준을 보여 준다. 이 시는 그 부제에서 보듯 해방을 맞아 귀환하는 재외 혁명동지에게 바치는 헌사의 형식을 하고 있으며, 그 귀환의 감격을 직설적으로 반복함으로써 표제시(標題詩)의 의미를 직접 드러내 준다.

 

 

▲작자 정지용(鄭芝溶, 1902~1950)

 

 

  시인. 충북 옥천 출생. 아명(兒名)은 지룡(池龍). 가톨릭 신자로 세례명은 프란시스코. 휘문고보 재학 시절 박팔양 등과 동인지 ≪요람≫을 발간. 일본 교토의 도시샤(同志社) 대학 영문과 재학시에 유학생 잡지인 ≪학조(學潮)≫ 창간호에 <카페 프란스> 등 9편의 시를 발표하고, 그해에 ≪신민≫, ≪어린이≫, ≪문예시대≫ 등에 <다알리아(Dahlia)>, <홍춘(紅椿)>, <산에서 온 새> 등의 시를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문단 활동을 시작했다. 1930년에는 박용철, 김영랑, 이하윤 등과 함께 동인지 ≪시문학≫ 발간. 1933년에는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9인회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에는 김기림. 박영희 등과 함께 서대문형무소에 수용되었다. 이후 북한군에 의해 납북되었다가 사망하였다.

  시집으로는 34세 때인 1935년 첫 시집 ≪정지용 시집≫을 출간한 뒤. ≪백록담≫(1941), ≪지용시선≫(1946)을 발간했다. 산문집으로 ≪문학독본≫(1948)과 ≪산문(散文)≫(1949)이 있다. 사후 1988년 ≪정지용 전집≫이 시와 산문으로 나뉘어 2권으로 발간되었다. 그는 모더니즘의 영향을 받아 이미지를 중시하면서도 향토적 정서를 형상화한 순수 서정시의 가능성을 개척하였다. 특히 그는 우리말을 아름답게 가다듬은 절제된 표현을 사용하여 다른 시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해설 및 정리 : 남상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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