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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새가 있던 자리 / 천양희

by 혜강(惠江) 2020. 9. 26.

 

 

새가 있던 자리

 

 

- 천양희

 

 

 

잎인 줄 알았는데, 새네

저런 곳에도 앉을 수 있다니

새는 가벼우니까

바람 속에 쉴 수 있으니까

오늘도 눈뜨고 있어도 하루가 어두워

새가 있는 쪽에 또 눈이 간다

프리다 칼로*의 ‘부서진 기둥’*을 보고 있을 때

내 뼈가 자꾸 부서진다

새들은 몇 번이나 바닥을 쳐야

하늘에다 발을 옮기는 것일까

비상*은 언제나 바닥에서 태어난다

나도 그런 적 있다

작은 것을 탐하다 큰 것을 잃었다

한 수 앞을 못 보았다

얼마를 더 많이 걸어야 인간이 되나

아직 덜 되어서

언젠가는 더 되려는 것

미완이나 미로* 같은 것

노력하는 동안 우리 모두 방황한다

나는 다시 배운다

미로 없는 길 없고 미완 없는 완성도 없다

없으므로 오늘도 눈 뜨고 있어도 하루가 어두워

새가 있는 쪽에 또 눈이 간다.

 

 

- 시집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2011) 수록

 

 

◎시어 풀이

*프리다 칼로(1907~1954) : 20세게 멕시코의 초현실주의 화가. 어릴 때 걸린 소아마비에 이은 버스 사고로 인한 고통을 강렬하고 충격적인 화풍의 작품으로 그려냈다. 병실에 누워 그리기 시작한 자화상으로 자신의 인생과 경험, 환상을 모두 표현했으며, 결코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았다. 주요 작품은 <내 옷이 거기에 걸려 있다> 등.

*부서진 기둥 : 프리다 칼로의 1944년 작. 황폐한 풍경을 배경으로 몸이 갈라지고 철제 보정기를 착용하고 있는 프리다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비상(飛上) : 날아오름

*미로(迷路) : 어지럽게 갈래가 져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 어려운 길.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암울한 현실 속에 살고 있는 화자가 시련과 고난에 대한 역설적 인식을 통해, 삶의 고통과 아픔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보여 주는 시이다. 화자인 ‘나’는 새의 모습을 관찰하며 새의 모습에서 시련과 고통 없이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음을 깨닫고 삶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고난에 대한 역설적 인식을 통해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낸 이 시는 외부 대상의 모습을 바탕으로 인간사의 깨달음을 유추하고 있으며, 고백적인 어투로 삶에 대한 깨달음을 드러내고, 프리다 칼로의 그림 ‘부서진 기둥’과 밥 딜런의 노래 의 가사를 통해 화자가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 의식을 강조하고 있다.

 

  1~6행에서는 새의 자유로움에 대한 인식과 동경을 그리고 있다. 암울한 상황에 처해 있는 화자는 새가 아주 작은 나뭇가지에도 앉을 수 있고, 가볍기 때문에 하늘을 날면서도 쉴 수 있다는 것을 부러워하며 자신과 반대되는 새에 관심을 기울인다.

 

  7~11행에서는 화자가 자신이 처한 삶의 고통과 새를 통한 깨달음을 노래하고 있다. 화자가 프리다 칼로의 그림 ‘부서진 기둥’을 보고 있다는 것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 좌절하고 절망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멕시코 출신의 초현실주의 여성 화가 ‘프리다 칼로’는 18세 때 교통사고로 척추와 오른쪽 다리 등을 크게 다쳐 평생 30여 차례의 수술을 받았고, 이 사고는 그의 삶 뿐만 아니라 예술 세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이러한 고통과 아픔을 창조적인 예술로 승화시킨 그녀는 ‘부서진 기둥’이라는 작품에서 금이 간 기둥을 통해 자신의 부서진 척추를 나타냈고, 몸에 박힌 못을 통해 자신의 처절한 고통을 형상화했다. 이 시의 화자는 그 그림을 보면서 ‘내 뼈가 자꾸 부서진다’며 자신이 처한 상황을 드러낸다. 그러나, 화자는 ‘새들은 몇 번이나 바닥을 쳐야/ 하늘에 발을 옮기는 것일까’라며, 새도 날기 위해 시련과 고통을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비상은 언제나 바닥에서 태어난다’는 깨달음을 얻고 있다. 이것은 시련과 고통이 발전과 성공에 필수적이라는 역설적인 깨달음이다.

 

  12~20행에서는 과거의 경험과 새를 통한 깨달음을 다시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작은 것을 탐하다가 큰 것을 잃은 소탐대실(小貪大失)의 경험, 한 치 앞을 보지 못한 경험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미국 가수 ‘밥 딜런’의 노래(Blowing in the wind) 가사처럼 ‘얼마를 더 많이 걸어야 인간이 되나’라며, 부족한 현재 자신의 모습을 채워 나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 언제가 모두 완성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즉, ‘미완’이나 ‘미로’와 같은 방황이 없으면 ‘완성’도 없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통해서 마지막 21~24행에서는 새에 대한 동경과 역경 극복의 의지를 통해 시련과 역경을 이겨 내고 비상하려는 화자의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화자는 깨달음을 통해서 ‘미로 없는 길 없고 미완 없는 완성도 없다’라고 단언한다.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충분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러한 깨달음은 암울한 현실 속에서 절망하던 화자에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주게 된다. 그러므로 화자는 6행의 ‘새가 있는 쪽에 또 눈이 간다’라는 시구를 반복하여 바닥을 치고 비상(飛翔)하는 새처럼 시련과 역경을 이겨 내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

 

  따라서 이 시는 힘든 현실에 처해 있는 화자가 고통과 아픔에 대한 역설적 인식을 통해 삶에 대한 깨달음을 전하고 있는 것으로, 현재의 시련과 고난으로 고통받고 아파하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작자 천양희(千良姬, 1942 ~ )

 

  시인. 부산 출생. 1965년 《현대문학》에 <정원 한때>, <아침>, <화음> 등의 시가 추천되면서 등단하였다. 감성적이고 진솔한 시로 독자들과 친숙해졌고, 오랜 연륜에서 오는 중후함과 인생의 운명에 결연히 대결하는 자세가 보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집으로 《마음의 수수밭》(1994), 《그리움은 돌아갈 자리가 없다》(1998), 《오래된 골목》(1998), 《하얀 달의 여신》(1998), 《너무 많은 입》(2005) 등과 짧은 소설 《하얀 달의 여신》(1999), 《나는 가끔 우두커니가 된다》(2011) 등이 있다.

 

<천양희의 시 세계>

천양희 시인은 다사다난한 인생사를 겪었고, 그것의 일부가 시를 통하여 표현되었다. 결혼 생활 동안 시작(詩作) 활동을 하지 않다가, 이혼 후 다시 시작했을 때에는 세상에 대한 적개심과 자기 정체성에 대해 고통스러워하는 내용이 많았다. 그러나 후반부에는 그것을 극복하고 인생을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세상과의 화해를 이룩하는 내용의 시들을 쓰며 더 정진해갔다. 시의 경향이 다소 모호하고 부분적으로 이해를 어렵게 한다는 지적이 있어 왔지만, 진솔한 감정 표현으로 독자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해주며 많은 사랑을 받아 왔다.

 

 

 

►작성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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