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길
- 천양희
가마우지 새는 벼랑에서만 살고
동박새는 동백꽃에서만 삽니다.
유리새는 고여 있는 물은 먹지 않고
무소새는 둥지를 소유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새들은 날아오릅니다.
새들은 고소 공포증도 폐쇄 공포증도 없습니다.
공중이 저의 길이니
제발 그대로 놓아두시지요.
외길이 나의 길이니
제발 그대로 내버려 두시지요.
- 시집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1998) 수록
◎시어 풀이
*고소 공포증 : 높은 곳에 있으면 공포를 느끼는 병.
*폐쇄 공포증 : 폐쇄된 장소를 두려워하고 공포를 느끼는 병적 증상.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새들이 주어진 삶을 자유롭게 살아가듯이, 주어진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이 시에서 ‘길’이 삶의 태도나 방향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때, 시의 제목인 ‘외길’은 단 한 방향으로만 나 있는 길이므로, 한 가지 방법이나 방향에만 전념하는 삶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화자인 ‘나’는 여러 새의 모습을 통해 자기 삶의 태도를 뒤돌아보고, ‘새’라는 자연물과 ‘나’를 동일시하여 구속과 속박 없이 하늘을 날아가는 새들처럼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간곡한 어조와 경어체를 사용하여 드러내고, 같은 구조의 문장을 반복하여 화자의 의지를 강조하고 있다.
‘새’의 존재 방식을 통해 외부적인 요인에 흔들리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삶의 길을 지켜내려는 화자의 의지와 삶의 태도를 아름답게 표현하고 있다.
1~4행에서는 새에 대한 관찰로부터 발견한 사실을 ‘살고’와 ‘삽니다’, ‘않고’와 ‘압니다’ 등 같은 구조의 문장을 반복하여 표현하고 있다. 즉, ‘가마우지 새’는 벼랑에서, ‘동박새’는 동백꽃에서, ‘유리새’는 고여 있는 물음 먹지 않고, ‘무소새’는 둥지를 소유하지 않고 살아간다. 모두 자신만의 습성과 방법대로 살아가는 새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무소새는 둥지를 소유하지 않습니다’라는 표현은 새 이름이 무소유라는 발음과의 유사성에 기인한 발상으로, 이름이 지닌 의미를 활용한 언어유희(言語遊戲)라고 할 수 있다. 여기 나열된 새들은 새의 이름을 통해 짐작해 볼 수 있듯이 저마다 독특하고 다양한 삶의 습성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5~6행은 ‘그래도’라는 시어로 시상을 전환하여 삶의 방식은 다양해도 ‘새들은 날아오릅니다/ 새들은 고소 공포증도 폐쇄 공포증도 없습니다’라고 한다. 이것은 새의 본질적 습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여기서 ‘고소 공포증’, ‘폐쇄 공포증’은 자유로운 비상을 막는 내적·외적 요소들인데, 이것이 없다는 것은 새들이 자유로이 비상한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마지막 7~10행에서는 ‘공중이 저의 길이니/ 제발 그대로 놓아두시지요/ 외길이 나의 길이니/ 제발 그대로 내버려 두시지요’라며, 자기 삶의 길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새들이 자유롭게 비상하기를 바라는 화자의 마음이 강조된 것이며, 신념에 따라 자유롭게 살고자 하는 의지적 태도를 드러내는 것이다.
시인. 부산 출생. 1965년 《현대문학》에 <정원 한때>, <아침>, <화음> 등의 시가 추천되면서 등단하였다. 감성적이고 진솔한 시로 독자들과 친숙해졌고, 오랜 연륜에서 오는 중후함과 인생의 운명에 결연히 대결하는 자세가 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집으로 《마음의 수수밭》(1994),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1998), 《오래된 골목》(1998), 《하얀 달의 여신》(1998), 《너무 많은 입》(2005) 등과 짧은 소설 《하얀 달의 여신》(199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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