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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상치쌈 / 조운

by 혜강(惠江) 2020. 9. 16.

 

 

상치쌈

 

- 조 운

 

 

 

쥘상치* 두 손 받쳐

한입에 우겨넣다*

 

희뜩*

눈이 팔려 우긴* 채 내다보니

 

흩는* 꽃 쫓이던 나비

울* 너머로 가더라

 

 

- 시조집 《조운 시조집》(1947) 수록

 

 

◎시어 풀이

*상치 : ‘상추’의 잘못.

*쥘상치 : ‘쥐다’와 ‘상치(상추)’를 엮은 말로, 상추쌈을 쥐고 있는 모습을 표현한 말

*우겨넣다 : 억지로 밀어 넣다.

*희뜩 : 얼굴을 돌리며 슬쩍 돌아보는 모양

*우긴 : ‘우겨넣은’의 줄인 말

*흩는 : 흩어지는

*울 : 울타리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제목인 ‘상치쌈’에서 알 수 있듯이, 일상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순간적으로 한 장의 그림처럼 포착한 관찰력이 돋보이는 현대시조이다. 무심코 쌈을 먹다가 자각하게 된 자신의 재미있는 표정에 착안하여 쓴 현대시조이다.

 

이 시는 전통적인 율격에서 조금 빗겨나 있는 것이 독특하다. 전통 시조가 3장 3행으로 배열되고 한 행의 음보가 4음보였던 것에 비해, 이 작품은 초장, 종장과 달리 중장의 첫 행을 한 음보로 구성하여 2행을 3음보로 배열함으로써 시적 구성에 변형을 주었다.

 

초장에서는 상추쌈을 싸 먹는 화자의 모습이 제시되고, 중장에서는 상추쌈을 욱여넣은 채 바라본 풍경이 눈에 들어오며, 종장은 꽃 쫓던 나비가 울을 너머로 가는 모습으로 시선이 점점 밖으로 확장되는 양상을 보인다.

 

이 시는 식사하는 일상적인 행위에 새로운 감각을 부여하고 있다는 점이 독특한데, 초장에서는 상추쌈을 싸서 들고 입에 넣고 있는 화자의 모습이 묘사되는데, ‘쥘상치’는 ‘상추쌈’을 시인의 개성적으로 만들어 낸 조어(造語)로, '두 손 받쳐'나 '우겨넣다'라는 시행에서 보듯, 많은 양을 한입에 넣기 위해 동작을 크게 밀어 넣고 있는 화자의 모습이 형상화된다.

 

중장에서는 입을 크게 벌리자 눈꼬리까지 올라간 표정이 그려지고 그 덕분에 시선은 더 넓어져 밖을 내다보게 된다. ‘희뜩’을 중심으로 초장의 상추를 싸 먹는 움직임과 종장의 나비의 움직임이 이어지면서 연출되는 풍경은 유쾌하면서도 발랄한 느낌을 준다. 또한, 상추쌈을 입에 한가득 물고 눈으로 나비를 쫓는 화자의 모습은 ‘희뜩’이란 단어를 통해 화자의 흰자위가 연상되면서 해학적으로 그려진다. 이러한 우리 민족의 정감은 ‘희뜩’이란 한 음보로 한 행을 구성한 구별 배열 때문에 더욱 효과적으로 표현되고 있다.

 

종장에서는 그 확장된 시야에 흩어진 꽃을 찾다가 울타리 너머로 날아가는 나비가 들어온다는 내용이다. 바람에 흩어지는 꽃을 쫓아가는 나비가 울타리를 넘는 모습이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되었다.

 

이 시조는 생활에서 느끼고 경험한 구체적인 소재를 현대적인 율격과 내용으로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형상화되는데, 순간의 포착과 관찰력이 두드러진 작품이다. 구별 배행의 구성으로 호흡을 늦추어 전체적으로 여유로운 시적 상황을 효과적으로 표현해 내는 것이 특징이다.

 

 

▲작자 조운(曺雲, 1900~?)

 

 

시조 시인. 전남 영광 출생. 1921년 《동아일보》시 <불살라 주오>를 발표하고, 1925년 《조선 문단》에 <법성포 12경>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고어 투의 시어에서 시조를 해방하고, 일상적인 현실 생활에서 느끼는 정감을 작품화함으로써 현대시조의 초석을 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922년 향토문예지 《자유예원(自由藝苑)》을 발간하기도 했으며, 1947년 《조운 시조집》을 간행한 바 있다. 1945년에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담했으며, 1948년에 자진 월북하여 북쪽에서 인민회의 상임위원을 지냈다.

 

 

 

►해설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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