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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왜요? / 천양희

by 혜강(惠江) 2020. 9. 25.

 

 

 

왜요?

 

- 천양희

 

 

강변역이 강변에 있지 않고

학여울역이 여울에 없다니요?

물까마귀는 까마귀가 아니고 물새라니요?

섬개개비는 산새이면서 섬에서 살다니요?

송사리는 웅덩이에서 일생을 마치고

무소새는 평생 제집이 없다니요?

질경이는 뿌리로 견디고

가마우지는 절벽에서 견디다니요?

푸른 소나무도 낙엽 지고

더러운 늪에서도 꽃이 피다니요?

인생이란 느끼는 자에게는 비극이고

생각하는 자에게는 희극이라니요?

필연적인 것만이 무겁고

무게가 있는 것만이 가치가 있다니요?

사자 별자리, 오늘 밤

하늘에 봄이 왔음을 알립니다

회신 바랍니다 이만 총총

 

 

- 시집 《오래된 골목》(1998)

 

 

▲이해와 감상

 

  이 시는 보편적 상식, 즉 일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것들에 대해 의문을 던지며, 신선한 발상으로 세상을 새롭게 바라볼 것을 표현하고 있다. 화자는 작품에 직접 드러나 있지는 않으나 보편적 상식에 질문을 던지는 자로 청자는 이 글을 읽는 독자이다.

 

  이 시는 마지막 17행의 회신 바랍니다. 이만 총총이라는 시구로 보아 이 시가 서간문의 형식임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 시의 구성을 보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전반부인 1~14행은 화자가 던지는 8개의 질문으로 길며, 후반부 15~17행은 행갈이에 변형을 꾀한 짧은 구성이다. 전반부 8개의 질문은 비슷한 문장 형태로 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운율을 자아내며 시적 효과를 증대시킨다. 설의법을 통해 표현되는 이 시행들은 속사포처럼 상대에게 질문을 던짐으로써 새로운 각성을 촉구한다. 그리고 후반부 3행에서는 앞에서 제기한 의문에 대해 편지를 받는 이(독자)에게 자신이 던졌던 질문들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요구이다.

 

  전반부 8개의 질문은 시적 화자가 주변에서 흔히 쓰이는 일상적 용어나 상식들이 모순적이라는 점을 자각하고 그러한 삶의 방식들에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이다. 1~2행에서는 왜 '강변역'이 강변에 있지 않고, '학여울역'에 여울이 없냐고 묻는 것은 이름 때문에 생긴 오해이다. 화자는 이것이 잘못되었다고 직접적으로 지적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좀 이상하지 않느냐?’라고 독자들에게 의문을 던지는 형태로 지적한다. 3~4행에서는 왜 물까마귀는 까마귀가 아니고 물새이며, ‘섬개개비는 산새이면서 왜 섬에서 사는냐고 묻는다. 일종의 언어유희(言語遊戲)로 독자의 생각을 환기시킨다. 그 뒤 58행에서는 거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생물들을 언급하며 정해진 삶의 행로가 과연 옳은 것인지 반문한다. 9, 10행에서는 '푸른 소나무'도 시들 때가 있으며, '더러운 늪'이라도 ''이 피어난다는 것, 즉 생의 주어진 형태가 끝까지 유지되지 않고 변경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11, 12행에서는 '인생'을 느끼는 자들은 비극이라고 여기고, 생각하는 자들에겐 희극으로 여겨진다는 일반적인 상식에도 의문을 제기한다. 13, 14행에서는 필연적인 것만이 무겁고 가치 있는 것이 아니며, 인생의 가치들이 정해진 것들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1행에서 14행까지는 일상적이고 경험적인 것들에 대해 의문을 던져 상대에게 각성을 유도하고 있다. 특히 ‘~로 끝날 종결 어미를 ‘~니요?’라는 의문형식으로 바꾼 것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며, 또한 일상에 대한 각성으로 새로움을 발견하고 기존의 인식에 대해 전환하는 계기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데 후반의 15~17행에서는 시상이 전환되어 사자 별자리가 뜬 오늘 밤/ 하늘에 봄이 왔음을 전하면서 회신을 바라는 것으로 끝맺고 있다. 여기서 화자가 봄이 왔음을 알리는 교신(交信)80광년이나 떨어진 사자 별자리로 설정한 것은 봄이 오는 기쁨을 우주에서 보낸 교신이라는 신선한 발상으로 표현하면서 색다른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것을 제안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처럼, 이 시는 세상 사물들의 존재와 명명, 삶의 우연성과 필연성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자각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데, 전체적으로는 관념적이고 사변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으나, 화자의 어조에서 진지한 훈계조보다는 가볍고 긍정적인 삶의 태도를 촉구하는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작자 천양희(千良姬, 1942~)

 

  시인. 부산 출생. 1965현대문학<정원 한때>, <아침>, <화음> 등의 시가 추천되면서 등단하였다. 감성적이고 진솔한 시로 독자들과 친숙해졌고, 오랜 연륜에서 오는 중후함과 인생의 운명에 결연히 대결하는 자세가 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집으로 마음의 수수밭(1994),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1998), 오래된 골목(1998), 하얀 달의 여신(1998), 너무 많은 입(2005) 등과 짧은 소설 하얀 달의 여신(1999) 등이 있다.

 

<천양희의 시 세계>

  천양희 시인은 다사다난한 인생사를 겪었고, 그것의 일부가 시를 통하여 표현되었다. 결혼 생활 동안 시작(詩作) 활동을 하지 않다가, 이혼 후 다시 시작했을 때에는 세상에 대한 적개심과 자기 정체성에 대해 고통스러워하는 내용이 많았다. 그러나 후반부에는 그것을 극복하고 인생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세상과의 화해를 이룩하는 내용의 시들을 쓰며 더 정진해갔다. 시의 경향이 다소 모호하고 부분적으로 이해를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있어 왔지만, 진솔한 감정 표현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며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작성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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