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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련/- 읽고 싶은 시

님의 침묵 / 한용운

by 혜강(惠江) 2020. 10. 19.

 

 

님의 침묵

 

 

 - 한용운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시집 《님의 침묵》(1926) 수록

 

 

◎시어 풀이

 

*깨치고 : ‘깨뜨리고’의 사투리.

*미풍(微風) : 약하게 부는 바람. 세풍(細風).
*지침(指針) : 생활이나 행동 따위의 지도적 방법이나 방향을 인도하여 주는 준칙.
*정수박이 : ‘정수리’의 사투리. 머리 위에 숨구멍이 있는 자리.

 

 

▲이해와 감상

 

  이 작품은 불교의 윤회 사상(輪回思想)을 바탕으로 하여 임과의 이별의 슬픔을 극복하고, 그것을 새로운 만남의 희망으로 전환함으로써 임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님의 침묵’은 임의 부재(不在)를 의미하는 것으로, 화자인 ‘나’는 임과의 이별한 상황에서 임과의 이별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고 오히려 이별의 슬픔을 희망으로 전환시켜 재회(再會)에 대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불교적 비유와 고도의 상징, 다양한 감각적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으며, 경어체의 사용과 여성적 어조를 느낄 수 있는 문체를 사용하고, 역설적 상황 인식을 통해 주제를 표출하고 있다.

 

  산문체로 되어 있으나 내재율을 지닌 자유시로, 호흡이 길면서도 전혀 지루하지 않게 술술 읽히는 묘미가 있다. 연구분 없이 10행(문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적 내용의 전개로 보아 한시(漢詩) 기승전결(起承轉結)의 4개의 의미 단락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즉 1~4행(기)은 임과의 이별을, 5~6행(승)은 이별 후의 슬픔을, 7~8행(전)은 슬픔을 극복하려는 의지를, 9~10행(결)은 임에 대한 재회의 믿음을 통하여 임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1행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 첫 문장은 임이 떠난 현실에 대한 인식과 이로 인한 충격을 반복법과 영탄법을 사용하여 강조하고 있다. 여기서 ‘님’은 사랑과 그리움의 대상으로 상황에 따라 연인, 조국, 절대자, 진리(불성) 등을 의미한다. 그런데, 그 ‘님’이 ‘침묵’하고 있다는 것은 현상적으로 ‘님’이 단순히 떠난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존재로서 침묵의 깊은 경지 속에 남아 있음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2행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적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 이 문장에서는 사랑하는 ‘님’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깨뜨리고 절망을 향하여 갔다며 이별의 상황을 강조하고 있다. ‘푸른 산빛’은 미래에 대한 희망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절망과 조락(凋落)을 상징하는 ‘단풍나무 숲’과 대조를 이루며, ‘차마’는 ‘어쩔 수 없이’라는 뜻으로 ‘님’의 떠남이 불가항력적임을 드러내고 있다.

 

►3행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든 옛 맹세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微風)에 날아갔습니다.’

→ 이 문장은 사랑의 약속은 ‘황금으로 만든 꽃’과 같이 굳고 아름다웠지만, 이제 그 약속은 먼지와 같이 덧없는 것이 되었다고 말한다. ‘황금의 꽃’은 임과의 영원한 약속인 ‘옛 맹세’를 상징과 비유(직유)를 통해 표현한 것이며, ‘차디찬 티끌’은 허무하고 보잘것없는 존재를 촉각적 이미지로 표현한 것으로 한 문장 안에서 서로 대비를 이루고 있다.

 

►4행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指針)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이 문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첫 키스는 내 앞날의 인생을 온통 임을 향해 가도록 만들어 놓았지만, 이제 그 모든 것이 추억이 되고 내 운명의 방향을 바꿔놓았다며 이별의 슬픔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날카로운 첫 키스’는 임과 만난 시간의 황홀함(임과의 운명적이며 충격적인 만남)을 감각적으로 형상화한 것이며, 그 강렬한 만남이 내 운명의 방향을 바꿔놓았으나, 이제는 뒷걸음쳐 사라졌다며, 1행에서 4행에 이르기까지 임과의 이별의 상황을 드러내고 있다.

