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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민들레꽃 / 조지훈

by 혜강(惠江) 2020. 9. 19.

 

민들레꽃

 

 

- 조지훈

 

 

 

까닭 없이 외로울 때는

노오란 민들레꽃 한 송이도

애처롭게 그리워지는데

 

아 얼마나 한 위로이랴

소리쳐 부를 수도 없는 이 아득한 거리(距離)에

그대 조용히 나를 찾아오느니

 

사랑한다는 말 이 한 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

 

잊어버린다.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되어도

아 얼마나 한 위로이랴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

 

 

- 《신천지》(1950)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의인화된 민들레꽃 한 송이를 통해 애틋한 그리움의 마음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화자인 ‘나’는 죽도록 사랑하는 임의 현신(現身)일 수 있는 민들레꽃을 바라보며,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외로운 그리움을 차분한 어조로 나지막이 고백하고 있는 연시(戀詩)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그리움이 있다. 더욱이 외로울 때는 사랑하는 임에 대한 그리움이 그 무엇보다도 절절하다. 이 시의 화자는 외롭고 그리운 마음을 민들레꽃에 투영하여 사랑의 다짐을 하며 스스로 위로하고 있다.

 

  연가적(戀歌的), 여성적, 고백적인 성격의 이 시는 1연에서 화자의 심리적 정황을 나타내는데, 까닭 없는 외로움으로 ‘민들레꽃 한 송이’조차 그리워한다. 여기서 ‘민들레꽃’은 그대와 화자를 이어 주는 정서적 매개물을 표상하는 것으로 화자를 위로해주는 대상이다.

 

  2연에서는 그리워지는 화자의 마음을 아득히 먼 거리에서 민들레꽃이 되어 찾아온 임의 모습에 위로를 받는다. ‘아 얼마나 한 위료이랴’라는 화자의 영탄적 표현은 ‘아득한 거리’에서 화자를 찾아온 민들레꽃을 통해 임을 느낄 수 있기에 화자에게는 큰 위로가 되는 것이다.

 

  제3연에서 화자는 ‘사랑한다는 말 이 한 마디는/ 내 이 세상 온전히 떠난 뒤에 남을 것’이라며, 임에게 자신의 사랑이 영원히 변치 않을 것임을 다짐한다.

 

  그리고 제4연에서 화자는 마침내 ‘못 잊어 차라리 병이’ 될 만큼, 앞으로 그대를 잊어버린다 해도, 못 잊어서 병이 된다 해도 잊을 수 없는 임이기에, ‘아 얼마나 한 위로이랴’의 반복을 통해 위로를 재확인하며, ‘그대 맑은 눈을 들어 나를 보느니’라며 민들레꽃으로 현현(顯現)된 임과의 만남은 화자에게 큰 위로가 된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다.

 

  이 작품의 시상 전개에서 특이한 것은 주체와 객체가 전도된 주객전도(主客顚倒)의 표현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화자가 위로의 대상으로 그저 '바라본 민들레꽃'이 오히려 화자를 '바라보는 민들레꽃'으로 전화(轉化)되어 만남을 이루는 상황이다. 이것은 물론 시인의 문학적 상상력의 소산이다.

 

 

▲작자 조지훈(趙芝薰, 1920~1968)

 

  시인, 국문학자. 경상북도 영양 출생. 본명 동탁(東卓). 1939년 《문장》지를 통하여 <고풍 의상>, <승무>, <봉황수> 등으로 정지용의 추천을 받아 등단하였다. 박목월,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며. 동양의 회고적 정신을 바탕으로 전통에의 향수, 민족의 한(恨)을 고전적 운율로 노래하였다. 청록파의 한 사람인 박두진은 그를 가리켜 “투명한 감성, 밝은 지성, 예리한 감각과 윤택한 정서를 통하여 한국의 현대 시사에 하나의 불멸의 업적을 남겨놓았다”고 평가했다.

 

  박두진, 박목월 등과 《청록집》(1946)을 간행하였고, 시집으로 《풀잎 단장》(1952), 《역사 앞에서》(1959), 《여운》(1964) 등이 있다. 그밖에 수필집으로 《창에 기대어》(1958), 《시와 인생》(1959), 《돌의 미학》(1964), 《지조론》(1963), 평론집으로 《시의 원리》(1953), 《한국문화사 서설》(1964) 등이 있다.

 

 

 

►해설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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