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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힘내라, 네팔 / 한명희

by 혜강(惠江) 2020. 10. 17.

 

 

힘내라, 네팔

-외국인을 위한 한국어 초급반1

 

 

한명희

 

 

세계 각국 사람들이 다 모이는

한국어 시간

앉아 있는 것만 봐도

세계 지도를 알겠다

미국 사람들 주변으로는 캐나다가 모이고

네팔은 인도와 짝이다

소란스럽고 질문이 많은 건

미국이나 호주고

베트남이나 라오스는 아무래도 말수가 적다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그는

네팔 여자의 남편이다

집사람, 잘 부탁합니다

한국어도 유창한 네팔 사람이다

일주일에 두 번

한국어 공부 끝나고 세 시간

그들의 유일한 데이트 시간이다

남편은 한국에서 아내는 네팔에서

그렇게 삼 년

남편은 불광동에서 아내는 영등포에서

또 그렇게 삼 년

일주일에 두 번

한국어 공부 끝나고 세 시간

네팔말이 한국말보다 아름다운 시간이다

 

- 시집 《두 번 쓸쓸한 전화》(2002) 수록

 

 

▲이해와 감상

 

  이 시는 시적 화자가 정면으로 드러나지 않고 작품 밖에서 상황을 관조하며 시상을 전개하고 있다. 화자는 한국어 교육 시간에 만나는 네팔인 부부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6년간 서로 떨어져 지내고 있는 네팔인 부부의 소중한 만남의 시간에 의미를 부여하고, 외국이 노동자에게 대한 연민과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시간 순서대로 시상을 전개하고 있으며, 한국어 수업 시간의 모습으로 국제 역학관계를 표현하고, 반복법을 사용하여 네팔 인 부부의 사연의 안타까움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이)다’란 어미를 통해 화자가 목격했거나 경험한 사실을 중심으로 시상이 전개되고 있다.

 

  1연에서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모이는 한국어 수업 시간을 묘사하고 있다. 미국 사람 주변에는 캐나다가, 네팔은 인도와 짝이 되어 앉아 있다. 그중에서 ‘소란스럽고 질문이 많은 건’ 미국과 호주이고, 베트남이나 라오스는 ‘말수가 적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화자가 ‘미국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빼고는 각 나라 사람들을 나라 이름만으로 국민을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수업 시간에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실제로 국제적인 역학관계를 염두에 둔 표현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말수의 많고 적음의 차이는 국제적인 문제에서 그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가지는 발언권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연에서는 한국에서 떨어져 지내는 네팔인 부부의 사연을 집중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네팔인 남편이 한국어 수업을 받는 아내를 만나기 위해 수업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집사람 잘 부탁합니다’라는 유창한 한국어로 인사하는 것을 보면 네팔인 남편은 먼저 한국에 와서 살았던 모양이다. 이들 부부는 1주일에 단 두 번 만나 세 시간 동안 데이트를 하는 게 고작이다. 그 이유는 다음 표현에서 드러난다. 3년 동안 ‘남편은 한국에서 아내는 네팔에서’ 떨어져 살았다. 그 후 아내가 남편이 있는 한국에 왔으나 또 3년 동안 ‘남편은 불광동에서 아내는 영등포에서’ 떨어져 살고 있으니, 한국어 공부 끝나고 만나는 세 시간이 얼마나 반갑겠는가? 화자는 그 짧은 시간 만남의 기쁨을 ‘네팔 말이 한국말보다 아름다운 시간이다’라고 표현하여, 고달프고 힘든 환경 속에서 나누는 서로의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그동안 한국 사회는 눈부신 경제성장과 단순노동이나 기피 업종에 종사할 노동자가 필요하였고, 이를 위한 해결책으로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 입국을 허락하게 되었고, 중소기업을 비롯한 많은 기업은 비교적 싼 임금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을 고용하였다. 이 시는 그 일환으로 한국에 들어온 네팔인 부부의 애틋한 삶을 통해 외국인 노동자에 관한 관심과 애정을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들은 힘든 노동에 비해 저임금을 받아 왔다. 근래 들어 외국인 노동자의 고용 과정과 그 이후에 받는 불이익이 사회적으로 문제화되고 있으며, 이들의 인권을 위한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작자 한명희(1965 ~ )

 

  시인. 대구 출생. 1992년 《시와 시학》에 <시집 읽기>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시집으로 《시집 읽기》(1996), 《두 번 쓸쓸한 전화》(2002), 《내 몸 위로 용암이 흘러갔다.》(2006), 《꽃뱀》(2018) 등이 있다. 평론집으로 《김수영 정신분석으로 읽기》(2002)가 있다.

 

 

►작성 : 남상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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