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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밴드와 막춤 / 하종오

by 혜강(惠江) 2020. 10. 13.

 

 

밴드와 막춤

 

 

- 하종오

 

 

 

동남아에서 한국에 취업 온

청년 넷이 밴드를 만들어 연습하다가

저녁 무렵 도심 지하 보도에서

처음 한국인들에게 들려주기 위해

공연 준비를 마치자

노인네들이 몰려와 둘러섰다

 

기타는 스리랑칸 베이스는 비에트나미즈

드럼은 캄보이단 신시사이저*는 필리피노

노름한 옷차림을 한 연주자들은

낡은 악기로 로큰롤*을 연주했다

 

노인 한 분 나와서 몸 흔들어대자

다른 노인 한 분 나와서 몸 흔들어대고

노파 한 분 나와서 몸 흔들어대자

다른 노파 한 분 나와서 몸 흔들어댄다

 

막춤을 신나게 추던 노인네들은

연주자들이 부루스*를 연주하기 시작하자

잠시 얼떨떨해하다가

노인 한 분과 노파 한 분

다른 노인 한 분과 다른 노파 한 분

양손으로 살포시 껴안고

양발로는 엇박자*가 나도 돌았다

 

미소 짓던 동남아 청년 넷은

저마다 고국에 계신 노부모님에게

이런 자리를 마련해준 적 없었다 싶으니

더 정성껏 연주하고

노인네들은 저마다 자식들이

이런 자리를 마련해 준 적 없었다 싶으니

더 흥겹게 춤을 추었다.

 

 

- 시집 《입국자들》(2009) 수록

 

 

◎시어 풀이

*신시사이저 : 전자 악기의 하나. 발진 회로에서 얻은 단음을 전자 회로에서 가공하여 여러 가지 음색을 만들어 내는데, 대부분이 건반 악기 모양임.
*로큰롤 : 1950년대에 미국에서 발생한 대중음악. 흑인 특유의 리듬 앤드 블루스와 백인의 컨트리 음악의 요소를 곁들인 강한 비트의 열광적인 음악.
*브루스 : 블루스. 미국 남부의 흑인들 사이에서 일어난 두 박자 또는 네 박자의 애조를 띤 악곡.

*엇박자 : 음이 제 박자에 오지 않고 어긋나게 오는 박자. 당김음을 만들거나 합주할 때 특수한 효과를 나타낸다.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우리 사회의 소외 계층인 이주 노동자와 노인들이 한데 어울리는 장면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린 시로, 다문화 사회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이 시는 우리 사회의 대표적 소외 계층인 이주 노동자들과 노인들이 함께 어울려 즐겁고 흥겨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작품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소외 계층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우리 사회의 소외 문제와 조화와 공존에 대한 성찰을 요구한다.

 

  시간의 흐름과 점층적 확대에 의해 시상이 전개되고, 유사한 구조의 문장을 반복하고, 대상이 지닌 공통된 속성을 바탕으로 주제 의식을 효과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연주 준비-연주-연주에 맞추어 춤추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이 시는 이주노동자 밴드의 공연이 시작되면서 흥겹고 즐거운 분위기가 점차 확장되는 점층적 시상 전개 방식이 나타난다. 1연에서는 동남아 이주 노동자들의 밴드가 공연 준비를 마치고 노인 관객들이 모여드는 장면이 제시된다. 동남아 노동자 네 명이 저녁 무렵 도심 지하도에서 공연을 하기 위하여 준비를 마치자 노인네들이 모여든다. ‘노동자’와 ‘노인네’는 외로운 처지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이다.

 

  2연에서는 밴드를 소개하고 로큰롤 연주를 시작으로 공연의 막이 오른다. 이들 네 명의 연주자들은 각기 국적이 다른 동남아 각국에서 온 노동자들로 그들에게 들려진 악기는 기타, 베이스, 드럼, 신시사이저 등 낡은 악기가 고작이다. 연주자들은 허름한 옷차림으로 ‘로큰롤’을 연주하기 시작한다.

 

  3연에서 신나는 로큰롤이 연주되자 노인들은 흥겨운 마음에 한 사람 한 사람 즐거운 춤판에 가세하면서 흥겨움이 양적으로 확대된다. 외국인 노동자의 밴드에서 강한 비트의 열광적인 음악인 ‘로큰롤’이 연주되자 그 연주에 맞춰 노인네들이 흥이 돋아 몸을 흔들어댄다. 악기 연주와 춤이 어우러지면서 서로 교감하는 계기가 된다. ‘노인’은 본래 ‘나이가 많이 든 늙은 사람’을 통칭하는 어휘인데, 그 뒤에 ‘노파’(늙은 여자)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으로 보아, ‘노인’은 남성을 지칭하는 의미로 사용한 듯하다.

 

  한편 4연에서는 이런 즐거움과 흥겨움이 ‘블루스’를 통해 이어지고 노인들이 서로 교감하면서 한층 질적으로 높은 차원으로 고조되고 확장된다. 연주 음악이 ‘로큰롤’에서 느린 박자의 댄스 음악인 ‘블루스(블루스)’로 바뀌자 노인네들은 잠시 얼떨떨해하다가(머뭇거리다가) 노인과 노파가 ‘양손으로 살포시 껴안고’ 춤을 춘다. ‘블루스’ 연주로 노인과 노파가 하나가 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양발로는 엇박자가 나도 돌았다’라는 것은 음이 제 박자에 오지 않고 어긋나게 오는 엇박자에 맞춰 춤을 춤으로써 흥겹게 춤을 추는 모습을 점층적으로 제시한 것이다. 이로써 소외 계층인 노인들 사이의 교감이 더욱 공고하게 형성되었음을 드러낸다.

 

  마지막 5연은 이 시의 주제 연으로, 소외된 자들의 화합을 이루는 모습이 드러난다. 여기서 연주하는 동남아 청년들은 가족들과 멀리 떨어져 생활하는 안타까운 처지에 있고, 노인네 역시 자녀들에게 소외되어 살아가고 있으니 어쩌면 처해 있는 상황으로 보아 이들은 심정적으로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니 동남아 청년들은 고국에 계신 부모님을 위하는 마음으로 노인들을 위해 ‘더 정성껏 연주하고’, 노인네들은 청년들의 뜻을 알기에 ‘더 흥겹게 춤을 추었다’. 무르익어 가는 공연장의 모습은 소외된 노동자들과 노인들이 동질감을 느끼고 교감(交感)하는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밴드와 막춤>은 이주노동자 밴드의 공연을 통하여 이주노동자와 노인들의 공감과 화합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들 모두 우리 사회의 소중한 구성원으로서 주류 사회에서 소외됨이 없이 서로 껴안고 위로하며 조화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함을 보여주고 있다.

 

 

▲작자 하종오(河種五, 1954 ~ )

 

  시인. 경북 의성 출생. 1975년 《현대문학》에 〈사미인곡(思美人曲)〉 등이 추천되어 등단했다. 1980년 ‘반시(反詩)’ 동인으로 참가했다. 초기에는 강한 민중 의식과 민족의식을 기초로 한 작품들을 발표하였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조선족, 탈북자, 외국인 노동자, 결혼 이주 여성 등의 삶과 애환을 다룬 시들을 주로 창작하고 있다. 시집으로 《벼는 벼끼리, 피는 피끼리》(1981), 《사월에서 오월로》(1984), 《넋이야 넋이로다》(1986), 《젖은 새 한 마리》(1990), 《쥐똥나무 울타리》(1995), 《아시아계 한국인들》(2007), 《입국자들》(2009), 《제국》(2011) 등이 있다.

 

 

 

▶작성 : 남상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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