 

►5행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 이 문장은 절대적인 존재인 임에 대한 사랑을 역설적으로 제시한 것으로, 이것은 다음 문장의 임과의 이별로 인한 슬픔을 강조하기 위하여 제시된 문장이다. 이러한 역설적인 표현은 절대적인 존재인 임 외에 어떤 것도 의미가 없음을 드러낸 것으로, 임에게 사랑의 포로가 되어버린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6행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 이 문장은 ‘님’과의 이별 후에 닥친 슬픔과 고통을 드러내고 있다. 화는 세상 모든 이치가 ‘만남’은 언젠가의 ‘헤어짐’을 전제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지만, 갑자기 닥친 이별 앞에서 놀라 슬픔에 젖는 것이다.

 

►7행 ‘그러나, 이별을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源泉)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 이 문장은 ‘그러나’가 보여 주듯이 시상이 전환되어 슬픔에 절망하지 않고 그것을 새로운 만남의 희망으로 역전시킨다. 이별을 슬퍼하는 것은 사랑을 잃는 것이라는 인식 아래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라고 표현한다. 이것은 슬픔의 힘을 새로운 희망으로 전환시켜 재회에 대한 의지를 다짐하는 것이다.

 

►8행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 이 문장은 만남은 헤어짐을, 헤어짐은 만남을 전제한다는 불교의 윤회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재회를 확신함으로써 슬픔을 극복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만날 때에 떠날 것’은 회자정리(會者定離)의 이치를,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은 거자필반(去者必反)의 이치로, 임을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피력한다.

 

►9행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 이 문장은 재회에 대한 강한 믿음을 영탄법과 역설법으로 표현한 것이다. 1행의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님은 갔습니다.’라는 문장이 이별을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것과는 대조적으로 9행에 와서는 재회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10행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 그리고 마지막 문장에 와서는 임에 대한 재회의 믿음을 통하여 임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내가 임을 보내지 않았다는 인식은 ‘님’이 사실은 떠난 것이 아니라 내 주위에서 단지 ‘침묵’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음을 알게 되고, ‘나’는 그 침묵하고 있는 임을 위해 ‘벅찬 사랑의 노래’를 부르게 되는 것이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임을 향한 주체할 수 없는 사랑을 뜻하는 것으로,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라는 표현을 통해 영원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님의 침묵>의 시인 한용운은 시집 《님의 침묵》 서문에서 ‘기룬(찬양하는) 것은 다 님이다.’라고 했다. 따라서, 이 시에서 ‘님’은 시인이 온 생애를 통해 ‘기루었던’, ‘부처님’이나 ‘불교의 진리’, ‘조국’, ‘어느 여인’ 등으로 그의 임을 추측할 수 있으며, 포괄적 의미에서는 ‘절대자’라고 할 수도 있다. 특히 그가 일제에 끝까지 저항한 의지적 독립지사임을 생각하면, 그것이 ‘조국’일 가능성도 높다. 그는 이 모든 것을 통합적으로 상징하는 ‘님’이 비록 지금 여기에 있지 않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다시 돌아올 것이고, 또 돌아오지 않을 수 없는 존재임을 믿기 때문에 그의 시는 절망에만 빠져 있지 않고 결국은 이별의 슬픔을 극복하고 희망으로 전환하고 있다.

 

 

▲작자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시인 · 승려 · 독립운동가. 속명은 유천(裕天). 호는 만해(萬海). 충남 홍성 출생. 1918년 불교 잡지 《유심(愉心)》에 시 <심(心)>을 발표하여 문단에 등단하였다. 1919년 3·1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했으며, 일제에 체포되어 3년형을 받았다.

 

  1925년에는 한국 근대시사의 불후의 업적 <님의 침묵>을 펴내어 민족의 현실과 이상을 시적 이미지로 형상화했다. 불교 사상을 바탕으로 철학적 사색과 신비적 명상 세계를 형상화한 철학적 · 종교적 연가풍의 시를 주로 썼다. 1940년 창씨개명 반대운동과 1943년 조선인 학병출정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일제의 극심한 탄압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비타협적인 독립사상을 견지하다가, 조선총독부와 마주보기 싫다며 북향으로 지은 성북동 집에서 66세의 나이로 죽었다.시집 《님의 침묵》(1926) 외에 《조선 불교 유신론》, 《불교 대전》 등의 저서를 남겼다.

 

 

 

►해설 : 남상학(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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