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난초(蘭草) 잎 / 조운

by 혜강(惠江) 2020. 9. 17.

 

 

난초(蘭草) 잎

 

 

- 조운

 

 

 

눈을 파헤치고
난초(蘭草)잎을 내놓고서

손을 호호 불며
들여다보는 아이

빨간 손
푸른 잎사귀를
움켜쥐고 싶고나

 

 

- 《조운 시조집》 (1947) 수록

 

 

▲이해와 감상

 

  조운의 시조 <난초 잎>은 온갖 고난을 인내하고서 피어나는 난초 잎을 통해 생명의 소중함과 생명과의 교감이 주는 감동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화자는 눈을 파헤쳐 나온 난초를 발견한 순진무구한 어린아이에게서 가치 추구의 열정을 발견하며 감탄하고 있다.

 

  이 시조는 모두 3장으로 이루어진 평시조인데, 시조의 형식을 변용하고 대립적인 색채 이미지를 사용하여 주제를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평이한 시어들을 사용하고 있지만, 상징적이고 함축적인 언어 사용을 통해 깊이 있는 주제 의식을 담아내고 있다.

 

  초장 눈을 파헤치고/ 난초 잎을 내놓고서에서 행동의 주체는 이이로서, 화자는 쌓인 눈 위로 드러나 있는 연약한 난초 잎을 강조하면서 시련과 고난에 맞서고 있는 강인한 생명력을 강조하고 있다. ‘난초는 예로부터 사군자(四君子) 중 하나로 매우 상서로운 것으로 평가되었던 식물인데, 여기서 은 시련과 고난을 상징하며, 눈 속에서 틔우고 있는 난초의 잎은 그러한 고난과 위험을 뚫고서 나온 강인한 생명력을 암시하고 있다.

 

  중장의 손을 호호 불며/ 들여다보는 이이에서는 눈을 파헤치고 꺼내놓은 난초 잎을 들여다보고 있는 어린아이의 언 손을 부각하면서 생명 사이의 교감과 생명 사이에 형성된 공감과 연대의 정서를 강조한다. 다시 말하면 눈 사이로 드러난 난초 잎과 어린아이의 고사리 같은 연약한 손은 모두 시련과 위험에 취약한 면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그들 사이의 유대감은 생명을 위협하는 세력에 대한 공동의 전선을 형성한다. 음성상징어 호호의 사용이 시에 생동감을 불러일으킨다.

 

  마지막 종장의 빨간 손/ 푸른 잎사귀를/ 움켜쥐고 싶구나에서는 주체가 화자로 바뀌면서 어린아이의 꽁꽁 언 빨간 손과 여린 난초의 푸른 잎사귀를 병치하면서, 생명 사이에 생성되기 마련인 연민과 공감의 연대를 이루고 있어서 더욱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특히, 눈을 헤치느라 꽁꽁 언 빨간 손은 가녀리고 연약해서 보는 이를 안타깝게 하고, 쌓인 눈 위로 간신히 드러나 있는 여린 난초의 푸른 잎사귀는 생명의 위협과 가혹한 시련에 시달리고 있는 여린 생명에 대한 동정심을 자아낸다.

 

  ​이러한 장면에 시적 자아 또한 움켜쥐고 싶구나라며 생명을 위한 투쟁과 유대에 동참하고자 하는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있는 난초 잎과 어린아이, 그들을 바라보는 시적 자아의 공감과 유대가 독자의 감동을 자아낸다.

 

  결국, 이 시조 작품은 으로 상징되는 생명의 위협 세력에 직면해 있는 어린아이와 난초 잎의 공감과 연대를 바라보면서 생명과의 교감이 불러일으키는 감동을 표상하고 있다. 또한, 그들의 투쟁에 동참하고자 하는 시적 자아의 의지를 통해서 생명의 소중함과 존엄성에 대한 주제 의식을 표출하고 있다.

 

 

▲작자 조운(曺雲, 1900~?)

 

시조 시인. 전남 영광 출생. 1921동아일보<불살라 주오>를 발표하고, 1925조선 문단<법성포 12>을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고어 투의 시어에서 시조를 해방하고, 일상적인 현실 생활에서 느끼는 정감을 작품화함으로써 현대시조의 초석을 놓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1922년 향토문예지 자유예원(自由藝苑)을 발간하기도 했으며, 1947조운 시조집을 간행한 바 있다. 1945년에 조선 문학가 동맹에 가담했으며, 1948년에 자진 월북하여 북쪽에서 인민회의 상임위원을 지냈다.

 

 

해설 : 남상학(시인)

 

 

'문학관련 > - 읽고 싶은 시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민들레꽃 / 조지훈  (0) 2020.09.19
사과 한 알 / 조인선  (0) 2020.09.18
상치쌈 / 조운  (0) 2020.09.16
물구나무서기 / 정희성  (0) 2020.09.15
답청(踏靑) / 정희성  (0) 2020.09.1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